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에게 3시간이나 동영상을 보여준 나쁜 할머니

밤에 아기를 재워놓고 딸 내외가 심야영화를 보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아기는 이제 20개월이 된 한이입니다.
한이는 나와 잘 노니까 한이 엄마가 잠시 집을 나가도 내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겨울왕국이란 영화를 보고 올 때도 봐 주었습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함께 놀아 주기도하고 잠간 밖에 나가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오기도 했는데
서너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문제없이 잘 놀았기에 밤 시간에 봐 주는 것은 더 쉬울 것
같아서 흔쾌히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아기의 비위를 맞추기는 참 쉽거든요.
제 엄마가 아기에게 금지 하는 것만 슬쩍 허락하면 할머니 인기가 올라갑니다. ^^

딸은 자정 무렵의 표를 예매한 터라 재워놓고 가면 엄마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며
밤 10시가 지나자 한이를 재워놓고 영화를 보러 가겠다고 목욕을 시켜서 방으로
일찍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엄마 아빠가 나간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책을 읽어주고 안아서 토닥거리고
노래를 불러주고 아빠가 코를 골고 자는 척을 해도 아이는 잠이 들지 않았습니다.
영화 예매한 시간이 다 되어오자 아기는 재우지 못하고 딸 내외는 나가야했습니다.

주한이.png

엄마 아빠가 나가는 것을 안 보여주려고 컴퓨터 앞에 한이를 안고 앉아서
네이버 주니어에 들어가면 동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노래를 들었습니다.
내가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안아 달라고 두 팔을 벌리고 다가와 내 무릎위에 앉아서
한참씩 동요를 듣는데 아이에게 컴퓨터를 오래 보여주는 것은 해롭다며
한이 엄마는 자주 못 보여주게 합니다.
그래도 심야영화를 보러 탈출을 해야 하니까 내가 방문을 닫고
한이와 컴퓨터를 보는 동안 내외가 살짝 나갔습니다.

이미 11시가 넘은 시간이었기에 컴퓨터를 조금만 보다가 잘 줄 알았습니다.
무릎위에서 내 가슴 쪽으로 등을 대고 앉아서 같은 방향으로 컴퓨터를 보고 있으니
아이 얼굴이 안보여서 자나? 하고 손으로 눈을 가려 봤더니 내 손을 얼른 치웁니다.
잠이 안 든 것입니다.
30분 넘게 그러고 있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기에 아이들 방으로 가서 눕자고 했습니다.
대신 휴대폰으로 타요버스를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아직 말도 잘 못하지만 제가 듣고 싶은 말은 잘 알아듣습니다.
컴퓨터를 끄고 한 이를 안고 침대로 갔습니다.

자정이 넘었기에 조금만 보면 되겠지 하고 타요버스를 휴대폰 유튜브에서 찾아서
보여주다 보니 중장비의 활동을 보여주는 곳이 우연치 않게 열렸습니다.
한이는 중장비나 자동차에 관심이 많습니다.

나는 딸만 두 명을 키워서 그런가? 아이들이 인형이나 소꿉장난 같은 것을 가지고 노는

것만 봤는데 20개월 된 아기가 남자여서 그런지 자동차를 좋아하고 노래도 공룡이 나오는

시라누스 같은 걸 아주 열심히 듣고 동영상도 굴착기나 트랙터가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는 80년대 초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이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길들여진다." 이 말에 대단히 공감했었습니다.
가부장적인 사회분위기 속에 여자로 길들여진다는 말이 맞는 말이라고 신봉했었는데
손자를 키우면서 보니 남자와 여자는 타고 난 성향이 다르다는 것을 요즘 느낍니다.

지난번 한이가 본가에 다녀올 때 할아버지가 커다란 굴착기를 사 주셨는데
그 굴착기를 얼마나 좋아하고 잘 가지고 노는지 모릅니다.
굴착기를 보고 할아버지를 찾기도 해서 아기에게도 선물은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발음이 어려운지 못 부르면서 할아버지와 굴착기는 이상하게 발음이 정확합니다.
굴착기는 이마트에 가서 할머니가 사 주신 건데 그걸 조립해 준 사람이 할아버지라
굴착기를 보면 할아버지가 연상되나 봅니다.

굴착기.png

중장비가 일하는 것을 잠도 안자고 열심히 보고 있어서 아기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한이야 이제 자자 열두시가 넘었어!” 라며 휴대폰을 끄고 재우려고 했더니
휴대폰을 두 손으로 잡아당기며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립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아이를 울리면 안 되겠기에
"알았어~ 알았어~ 조금만 더 보고 자자~" 이러며 어쩔 수 없이 다시 휴대폰을 켜서
중장비 동영상을 켜 주었습니다.
눈을 반짝이며 앉아있는 것을 억지로 내 팔을 베고 눕게 해서 휴대폰을 보기 좋게 들어 주었습니다.

눕히면 그걸 보다가 깜빡 잠이 들 것을 기대했는데 조그만 손가락으로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것을

누르고 또 누르고 하면서 잘 생각을 안 합니다.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이 아파서 다시 일어나 앉았습니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열심히 들여다봅니다.

한시가 넘었습니다.
제 엄마아빠가 오면 세 시간이나 아이에게 동영상을 보여 줬다고 혼날 것 같아서
마음이 초조해졌습니다.
그건 할머니 사정이고 아기는 전혀 잘 생각이 없습니다.
점점 눈을 반짝이고 보고 있습니다.

한시 반이 넘어가고 두시가 되었을 때는 아기가 잠드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울리지나 말고 버티자. 그러고 있는데
딸 내외가 영화구경을 마치고 들어오더군요.
당연히 아기가 잠들었을 줄 알고 살금살금 방문을 열다가
아기와 할머니가 휴대폰을 열독하고 있는 것을 알고 당황합니다.
나는 애 봐준다 하고서는 동영상을 세 시간이나 보여주고 있었으니
할 말이 없고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밤이라 울릴 수가 없어서….." 뒷말을 흐리니까.
"아휴 엄마 피곤하겠다. 미안해, 엄마 빨리 가서 주무세요." 이러기에
얼른 아기 방을 빠져나왔습니다.

휴~ 딸이니 그렇지 며느리였으면 혼이 났을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도 아기에게 해롭다고 안보 키는데 이렇게 절제 없이 세 시간이나 동영상을

아기에게 보여주는 나쁜 할머니가 어디 있겠어요.
스스로 자책도 되고 딸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밤에 잠을 잘 못자면 어쩌나 해서 아침에 일어나 눈치를 살폈더니 잘 잤다 고 합니다.
아기가 제 엄마를 보더니 엄마 목을 끌어안고 금방 잠이 들더라고 해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금지하는 일은 할머니에게 하게하면 된다는 것을 아기가 벌써 알아버렸습니다.
야동도 아니고 아동에게 동영상을 3시간 씩 보여주는 할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긴 했지만 아이 봐준다 소리를 못하게 생겼습니다.
나는 나쁜 할머니입니다. ㅎ

순이

4 Comments

  1. 푸나무

    2014-03-17 at 03:57

    ㅋㅋ
    맞아요.
    시어머니라면 아니 시엄마 왜 저러시는거얏~
    했을거에요. 아이고 겨울왕국이 뭔지 ….
    아직 저 안봤어요.    

  2. 리나아

    2014-03-17 at 08:05

    나도 며늘아기가 밤에 극장간다고 애기봐 달라고하면 좋겠습니다~~
    낮에 맡기는것보다 밤에 봐주는게 좀더 자신있거든요~~
    왜냐구요~? 제가 좀 야행성이거든요~~

       

  3. 대성

    2014-03-18 at 09:57

    나는 나쁜 할머니입니다? Never~~~   

  4. elan

    2014-03-19 at 09:41

    요즘 어린아이들이 밤에 잠을 자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증상입니다. 시각적으로 한낮과 같기 때문에 잠을 자기 힘든 것이지, 안잘려고 해서 안자는 것이 아닙니다. 실내등을 해질녁의 색온도와 유사한 전구색으로 바꾸시고 재우기전 2-3시간전에 밝기도 낮추는 것이 좋습니다. 휴대폰이나 컴퓨터 화면은 색온도가 높아서 불면의 원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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