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씨는 무슨 이유에선지 고등학생 교복 같은 옷을 입고 시종 노래를 불렀습니다.
교복 앞 단추는 풀어헤치고 와이셔츠 뒷자락이 겉옷 아래로 삐져나오는
불량스러운 교복차림인데 가까이서 보니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모직 옷입니다.
나름 흰 행커치프도 윗주머니에 꼽고 다림질된 셔츠를 받쳐 입은 폼이 아마 나이든
사람들의 교복에 대한 옛 향수를 자극하기 위한 컨셉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여자 가수들의 화려한 드레스에 비해 무척 경제적일 것 같습니다.
교복 한 벌만 있으면 사시사철 입고 무대에 설 수 있으니까요.
디너쇼가 아니라 콘서트라고이름 붙여서 그런가?
40여명이 넘는 오케스트라가 무대 뒤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명의 대중가수를 위해 40명의 오케스트라…바이올린 첼로 베이스 피아노…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랄까 ?
그는 무대 뒤에서 물레방아 인생을 몇 소절 부르면서 나오더군요.
호박 같은 세상 둥글둥글~
순이는 어디서 무얼 하나~
목소리를 먼저 등장시키고 나타나는 그는 변함없는 허술함으로 시작합니다.
큰 무대에 선 긴장감은 없고 이웃에 사는 아저씨같이 격식을 차리지 않고
노래 한 곡으로 무대를 넘어 관중과 그대로 하나가 됩니다.
특별한 매력은 있어 보이지 않는데 그의 편안하고 자유스러운 태도가
관객이 긴장을 풀고 함께 호흡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조영남씨 노래를 듣고 자랐기 때문에
그분의 노래는 들으면 무슨 곡이든 귀에 익어서 좋습니다.
가수들이 돌아가시면 가수 협회에서 가수 장으로 장례식을 치른답니다.
그때 돌아가신 가수 분의 히트곡을 마지막으로 후배가수들이 부르는데
관을 내려다보면서 "알뜰한 당신이~" 이러면 웃음이 날 수 밖에 없답니다.
히트곡이 밝은 노래이면 낭패를 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돌아가셨는데 밝은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오지만 웃지도 못하고 괴로운데
조영남씨 장례식에는 "화개장터"를 부를 것 같더랍니다.
"구경 한 번 와 보세요.~ " 라고 부르면 웃길 것 같아서 결국 자신의 장례식에 부를 노래
"모란동백"이라는 곡을 만들게 됐다"고 말하며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 먼 산에 뻐꾸기 울면 /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 꿈 속에 찾아오네 /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 나를 잊지 말아요.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 들녘에 눈이 내리면 /
상냥한 얼굴 동백 아가씨 / 꿈 속에 웃고 있네 /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
어느 모랫벌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노래가 쉽지 않아서 장례식에서 후배 가수들이 부를 수 있을 가는 모르겠는데
노래는 정말 좋았습니다.
조영남씨는 중간 중간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기도 했고 기타도 치는데
기타를 치는 가장 늙은 가수라고 자평을 하더군요.
그분의 나이도 이제 67세, 자신은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재미있게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즐겁게 산다는 것 재미있게 산다고 하면 어쩐지 비난이 섞이는 것 같습니다.
나 부터도 이런 음악회를 다니면서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즐거우면 뭔가 불한하고 죄의식에 가까운 느낌마저 들기도 합니다.
자유를 느낀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사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느낌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근면 성실 이런 것에 가치를 두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조영남씨는 일찍부터 노는 것의 재미를 아는 사람입니다.
결혼에 관해서는 말고라도 음악은 노래를 본업으로 하니까 그렇지만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고 방송도 잘하고 수다를 떨면서도 재미있게 잘 삽니다.
이분은 죽음을 가까이에 느끼는 사람처럼 스스로 인생의 황혼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내년에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 같이 합창을 하자고 하면서
그대 그리고 나를 부르면서 함께 합창을 하게 했습니다.
관객들은 말 잘 듣는 초등학생처럼 조영남씨와 한마음이 되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는 40년 세월을 노래로 살았기 때문에 노련한 조련사처럼 관객의 마음을 잘 마무리해서
음악회가 끝이 나게 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많이 보이지 않고 대개 50~60대 아줌마 아저씨들입니다.
나는 오케스트라 박스 안에 자리가 마련되어 무대 가까이에 앉았더니
교복을 벗고 무대로 내려온 조영남씨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악수를 하고 그와 허그를 하는 아줌마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랑 없인 난 못살아요.”
이건 자신의 마음을 노래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랑 없인 난 못 살아요. ……이러며 자유와 사랑을 갈구 했지만
이제 그는 노래하면서 목말라 했고, 쉰 목소리로 이야기 하고
에너지는 딸려 힘들어 보였습니다.
자유롭고 재미있고 풍성하게 살았지만 어쩔 수 없는 황혼 길에 접어들었단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나봅니다.
젊은 날의 기름지고 풍성했던 목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은 한참 노래를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제비”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나도 만약에 다음 생이 있다면 노래 잘하는 가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몸이 가는 곳이면 아무 준비도 없이어디서든지 노래를 부를 수 있고
노래 부르는 곳이 무대가 되고 박수를 받는 가수가 너무 멋진 것 같습니다.
조영남씨처럼 나도 여고 때 교복을 입고 무대에 서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랑 없인 난 못살아요…. 이러면서 노래 부르면
많은 사람이 열광 할까요? ^^
순이
김진아
2011-12-10 at 14:59
바람 같은 사람이죠…훅….하고 날아가버리면 그만인,
책임이란 것이 필요 없는,….
민경
2011-12-10 at 18:31
콘서트엘 다녀오셨군요.^
조영남과 함께 떠오르는 보고픈
얼굴이 있지요. 동양방송 시절
곽규석과 함께 ‘최영희’라고..
그녀는 검색으로도 찾을수 없고
오래된 LP판 쟈켓에서 만나네요.
지난핸가요 이맘때 크게 아픈후
그도 목소리가 힘을 잃은듯해
안쓰럽지요. 반갑게 읽고 갑니다.^
말그미
2011-12-11 at 16:41
조영남 콘서트.
그는 노랠 참 잘 부르지요?
저도 다시 태어난다면 노래 잘 부르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순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