쌔~ 쌔~ 쌔~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쌔~ 쌔~ 쌔~

아침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우리 선생님 계실 적에 엽서 한 장 써 주세요.
한 장 말고 두 장이요 두 장 말고 세 장이요
세 장 말고 네 장이요 네 장 말고 다섯 장이요
구리구리 구리구리 말아서 우체통에 넣자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어느 손~

오십년 전에도 동생들과 함께 놀면서 불렀던 노래이고
삼십년 전에는 딸들을 키우면서 불렀고
요즘엔 손자와 함께 부르는 노래입니다.

"한이야 쌔쌔쌔 하자."
이러면 한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가도
내 무릎 앞으로 쪼르르 기어와 앉습니다.
쌔~ 쌔~ 쌔~ 내가 노래를 시작하면 한이가 조그만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고 흔듭니다.
박자나 율동이 잘 맞지는 않지만 할머니와 손자가 하기엔
즐거운 놀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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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안 본 사이에 휴지 통을 비워서 가지고 놀고 있는 한이, 더워서 기저귀만 하고 ^^)

손을 맞잡고 흔들기도 하고

우는 시늉을 하기도 하고
손바닥을 펴서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기도 합니다.
제일 잘하는 부분은 저 기러기 할 때
손가락으로 저쪽을 가리키는 것과
엽서 쓰는 모습을 흉내 내어 손바닥에 글씨 쓰는 시늉입니다.
구리구리 할 때도 신나서 팔을 흔들어 댑니다.

가위 바위 보를 외치면 어느새 아기의 주먹 쥔 손이 나와 있기도 하고
그냥 흔들기도 하지만 가위 바위 보가 뭘 의미하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느 손 " 이러면 고개를 푹 숙이며 목을 내밉니다.
방글 거리며 율동을 대강 따라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싫증도 안내고 몇 번이고 놀이를 반복합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 노래를 나도 우리 할머니와 불렀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이야기를 잘 해주셨는데 노래도 불러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노래를 들려주신 것이
몇 가지 기억에 남이 있습니다.
“고모네 집에 갔더니”
“세상 달강 서울 길로 가다가.” 이런 것입니다.
할머니가 마당에서 잔일을 하고 계시는데 다가가 놀아달라고 조르면
할머니께서 손은 쉴 수가 없으니까 노래를 불러줍니다.
옛날 할머니들은 노랫가락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가사는 다르지만 거의 같은 곡조로 노래를 부르는데
아침바람 찬바람에 하는 노래는 지금 불러도 똑같은 멜로디 입니다.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할머니로 부터 들었던 노래를
내 딸을 키우면서도 불렀고
내 손자와도 함께 부르며 노는 것을 보면
노래의 생명력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노랫말은 앞뒤가 맞지 않고 내용도 이상한데 끈질기게
대를 이어 부르는 것은 무슨 마력일까요?
아침바람 찬바람에 기러기가 왜 울고 가는지
엽서는 왜 선생님이 계실 적에 써야 하는지
조그만 엽서를 구리 구리 말아서 우체통에 넣는지
말도 안 되는 가사인데 아기와 쌔쌔쌔 하고 놀기엔
이 놀이처럼 좋은 게 없습니다.
우리 한이도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이 놀이를 하고 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요즘엔 유아용품이 놀랄 정도로 다양합니다.
버튼만 누르면 책에서 노래가 나오고 악기 소리가 나고
동물 소리도 납니다. 신호등 놀이도 있고
유아를 위한 클래식에서 부터 명화감상까지
교재가 얼마나 좋은지 한이 것을 내가 봐도 재미있습니다.
그 많은 장난감과 교재들이 있지만 한이는 할머니랑 부르는
쌔쌔쌔를 젤 좋아합니다.
율동하는 모습도 매일매일 다릅니다.
한이의 재롱 보는 것이 즐거워서 나는 더 신나게 노래를 불러줍니다.
손자 앞에서 할머니가 재롱을 피우는 격입니다.

순이

4 Comments

  1. 地中海

    2013-08-19 at 04:20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고 부럽습니다.   

  2. 벤조

    2013-08-19 at 05:05

    한이 인물 좋네!
       

  3. 士雄

    2013-08-19 at 07:49

    아마도 기를 받아서 회춘하실지도 모릅니다.ㅎㅎ   

  4. 김진아

    2013-08-19 at 08:57

    아가들…예뻐요.

    한이의 휴지 놀이 보면서 웃었습니다.
    어쩜 자라면서 비슷한 놀이에 거의 같은 연령대에서 함께 노는구나 싶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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