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사소하고 즐거운 리추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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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가 태어나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삶의 소소한 리추얼이
대를 이어 계속되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새록새록 재미있습니다.
손자 건이가 짝짜꿍을 새로 시작하면 내 딸이 짝짜꿍을 하던 때
찍었던 사진을 꺼내어 봅니다.
건이가 유모차를 타면 건이 엄마가 유모차를 타던 사진을 꺼내어 보고
건이가 기기 시작하면 건이 엄마가 기던 때 사진을 보면서 별 의미 없는
아가의 행동들이지만 감격을 하면서 즐거워하던 때를 회상해 봅니다.
짝짜꿍 곤지곤지 잼잼 만세….
그런 것이 아주 사소한 행동이지만 대단한 리추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손자가 크는 것을 보면 사람에게 정형화 되어있는 기본 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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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를 기르는 방법이 획기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행동들이 끝없이 반복됩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1 2 3 4… 10까지 쓴 노트를 손에 들려서 사진을 찍고
노래 한 소절을 한 것도 율동을 한 것도 녹음을 하거나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면서 아이들의 조그만 행동의 변화에도 감동을 하고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들을 자유롭게 꺼내는 것을 우리 딸들이 반대 합니다.
우리 딸들은 나를 닮아서 시력이 좋지 않아서
초등학교 때부터 안경을 썼는데 고등학교 다닐 때는 렌즈를 하고 다니면서
안경 썼던 때 사진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몹시 꺼려합니다.
내가 보기엔 안경 쓴 어린 날에 찍은 사진들이 예쁘기만 한데
그걸 창피하다고 가족 이외에 남을 못 보여주게 합니다.
지금 보면 안경이 조그만 얼굴에 비해 커서 촌스러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난 내가 사위에게 보여주고 싶으면 꺼내어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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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이 자신의 아들을 키우면서 하는 행동이 나와 닮았습니다.
아기 때 무의식에 기억되어있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도 같습니다.
우리는 아날로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사진관에 맡겨 현상을 해야 하는
번거롭고도 경비가 많이 드는 사진 찍기를 해서 보관을 했지만
요즘엔 건이 사진을 아이폰으로 찍어서 바로바로 나에게 보내줍니다
회사에 간 건이 아빠에게도 보내고 할머니인 나에게도 실시간으로
건이의 미세한 변화를 건이 엄마가 보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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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려면 삶에 "리추얼"이 많아야 한다고 김정운교수가 주장합니다.
리추얼(ritual)의 원래 의미는 종교적 의례·의식입니다.
요즘엔 “리추얼”이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반복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삶에 리추얼이 풍성할수록 행복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를 반추해 주기 때문입니다.
건이 엄마는 내가 자기들을 키울 때 했던 기억들을 꺼내
건이에게 그 리추얼 들을 쏟아 붇는 것입니다.

요즘엔 “일상에 사소하고 즐거운 리추얼들을 만들어야 한다.” 는
김정운 교수의 말이 인생의 정답처럼 느껴집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부엌에서 냉수 한 컵을 마시면서 부엌 창으로 내려다보는
우리 집 뒷동네 풍경을 즐기는 것도 리추얼의 하나입니다.
비가 오는 날 비에 젖은 마을,

가을이면 맑은 하늘이 보이고
아침 햇살이 눈분신 날도 있고,

눈이 쌓인 모습,

교회의 붉은 십자가, 가로등 그리고 신호등,

멀리 보이는 큰길의 자동차 행렬….
냉수 한 컵을 마시는 동안에도 많은 그림이 눈에 잡히고
매일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것을 보는 것도 아침의 리추얼입니다.
이런 일상의 과정을 리추얼로 만들면 인생의 질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거기에 더하여 블로그를 하면서 기록으로 남기면서 더욱 확고한 리추얼이 됩니다.
일상을 글로 쓰다 보면 더욱 확실하고 의미 있는 일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머니 이야기,

내 이웃의 이야기

두 딸과 사위 두 명
그리고 손자 이야기는

아주 사소하고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일이지만

그걸 즐기고 이야기를 적어 나가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고
나에겐 일상의 리추얼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읽어주는 분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순이

3 Comments

  1. 말그미

    2011-11-29 at 14:41

    사전 적 의미보다 여유 있는 의역의 리추얼(ritual),
    삶에서 리추얼이 풍성할수록 행복지수도 높겠다는
    의미로 들려집니다. 실감나는 글 감사합니다.   

  2. 벤조

    2011-11-29 at 16:37

    순이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

    처음 미국에 와서 밥 먹고 살기 바빳을 때는
    미국사람들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축하하고 칭찬하고 너무 의미를 두는 것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저도 점점 그렇게 되어갑니다.
    나이가 들어 그럴까요, 여유가 생겨 그럴까요,
    아니면 지혜가 생겨서 그럴까요?
       

  3. 리나아

    2011-12-01 at 13:55

    거실이 다 건이 놀이터 같네요..
    나중에 건이가 보면서 또 즐거워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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