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밥그릇을 들고 나다니는 주책 할머니

딸들이 어렸을 때 밥을 잘 먹지 않아서
우리 시어머니께서 밥그릇을 들고 놀이터까지 아이들을 따라가셔서
그네를 태우면서 한 숟가락 입에 넣어주고,
미끄럼을 태우면서 또 한 숟가락,
흙장난을 하는 옆에서 다시 한 숟가락 떠먹이곤 하셨습니다.
시어머님이 워낙 손녀들을 귀해 하시고 정이 많으신 분이라
"어머니 밥 안 먹으면 굶기지요. 뭣 하러 그렇게 애를 쓰세요." 이랬지만
할머니의 손녀 사랑은 말릴 수 없었습니다.
밥그릇을 들고 놀이터까지 따라가서 손녀에게 밥을 먹이고 나서 빈 그릇을 들고
개선장군처럼 "밥 다 먹였다."이러시며 기분 좋아하던 모습을 보고
"우리 시어머님은 손녀 사랑이 유별하시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그러고 있었습니다.
어제 아침에 큰 딸아이가 건이에게 아침을 먹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건이는 15개월이나 되었는데 아직 젖을 먹고 있어서 밤새 엄마 젖을 먹어서
배가 안 고픈지 밥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국그릇에다 건이가 먹을 수 있는 여러 가지를 넣어서 맛있게 비벼 놨는데
건이가 안 먹으면 버릴 것 같아서 내가 먹이겠다고 했습니다.
"건이야 할머니 하고 놀이터 가자."
이러고 신발을 신 켜서 밥을 들고 나왔습니다.
말은 아직 잘 못하지만 말귀는 다 알아듣고 특히 밖에 나가자고하면
좋아 하며 따라 나섭니다.
"나가자" 소리를 하면 먼저 현관에 나가서 신발을 찾습니다.
안기는 것도 싫어하고 한사코 두발로 걷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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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이랑 놀이터에 가서 개미를 보면서 한 숟가락 먹이고
나무위의 새가 짹짹 거리는 것을 듣고 그 흉내를 낼 때 한 숟가락
또 시소에 앉혀놓고 한 숟가락 먹였습니다.
노는데 정신이 팔려 입안에 넣어주는 밥을 그냥 받아먹습니다.
한 곳에 오래 있지도 않고 놀이터 이곳저곳 다니다가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곳에서 사람 소리가 나자
건이의 발걸음이 그 곳으로 향합니다.
나는 한 발자국 뒤에서 따라갑니다.
행여 넘어질까 주차장에 차가 들어오는 것은 없나 살펴야 하니까요.

관리소 직원들이 분리수거장에 박스 정리도 하고
페트병도 한 곳으로 모으는 작업을 하고 계시다가
건이가 자박자박 걸어서 다가가자 일을 멈추고 쳐다보면서
"안녕! 외가에 왔구나."이러며 인사를 합니다.
나도 아저씨들께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보니,

하이고~~
왼손에는 밥그릇이 들려있고 오른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있습니다.
집안에 있던 그대로 헐렁한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고 세수도 안했습니다.
당연히 머리도 부스스한 상태였겠지요.
건이에게 밥은 좀 먹였지만 속으로는 민망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도 이렇게 주책스러운 할머니가 되어 가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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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 조리원에 있던 작은딸은 여러 가지가 불편하다며
위약금을 물어가며 조기에 퇴원하여 집으로 왔습니다.
집이 훨씬 편하고 시원하다는 것입니다.
전문 조리원보다 내 집이 더 편안하고 좋다고 그러는 겁니다.
신생아가 젖도 잘 먹고 잘 자고 순하니까 집에서 몸조리하기가
훨씬 편하고 좋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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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한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녀가시면서 맛있는 것을
많이 장만해서 가져다주시고 가셨습니다.
잠자는 아기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안아보고 하시면서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첫 손자라 그 마음이 더 그러신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자기를 닮았다고 하시고
할머니는 아들을 닮았다고 합니다.
아기의 조그만 얼굴에는 할머니 모습도 있고 할아버지 모습도 있고
손은 나를 닮았고 얼굴 한쪽에 보조개가 들어가는 것은 엄마를 닮았고
순하고 착한 것은 아빠를 닮는 등 신생아에게는 모든 조상의 유전자가
다 들어있는 듯합니다.

나도 어느새 손자가 두 명이나 되었고
밥그릇을 들고 손자 놀이터까지 따라가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순이

4 Comments

  1. Lisa♡

    2012-07-28 at 01:10

    행복이 뚝뚝 떨어집니다.

    아이들 너무 귀엽죠?
    더운데 땀띠 나지않게…호호.

    애 키운지 오래되서 기억나는 것도
    없어지는 나이입니다.   

  2. 소리울

    2012-07-28 at 06:00

    참으로 못말리는 할머니 들이지요.
    제가 리나 옷을 손으로 빨다가 타잘 터널 증후군이 온 것처럼…
    그할머니를 애엄마들은 못마땅해 합니다 버릇 못되게 들인다고…   

  3. rkdmf

    2012-07-30 at 07:51

    가장 주의 하셔야 할일이 자동차 입니다 아차 하는
    순간입니다 사고는 제자식도 벌써10년전일입니다 만 당하고보니까 사고율이 4-7세까지가 많드라고요    

  4. TRUDY

    2012-08-02 at 17:08

    15개월된 아이는 참도 순하게 생겼습니다.
    인상이 친근하고 타인에게 듣기 싫은소리 못할 스타일이네요.
    아직은 어려서 모를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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