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가 있다 보니 토요일 아침 식탁이 이렇습니다.
김밥과 우동이 포장된 그릇 채로 올려 있고
보기만 해도 입안에 시큼한 침이 고이는 자두가 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입덧으로 우동타령을 하는 임신한 아내를 위해서
한이와 사위가 나가서 사온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위가 사온 김밥을 커피와 함께 먹다가 말고
나는 웃음이 터졌습니다.
"휴일 아침 식탁이지만 김밥과 우동까지는 이해를 한다고 해도
자두는 뭐지? 사진 찍어 둬야지." 이러며 사진도 한 장 찍었습니다.
뱃속에 있는 아기가 나와서 자란 후에 ‘할머니도 네가 뱃속에 있을 때
아침부터 자두를 먹으며 협조를 했다‘고 말해 주려 구요. ^^
둘째를 임신한 딸이 입덧을 하는 기간이라 속이 울렁거린다거나
음식 냄새가 싫다거나 하면 외식을 하러 나가기도 하고 임산부가 먹고
싶다는 것을 어떡하든 찾아야 합니다.
사위의 퇴근이 늦어진다고 연락이 온 날에는 딸과 손자가 나의 퇴근시간에
맞춰 병원 입구에 와서 기다립니다.
어느 날은 짬뽕이 먹고 싶다고 하고 어느 날은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해서
퇴근길에 한이 모자와 음식점 순례를 합니다.
내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중동에서 살았는데
더운 나라에서 입덧 때문에 고생을 좀 했습니다.
문화도 음식도 날씨도 다 낯설기만 한데 입덧까지 하니까 정말 괴로웠습니다.
어느 날은 같은 외국인 단지에 사는 한국 엄마들이 모여 만두를 빚었습니다.
80년도니까 한국 근로자가 많이 나가 있기는 해도 만두를 만들 음식재로를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살림의 베테랑 주부들이 깡통에 담긴 김치를 구해서 썰어 넣고 고기와 양파
등으로 만두소를 만들어 그럴듯한 만두를 빚어 식구들 수대로 나누었습니다.
나는 남편과 두식구라 두 사람 분을 가지고 집에 와서 만두국 끓일 준비를
해 두고 남편을 기다렸는데 남편이 사무실 직원을 대리고 퇴근을 했습니다.
낮에는 더우니까 야간에 라이트가 있는 단지 안 테니스장에서 야간게임을 하러
왔는데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해서 모시고 오면서 아무런 예고도 없었습니다.
전화가 없을 때라 연락도 없이 손님이 오신 겁니다.
저녁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만두국을 끓여 드렸더니
남편과 손님은 맛있다면서 한 알도 남김없이 다 먹고 국물까지 달라고 해서
밥을 말아 먹고 나더니 둘이는 테니스장으로 갔습니다.
함께 온 직원은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어서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수재(!) 만둣국에 감탄을 했습니다.
그러니 만둣국을 끓인 사람이 먹었는지 굶었는지도 따질 겨를이 없었나 봅니다.
만두국 국물이라도 남겼으면 덜 억울할 터인데 어쩌면 그렇게
알뜰하게 먹어버리고 가는지 야속하기가 이를 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눈물이 나는데 어쩌면 그렇게 억울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만두국 때문에 우는 내 모습이 치사해서도 울고
못 먹은 만두국을 대신해서 먹을 만한 음식이 냉장고에 없어서
냉장고 문을 열고 서서 울고
어쩌면 아내의 입덧도 생각하지 않고 손님을 모시고 온 남편이 서운해서 울고
어찌 되었든 무지하게 서럽더군요.
그까짓 만두 때문에 울다니 하실지 모르겠지만
입덧 중에는 병적으로 당기는 음식이 있고
금방 못 먹으면 죽을 것 같은 집착이 생기기도 하는 때입니다.
그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담맘이라는 도시에서 만두를 사 먹기는 불가능한 그런 형편입니다.
그렇게 억울했던 입덧 기간이 있었기에
임신한 딸에게는 먹고 싶은 것이 있나 물어서 열심히 해결해 줍니다.
부엌일이 서툴지만 그래도 정성껏 감자를 갈아서 부침개도 부쳐주고
음식점 투어도 함께 하곤 합니다.
마침 풋 복숭아나 살구 자두를 수확하는 계절이라 신과일 구하기가 쉽습니다.
만약 한겨울에 자두나 살구가 먹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구하겠습니까?
입덧도 이런 계절에 할 수 있는 게 행운이라면 행운이지요.
로칼 푸드점에 갔더니 금방 따온 자두를 팔고 있어서 어제한 박스를 샀습니다.
내 기억에 자두나 살구는 산 적이 없는데 임산부 때문에 사게 되었습니다.
평소엔 어쩌다 누가 한 개 주는 자두는 먹어보긴 한 것 같은데
돈 주고 산 것은 그것도 한 박스씩 산 것은 처음입니다.
임산부는 식탁위에 놔두고는 드나들면서 한 알씩 집어서 잘 먹습니다.
임산부가 잘 먹으니까 태어날 아기가 성품이 좋고 샘이처럼 잘 웃고
평화로운 아이가 태어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순이
푸나무
2014-06-21 at 05:31
신것 자두면 혹시 딸래미?
미리 축하드릴까요? ㅎㅎ
잘웃고 평화로운 아이라면 뭘 더 바래요.
dotorie
2014-06-21 at 20:12
저도 사진에 있는 음식 다 먹고 싶은데요.
절대 아닙니다 ㅎㅎㅎ
축하 드려요.
말그미
2014-06-22 at 14:07
입덧하는 임산부의 휴일 아침식단,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보는 듯합니다.
얼마나 좋으세요?
할머니의 DNA가 1/4이나 물려졌으니…
축하합니다, 진심으로…
한이와 동갑인 우리 외손자 준호 동생은 요번 8월이 산월입니다.
입덧할 때 친정 어미라고 수륙만리 떨어져 있어
늘 딸 생각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