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질투는 요양병원에서도 유효한 감정

요즘 들어 “요양병원 어때요?” 이런 문의를 자주 받습니다.
어떠냐고 묻는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이 들어 근무하기 괜찮으냐?"저의 상태를 묻는말일수도 있고

"요양병원에 어른들을 입원시키는 것이 문제가 없겠는가"

하는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요양병원엔 아픈 어르신들이 모여 계셔서
분위기가 다운되어 있고 우울할 거란 선입견이 있어서
요양병원에서 일한다고 하면 저를 좀 측은한 시선으로 봅니다.
힘들지 않느냐, 우울하지 않느냐? 선입견을 가지고묻지만

재미있는 일도 많고 요양병원은 외롭지 않고 안전하고 의외로 평안합니다.

편마비로 거동이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야 이동이 가능한 할머니도
아침마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합니다.
그리곤 병동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재미있는 시간을 가집니다.
물론 할아버지들 사이에서도 할머니는 인기가 좋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할머니들이 질투하기도 합니다.

"질투"도전적이고 신선한 감정 아닙니까? ^^
70~ 90세 어른들끼리도 더 친한 분들이 있고 미워하기도 하고 좋아하고 그럽니다.

사랑과 질투는 묘한 평행선을 유지합니다.

젊은이들과 다름없이 이성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더 활기차고

아프고 힘들어도 외모를 단장합니다.
이성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요양병원에서도, 연세가 아무리 많아도 유효합니다.
영화 “어웨이 프롬허”에 나오는 내용이 현실에서도 있습니다.

어떤 병실에선 서로 침상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자녀들 자랑에서 부터 살아온 이야기, 아픈 이야기 등을 하며 도란도란 지내십니다.

긴 시간을 살아오셨고 최근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옛날 일은 날로 새록새록 생각이 나는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끝도 없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간식거리를 가져다주면, 나누어 드시기도 하면서요.
식사 때가 되면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선택해서 드십니다.
팥죽이 드시고 싶다고 하면 팥죽을 드리고
만둣국이나 스테이크 자장면 등 원하는 것을 드실 수 있습니다.
중환자인 분들은 중환자실에 계시는데 그분들은 콧줄로 연명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주사나 금식하고 계신 분들도 있지만 스스로 식사를 하실 수 있거나 한사람의
보조로 식사가 가능하면 일반 병실에 계시게 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요양병원에 부모님을 입원시키는 일이
자녀들 입장에서 죄의식을 가지고 떳떳하지 않아 했습니다.
요양병원에 부모를 모시는 일은 불효라고 생각하고 현대판 고려장 정도로 생각해서
주변의 시선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병원 직원들도 요양병원의 특성과 장점을 알게 되어
인지장애가 있는 부모님이나 친인척을 자기가 근무하는 병원에 모시기도 합니다.
우리병원 내과과장님도 형수님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스스로 돌봅니다.
큰형님의 부인인데 형님은 돌아가시고 형수님이 장남과 사시다가
연세가 있으셔서 인지장애가 와서 자녀들과 지내는 것이 힘들어지자
우리병원에 모시고 오신 것입니다.
내과 과장님은 형제들 사이에 막내이고 나이차이가 많은 형수님이 해 주신
밥을 먹고 빨아준 옷을 입고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형수님께 진 사랑의 빚도 있고

한편으론 엄마 같아서 보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소리 또 하고 고집스럽게 말씀 하시고 엉뚱한 말씀도 하곤 하지만
시간이 나면 환의를 입은 형수님과 가운을 입은 의사선생님이 손잡고 병동을 왔다 갔다
하면서 운동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보기 좋습니다.
형수님은 이불을 털다가 다이아몬드가 창밖으로 떨어져 나갔다고
주어오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 뭔 다이아몬드가 있어요?” 하지 않고
“우리 형수님 부자시네요 이불에서 나올 다이아도 있고”
하면서 다 받아 줍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환자도 보호자도 다 행복해 보입니다.

시어머니나 시아버지 친정부모님을 입원시킨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어머니를 입원시켜 놓고 수시로 돌보는 분도 있습니다.
연세가 많아지면 골절이나 치매 당뇨 심혈관 질환으로 고생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집에서는 감당이 안 될 경우 병원에 모시게 되는데
입원기간이 길어져서 집에 가고 싶어 하시거나 생신 등으로 자녀들이 모이게 되면

퇴근하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집에 갔다가 아침에 함께 출근하는 분도 있습니다.

만약 이 어르신들이 혼자 집에 계셨다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실까요?
몸이 아픈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인데 바쁜 가족들은 다 일터로 나가고
혼자서 하루 종일 방에 계시면 말할 상대도 없고 식사는 차려두고 나갔다고 해도
음식은 식고 마르고 하지 않았겠어요.
그러나 요양병원은 식당이 있으니까 매끼니 마다 따뜻한 밥을 해서 드리니
균형 잡힌 식사를 하게 되고 아픈 것은 치료하고 같은 방 식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고독을 나누고 더 아픈 분을 보면서 다행감도 느끼고 그럽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독사 할 염려가 없습니다.

혼자 사시다 언제 돌아가신지도 모르게 죽음으로 발견되는 일을

자주뉴스에 보게 되는데 그런 분들이 시설에 모셔지면 좋겠습니다.

병들고 모시기 힘든 어르신들을
요양병원에 보내는 일에 죄의식을 가지는 일은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노인문제에 있어서 요양병원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어린이집이나 요양병원 등에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데
국가가 감당이 될까 하는경제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치매에 관련된 영화를 볼 수 있는 블로그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103227&menuId=-1&listType=3&from=&to=&curPage=1&logId=7644026

그들 각자의 영화관

순이

3 Comments

  1. 데레사

    2015-01-24 at 10:20

    우리 아파트에 사시던 분도 남편이 돌아가시고 지난 가을에
    요양병원으로 가셨는데 금요일 저녁이면 외출을 나와요.
    밥안하니 편하고 약 시간맞춰서 갔다 주니 신경 쓸일 없어서
    아주 좋다고 하면서요.

    병원에 따라 또 환자의 성격에 따라 모든게 좌우되겠지만
    이제는 사회적분위기도 긍정적으로, 순기능으로 요양병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도 나중에 갈꺼에요. 어쩌면 순이님 계시는 곳으로.   

  2. 말그미

    2015-01-25 at 11:39

    우리나라의 요양병원의 근황을 소상히
    알려 주셔서 궁금함이 덜어졌습니다.
    그리고 든든합니다.
    이제 우리 때도 일반적으로 활용할 시설이 될 것 같아
    좋습니다.
    아무리 아들이 있다한들 어느 효자가 그 어려운 일을
    감당할까요?
    참으로 든든한 이야기라 흐뭇합니다.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서구에서 30~40여 년 전에 일반적이었던
    시설이 이제 우리나라도 자리가 잡혀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30대 때,
    미국에서 한 달에 천 불씩, 오백 불씩 지불하는 널싱홈에 가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생각이 났습니다.
    위에 쓰신 내용과 꼭 같았습니다.
    칠판에 일주일 단위로 그 날의 오후 일정이 적혀 있었는데
    목사님의 설교, 찬송을 부르는 시간이 있었고, 인형놀이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3. 해군

    2015-01-25 at 12:47

    효도의 기본정신은 변함없더라도
    실천방법은 세월따라 변할 수밖에 없겠지요
    요양병원 시스템이 더 좋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아주 수준높은 블로그를 소개하셨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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