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사느냐고 묻는 질문 속에는 많은 뜻이

지난 금요일은 소설가 이순원 선생님을 모시고 글공부를 하는 날인데
우리 카페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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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 후 첫 직장에서 만난 다섯 살 어린 동료와 26년째 우정을 이어오고 있고
그 친구는 강원도 강릉에 살고 있답니다. 강릉에 사는 분은 중 2짜리 외아들이 있는데
일산에 사는 우리 반 홍선생을 이모라고 부르고 잘 따라서 방학동안 며칠 추억 만들기를
하고 있는데 수업에 데리고 가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하는 글이었습니다.
집에 혼자 둘 수도 없고 우리도 견학한다는 중학생을 환영했습니다.
나는 특히 강원도 강릉 소년이라고 해서 더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고향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 그런 느낌이겠지요.

요즘 중2 학생은 북한에서도 무서워한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사춘기라 겁도 없고 말도 안 듣고 반항적이라고 하는데
이 학생은 착하고 선량해 보였습니다.
방학을 맞아 마음도 다 잡을 겸해서 엄마 친구 집에 보내졌다고 합니다.
아람누리가 방학 중이라 한양문고 교실을 빌려 주 1회 공부하는데
우리 공부시간에는 학생이 휴대폰은 이모에게 압수당하고 한양문고
책 숲을 마음껏 다니며 혼자 놀면서 두 시간을 보냈습니다.

홍 선생은 강원도에서 태어나 강원도에서만 자란 학생을 데리고
일산나들이를 다니면서 추억 만들기를 해 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헤이리 예술촌을 구석구석 다니며 구경하고 황희정승의 반구정도 가보고
일산 아쿠아리움, 백화점, 동물원, 63빌딩 등을 두루 다니면서 아이의 호기심을
채워 주고 지적인 자극도 주면서 놀아준다고 했습니다.
엄마의 이런 베스트 프렌드가 있어서 이모라고 부를 수 있고 보살핌을 받는
학생은 행운이었습니다.
친구의 아들에게 친 이모도 해주기 어려운 인생수업을 시키는 모습이
너무도 진지하고 계획적이고 좋아보였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아이가 움직인 동선을 사진으로 찍고
영수증을 붙이고 하는 추억 앨범을 만들더군요.
첫 장에는 강릉에서 일산까지 타고 온 버스표를 붙이고
매일 다녀온 입장권, 아이스크림 사먹은 영수증 음식점 전표 등등과
휴대폰 사진을 인화해서 앨범에다 붙여주니 훌륭한 한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분이니까 옆에 메모까지 하는데 인쇄되지 않아서 책이라고 불리기
어렵다고 해도 분명 한권의 책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순원 선생님과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학생은 아직 이순원 선생님 글을 읽은 게 없다고 했지만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19세"를 배울 때는 얼마나 감격하겠습니까?
"난 19세의 작가 이순원 선생님과 식사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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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강원도 사람이라 강원도 학생을 만나니 반가워서
학생이 강릉에서 온 것을 알았지만 그 입으로 강릉이라는 지명을 들으려고
"학생 어디 살아요?" 라고 물었습니다.
학생이 "무슨 에버빌 살아요."하는데 제가 전혀 모르는 지명이라
못 알아듣고 어리둥절했습니다.
청력이 점점 떨어져서 소란스러운 곳에서는 상대방 말을 잘 못 알아들어
이것도 나이 들어 가면서 큰 문제구나 생각하고 요즘엔 은근 청력을 잃을까봐
걱정까지 하고 있어서 학생의 말을 못 알아듣자 우울한 생각이 들긴 하지만
강릉이라는 단어가 아닌 것은 분명해서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집이 어디예요?
"현진 에버빌요."
학생은 의아 한 듯이 또박또박 말합니다.
옆에 앉아있던 학생의 이모가 웃으면서
"얘네 집이 현진 에버빌 아파트에요."라는 설명을 해 주어서 그제야 알아들었습니다.

"어디 사세요?"
아주 간단한 질문 같지만 어른들은 그 한마디 속에는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게는 일산이냐 분당이냐 그런 대략적인 지명을 묻는 것이지만
무슨 동에 사는 가를 묻는 경우도 있고
본인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같은 가해서 묻기도 합니다.
특히 서울 사람들은 강남이냐 강북이냐 이런 것으로 삶의 형태나 부를 가늠하는
이유로 묻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자란 도시 강릉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학생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이름을 대었습니다.
그만큼 학생과 나는 대화의 초점 맞추기가 어려운 세대차가 있었나 봅니다.
어디 살아요? 라는 물으면 당연히 ‘강릉이요.’ 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현진 에버빌 살아요. 하는 대답을 듣고 보니 어린 학생과 대화가 안 되는
나를 돌아보게 되더군요.

순이

2 Comments

  1. 데레사

    2015-02-08 at 17:06

    ㅎㅎ
    역시 세대차가 아닐까요?

    내가 우리 지수 중학교 졸업기념으로 대만 데리고 갔을때
    장개석 기념관에서 이 분이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드니 모른다고
    대답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중학교 때는 배웠거든요.

    그리고 초등학생때 부산에서 낙동강을 지나면서 너 낙동강 아니?
    했드니 그럼요 오리알. 해서 한바탕 웃기도 했습니다.

    자라나는 세대들과 소통할려면 우리도 좀 단순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2. 선화

    2015-02-08 at 23:47

    ㅎㅎㅎ

    친일파 라는 뜻을 모르더군요 중학생 아이가…ㅎ
    한문, 국사등 안 가르치니요

    그래서 저도 가끔..재네가 정상이고 우리가 비정상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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