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이 반반의 확률인데 네 번이나 똑같다니

“오늘 손녀 소식이 있으면 한턱냅니다.”
병원식구들에게 흰소리까지 해 가면서 딸의 전화를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태명이 까꿍이인 태아가 16주가 되어 산전 진찰이 예약된 작은딸이
피검사와 초음파를 보는 날인데 검사하면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있고

요즘엔 산모에게 바로 알려준다고 하기에 결과를 아는 즉시

나에게 전화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웃기는 건
난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는 시대에 딸만 둘을 낳아서 시어머님께 구박을
좀 받은 사람인데 이렇게 손녀를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치매가 있으셨던 90대 중반의 시 백모님은 작년에도 뵈니까 예순의 나이인 나에게
"왜 그러고 있냐? 아들을 낳아야지?" 이런 말씀을 하셔서 웃었습니다.
시 백모님은 치매에 걸린 상태에서 30년 전 즈음의 생각을 하고 계신 듯하고
조카며느리가 딸만 둘인 것을 몹시 걱정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는 인구문제로 자녀를 두 명 이상 낳는 것을 국가적으로 말렸기 때문에
딸만 두 명 낳고 말았지만 요즘 같이 다둥이 가족을 장려하는 시대였으면
나도 아들을 낳겠다고 두어 명 더 낳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난 딸을 키우면서 좋았고 지금도 예쁜 여아를 보면 "나도 저런 손녀 한명
있었으면 좋겠다."며 부러워하며 쳐다봅니다.
손자는 세 명이면 되었고 이제 손녀 한명만 더 있으면 좋겠어서 입니다.
그리고 확률로 따져 봐도 남자 아니면 여자인데 그 반반의 확률이 벌써 세 번이나
빗나갔으니 이번에는 딸이겠지 하는 기대를 가져볼 만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기다리니 될 턱이 있나요?
가운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전화기를 손에 잡고 있다가 벨이 울려
얼른 받았더니 "엄마 의사선생님이 또 아들이래…"이러는 겁니다.
설마 네 명 중에 한명은 손녀겠지 기대하고 있다가 또 손자라는 소리를 들으니
순간 위로의(!) 말이 생각 안 나서 숨을 한번 깊이 쉰 후에
"아들이면 좋다야. 얼마나 경제적이냐?" 이런 말을 위로라고 했습니다. ^^

실제로 경제적이긴 합니다.
까꿍이가 여아였으면 입는 옷부터 장난감까지 다 새로 사야하지만
위로 형이 세 명니 옷이고 장난감이고 모든 육아용품을그대로 물려받아 쓰면 되니까
하나도 새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여아였으면 오빠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줄 수 없으니까 인형 같은 것을
새로 장만해야 하는데 남자아이들이 사용하던 장난감이니, 취향이 비슷할 거라 보면
그냥 다 가지고 놀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세 명의 형이 쓰던 것들을재 활용하면 되니까 그런면에선 다행입니다.

새로운 맛은 없지만 까꿍이가 풍성하게 누릴 수는 있게 되었습니다.

병원식구들이 또 손자라는 말을 듣고는 한마디씩 거듭니다.
“요즘 아들만 둘이면 목매달이래요. 목을 맨다는 것은 아니고 나무 매달요.”
“아들만 둘이면 말년이 외로울 것 같아요.”
“살가운 딸이 있어야 하는데….요즘 딸 없으면 불행하대요.”
이러며 거든다고 하는 말들은 우리 딸이 들으면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말입니다.
어찌 되었든 병원 식구들에게 한턱낸다고 흰소리를 해 놨으니
아들이라도 아이스크림을 사서 돌렸습니다.
아들을 선호하던 시대에 딸만 두 명 키운 엄마나
딸을 선호하는 시대에 아들만 둘씩 낳는 내 딸이나…..
어째 럭키한 것 같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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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무렵 다시 고쳐서 생각하니 까꿍이가 여아가 아니라고 서운해 한 것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 둘이 늦지 않게 결혼하여 기다리지 않고 아이를 잘 낳고
그것도 아들만 둘씩 낳으니 분명 감사할 일이지 서운해 할 일은 아닌 것입니다.
손녀딸을 예쁘게 키워 인형처럼 안고 다니고 싶다는 꿈은 사라졌지만
나이 들어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손자 네 명을 데리고 그림 전시장이나
박물관 등을 찾아다며 현장학습을 시켜야하겠습니다.
한 줄로 남아 네 명을 죽 세워서 데리고 다니려구요.

1번째 손자 건이는영리하고 잘생겨서 바라보면 좋고
2번째 손자 한이는 노래를 잘 부르고 나를 좋아하고 늘 손잡고 다니자고 해서
정이 쏙 드는 손자이고
3번째 한이는 방글방글 잘 웃고 마음씨 좋은 훈남이라 안으면 행복하고
4번째 까꿍이는 또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기대가 됩니다.
4번째 손자는 내년 1월 말에 나옵니다.

딸이 시어머니께 또 아들이라는 소식을 드렸더니 축하한다며

“딸 못 낳아서 쫓겨 난 사람은 없다.”며 웃으시더랍니다. ^^

순이

2 Comments

  1. 해군

    2014-08-15 at 02:29

    산수로 계산해 보면,
    딸만 둘일 확율 4분의1,
    손자만 넷일 확율 16분의 1,
    위 두 경우를 곱하면 64분의 1이지만
    두 딸이 건강하게 아들 둘씩을 낳는다는 건
    확율 10만분의 1쯤 되지 않을까요?
    복을 많이 만들어놓으셨나 봅니다^^   

  2. 벤조

    2014-08-16 at 20:51

    복두 많으셔! ㅎㅎ
    딸들이 척척 시집가서 술술 아들 낳고…효녀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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