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룩을 입은 노부부의 매력, 그리고 천식

연휴가 길었던 설 명절에 텔레비전으로 “님아 그 강 건너지 마오”
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오래전 "집으로 가는 길" "워낭소리"같은 우리나라 영화였습니다.

영화 속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성품이 참 좋아보였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 장난을 치면서 소꿉장난 하듯 사셨습니다.
할아버지는 그저 할머니를 귀엽게 보고 뭘 해도 함께 세트로 다니시며
사시는 모습이 아름답고 신선해 보였습니다.
나이 먹으면 같은 집에 살면서도 되도록 각방을 쓰는 요즘 세태로서는
대단히 귀한 모습입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평생 의지하고 신뢰와 존경을 가지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귀하게 여기고 삶의 동반자로서 대합니다.
부부가 평생을 살면서 믿고 사랑할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영화를 찍기 위해 커플 룩을 해 입으신 것이 아니라
두 분이 산뜻한 커플룩을 입고 다니셔서 사람들 눈에 띄었나 봅니다.
연세 높은 노인들이 한복으로 커플룩을 해서 입으신 것이
입소문이 나서 텔레비전에서 인간극장인가에서 방영했고
그 후속으로 영화가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신혼여행 가는 젊은 애들이 커플룩을 입는 것을 봐 왔기 때문에
노년에 커플룩을 입는 다는 것은 놀라울 만큼 대단한 발상의 전환입니다.
그것도 한복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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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을 함께 산 부부가 같은 색의 옷을 해 입고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신비하기까지 했습니다.
할머니는 요즘으로 보면 대단한 패셔니스타입니다.
그리고 삶에서 옷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위독하자 옷부터 가져다 태웁니다.
자신이 챙겨 주지 못하면 여름옷인지 겨울옷인지도 구별 못하는
할아버지가 저세상으로 먼저 갈 듯 하자 옷 걱정이 앞서는 겁니다.
돌아가신 후에 한꺼번에 태우면 무거워서 못 가지고 갈까봐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옷가지를 태우는 것으로 시작하고
먼저 보낸 자녀들의 내복을 남녀 구분해서 준비합니다.
6~70년 전 내복도 한 벌 못 입혀보고 저세상을 떠나보낸 자녀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아들딸의 내복을 준비해서 먼저 가는 할아버지 편에 보내는
할머니의 심정은 아무리 어릴 때 보낸 자녀이고 6~70년의 세월이 흘러
그들이 살아있으면 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인데 할머니에겐
아기의 모습으로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 다는 말이 정말 맞는 표현입니다.

직업상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천식을 앓고 있었는데 왜 방치했을 까 하는 겁니다.
큰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약이 없고 연세가 높아서 그렇다고
의사가 그냥 두고 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고 할머니께서 말하는데
치료는 어려울지 몰라도 숨 넘어 갈듯 하는 할아버지의 고통은
좀 덜어드렸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맘이 들었습니다.
자녀들이 6명이나 있고 부모님 생신에 모인 자녀들이
부모님 잘 못 모신다고 부모 앞에서 싸움까지 하던데
그러지 말고 그중 누구라도 젊은 분이 어른들을 모시고 가서 의사와 상담을 했더라면
할아버지는 속을 다 토할 것 같이 뒤집어 지는 기침은 덜 할 수도 있었습니다.
숨이 차서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숨을 헐떡이고
가래가 끓어오르는 그런 상태를 완화 할 수 있는 약이 있습니다.

천식으로 인한 호흡곤란 상태에서 기관지 확장제인 “벤토린” 같은 것을 쓰면
숨이 막히는 극한 고통에서는 조금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간혹 영화에서 보면 천식 환자가 호흡곤란이 왔을 때 입에 물고
호흡을 들이 마시며 진정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그게 바로 분사식 응급약입니다. (의사의 처방으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의 강도를 표현 할 때 “숨이 넘어갈 듯하다.”고 합니다.
영화 속 할아버지 같이 숨이 넘어갈 듯 호흡곤란이 왔을 때
이런 분무식 기관지 확장 제를 쓰면 천식호흡이 완화되어
신기할 정도로 호흡이 본래대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휴대용 산소 같은 것이 있어서 집에 비치해 두고 사용방법을 익히면
천식으로 좁아진 기관지로 인해 공기가 들어가지 않아서 호흡이 힘들 때는
산소를 흡입하면 훨씬 호흡이 편합니다.
또한 가래가 몹시 끓는데 연세가 높으면 기력이 쇠하여 가래가 목에 끓는 것은
그럴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럴 때 항생제를 좀 쓰면 기관지염이 가라앉아서
할아버지의 호흡이 편해 질 수도 있습니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통 없이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잖아요.
내 생각에 병원에서 "연세가 높으니 그냥 편안하게(?) 두라."고 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요즘처럼 약이 좋은 때에 약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차피 돌아가실 분이데 치료는 해서 뭣하나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은 없을 겁니다.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영화를 보는 내내 안타까웠습니다.
주위 분들이, 자녀가 아니면 촬영을 하는 팀에서라도 누가 한 분 나서서
할아버지의 호흡을 평안하게 해 드리지 못한 것이 안타까움으로 남습니다.
(직업병입니다.)

천식으로 숨이 차서 잘 걷지 못하고 벽에 거울하나 걸 힘이 없어서
기력이 떨어지는 자신에게 화를 내는, 그러면서도 양지쪽에 가만히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담담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자극이나 폭력이 없어도, 우리는 감동받고 좋은 영화란 생각이 듭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낙엽을 흩뿌리면서
물을 튀기면서, 눈을 뭉쳐 던지면서
장난치는 모습이 그림처럼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76년을 함께 산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할머니는 요즘 어떻게 살아가실지 …….

순이

2 Comments

  1. mutter

    2015-02-23 at 09:02

    이 영화보면서 참 많이 울었어요.
    우리가 그 길을 걸을 날이 멀지 않았거든요.
       

  2. 데레사

    2015-02-23 at 16:15

    저는 눈물이 많이 날것 같아서 안 봤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고통을 보는건 정말 힘들것 같아서요.

    정말 그래요.
    천식을 좀 수월하게 넘길 수 있는 약이 많은데 왜 그약을
    쓰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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