블로그 글을 읽고 미국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저~어 혹시 이런 분을 아시나요?
손님이 없는 틈에 어떤 귀부인이 들어와 쪽지를 내밉니다.

어디를 찾으시는지 알려 드리려고 쪽지를 받아 들었는데 내 이름 순이가 적혀있습니다.
투덜이 아저씨네 식당도 적혀있고 내 휴대폰 번호도 보입니다.
"제가 순입니다."라고 말씀드리고 누구신가 여쭈었더니
뭐라고 하시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분인데 내 이름을 들고 나를 찾아온 분이 있다는 것에
놀라고 서 있을 수만은 없어서 카운터를 돌아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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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온 것은 분명하므로 어쩐 일이신가 물었습니다.

이분이 쪽지를 들고 문 밖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손님들 사이로 보긴 했지만

설마 나를 찾아 오셨으리라곤 생각도 못한 일이라 얼떨떨합니다.
이분은 블로그를 가지고 계신 분은 아닌데
미국에서 순이 블로그를 열심히 보고 계신분이셨습니다.
60대 초반의 연세이시고 미국에서 Gallery 를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19세 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기 때문에
한국에는 친구도 친척도 거의 없다고 하십니다.
모국어를 자꾸 잊어버려서 안 되겠다 싶어서 조선일보 인터넷 신문을 보던 중
조선 블로그를 발견하고 열심히 보신다고 합니다.
조선 블로거 중에 까르페 디엠 리사님과 손풍금(안효숙씨) 그리고
숲속나라 빗물동네(미아란)님 블로그를 특히 열심히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손풍금님은 내가 전화번호를 알아서 점심을 먹으면서 연결해 드렸습니다.

사시는 곳에 세계에서 제일 좋은 골프장이 있다고 하시면서
남편과 함께 놀러오라고도 하시고 손풍금님과 함께 여행을 그곳으로 오라고도
하셨습니다만 그분도 보셨다 시피 내가 자리를 비우기 쉽지 않은 직업이라
여행 갈 기회는 별로 없을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실망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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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이분에게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어서 내 휴대폰 번호를 알려 드렸는데도
실례가 될까봐 그냥 얼굴만 보고 가시려고 연락도 하지 않고 저를 찾아 나섰다는 군요.
미국으로 가시기 전 태어난 곳이 명동근처라 명동에 있는 호텔에 계시는데
아마 여러 갤러리를 혼자 다니신 듯 메모지에 갤러리 이름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한 켠에는 시 낭송회가 열리는 청담 까페 사카의 주소도 있었습니다.
어려서 떠난 고국에 대한 추억을 순이 블로그에서 만나고 계시는 듯
내 이웃의 이야기를 쓴 것을 다 기억셨습니다.
투덜이 아저씨네 식당이 길 건너 있다는 것과 모퉁이에 우리 점방이 있고
광화문에서 9703 버스를 탄다는 것 등의 단편적인 것들을 조합하여
우리 점방까지 찾아오신 겁니다.
동사무소에 가서 내 이름을 대고 물었더니 모르겠다고 해서
동사무소에 걸려있는 지도를 보고 찾아보려니 못 찾겠더랍니다.
그래도 동네를 더듬어서 우리 점방을 찾아 오셨다니
내가 동네 묘사를 너무 잘 한 건지 그분이 길 찾기에 명수인지
아니면 순이를 꼭 찾겠다고 생각하셔 그런 건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5(1).jpgParkGallery.jpg

http://www.parkgallerycarmel.com/

아마 아침부터 길을 나선 것 같은데 오후 한시가 다 된 시간에 도착이 되셔서
시장하실 듯해서 바로 옆 분식집으로 점심을 먹으려 함께 갔습니다.
마침 월요일이라 몹시 바빠서 멀리 갈 엄두도 못 내고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 이런 걸 따질 겨를도 없었습니다.
미리 연락을 하고 만났으면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해 드릴 수 있었는데
겨우 떡만둣국을 시켜서 먹었습니다.
내가 쓴 글 중에 쌈밥집에 대한 것도 기억하고 있어서 다음에 연락하고 오시면
시간을 조율해서 쌈밥을 대접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꿈인 듯 잠시 만나고 헤어졌는데 저는 종일 기분이 묘했습니다.
아마 있는 그대로를 보시겠다고 오랜 생각과 계획으로 오신 것 같은데
무방비 상태에서 낯선 분을 만나고 보니 너무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는데
누군가는 나를 보고 싶어서 미국에서 이곳까지 찾아 올 정도로
열심히 읽는 분도 있구나 생각하니 부담이 몹시 되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하셨는데 어머니는 춤바람 동생 집에
가 계셔서 만나게 해 드릴 수 없었습니다.
많은 연세에도 남을 도우려고 하는 우리 어머니의 건강한 삶이 보기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내일 출국하셔서 미국으로 돌아가시면 다시 열심히 내 블로그를
보실 것 같은데 난 걱정이 생겼습니다.
어떤 분이 내 글을 읽고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신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먼 이국에서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사람을 직접 찾아오신
열의와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순이

9 Comments

  1. 소리울

    2011-11-07 at 21:15

    부담이지만 정말 기분좋은 일이지요?
    사람을 곁에 두고 말하듯이 조금조근 대화체의 순이님 글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살갑게 다가오는지 본인은 모르실 겁니다.
    그리고 얼마나 성실하게 글을 쓰시는지…
    그런 분위기가 사람들을 편하게 다가오게 하므로 많은 분들이 순이님 글을 좋아하게
    되나 봅니다.
    축하할 일입니다.
    격려와 사랑을 드립니다.   

  2. 벤조

    2011-11-08 at 05:00

    이분 참 순수하시네요.
    저도 소리울님이나 순이님 보고싶었지만,
    그냥 생각만 했습니다. 게을러서 그렇겠죠?
       

  3. 로빈

    2011-11-08 at 05:03

    좋은 인연을 만나셨네요.
    순이님 글을 읽고 있으면 제 마음도 편안해지는게 사실이거든요.
    하지만 제 글은 너무 비관적이라고 어떤분께서 꾸중하시더군요.
    저는 아직 한참 더 배워야할듯 합니다.   

  4. jh kim

    2011-11-08 at 05:36

    짞짝 짝 짝 짝
    박수
    와 (우렁찬 함성)
    블로그운영자와 조선일보 는 뭐하는겨 ?
    빨리 취재하고
    조선일보 홍보대사인 순이님께 감사패와 홍보대사 위촉행사를
    준비해야지
    이렇게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이
    순이님 블로그를 통해 나타 난답니다
    역시로군요
    순이님 최고
    순이님 화이팅   

  5. 깨달음(인회)

    2011-11-08 at 05:50

    저도 박수보냅니다.
    훌륭한 민간외교자 이십니다.
    글도 맛납니다.
    저도 갑자기 순이님이 궁금해집니다.
    많은것을 공유하겠습니다.   

  6. 흰독수리

    2011-11-08 at 08:14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글로벌 순~~~이님이 되셨군요
    이러다? 순이님 TM 이 특허내시게 생겼어요
    전국의 순이는 개명해야할 불상사가있을러는지요
    하여튼……..글로벌순이님 파~~~이팅입니다 *^^*   

  7. 말그미

    2011-11-09 at 03:54

    얼마나 반갑고 감개무량하셨겠습니까, 순이님.
    그리고 무망 중에 얼마나 놀라셨겠는지요?
    귀한 손님이 돌아가고 난 후에 조금이라도
    함께 더 시간 내 주지 못하신 점…
    여러가지로 기분이 묘하셨겠습니다.
    옆에서도 흐뭇합니다.   

  8. 공군

    2011-11-11 at 02:27

    정말 귀부인같아요~~
    그분을 ㅇㅇ 사랑방으로!! ㅎ   

  9. 김철원

    2011-11-12 at 23:46

    저도 뉴욕 후러싱동에 사는데요.저도 순이씨 블로그가 고향칭구
    같아서 자주 들어온답니다.언제 한번 뵐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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