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축하 꽃바구니를 보내온 저의가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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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시간에 어떤 여선생님 앞으로 꽃바구니가 배달되어 왔습니다.
바구니에 담긴 축하 꽃이 어찌나 예쁜지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하고 부러워했습니다.
어떤 남편이 생일에 출근한 아내의 직장으로 보내온 꽃바구닌데 다른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꼽혀있는 메시지의 문구도 남달랐습니다.

오직 나만의 당신
당신이 있어서 내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메시지를 받는 사람도 좀 과한 문구에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꽃을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합니다.
처음엔 꽃바구니가 예뻐서 감탄하고
두 번째는 메시지에 담긴 진한 내용을 읽고 놀라고
(꽃무더기 속에꼽혀있는 메시지는 꼭 읽게 되더군요.)
꽃을 보는 사람들 마다 부러워하긴 하는데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겁니다.
왜 아내의 생일 꽃바구니를 직장으로 보내는가?

남편이 무슨 저의가 있는게 아닐까?
무슨 사연이 있을거야. 꽃바구니 받는것이좋기만 하게 아닐걸?
혹시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사건 무마용으로
보낸 것이 아닌지 본인에게 웃으면서노골적으로 묻는 분도 있었습니다.

"남편이 혹시 이선생 몰래 바람 피다가 걸렸어?" 이렇게요.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직장으로 보낸 생일축하꽃다발은 그냥 좋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것으로 단정하고 숨은 이야기를 캐려는
사람들로 하루 종일 소소한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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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는 살아 갈수록 아내의 헌신과 사랑에 감탄해서
한번 큰 이벤트를 하자 해서 그 남편이 보낸 것 같은데
아내는 꽃바구니 때문에 알게 모르게 종일 시달리는 형국입니다.
와~ 예쁘다. 이 꽃 뭐야, 이선생 생일축하바구니라고? 왜 직장으로 왔지?
보는 사람마다 이런 수순으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조그만 물건이면 어디 감추기나 하겠지만
한 아름 되는 큰 꽃바구니를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꽃바구니가 이선생을 곤란하게도 했지만 한편으론 남편과 닭살이 돋도록
행복하게 산다는 과시도 되긴 했습니다.

그러나 부부사이의 애정을 남에게 들어내 보이려고 하는 것은
그렇게 까지 해야 할 정도로 부부관계가 허약한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말을 만들 위험도 있습니다.
결혼기념일이나 부부의 생일은 둘이서 즐기고 기념할 문제이지
그렇게 금슬을 자랑할 거리는 아닌 듯도 합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남편의 용기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나의 종동서 한분은 거의 의부증환자인데 남이 보는 데는
남편에게 그렇게 잘 할 수 없습니다.
오래전 집안 어른이 돌아가셔서 시골집에 모였는데
종시숙이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러 나오자 종동서는
치약을 묻힌 칫솔을 대령하고 가마솥에 있는 뜨거운 물을 대야에 담아다
남편 세숫물을 대령하고 마른수건을 들고 남편이 세수를 마칠 때까지
시녀처럼 기다리는 모습이 다소곳하고 요조숙녀처럼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대부분은 그분들이 사는 속내를 다 알고 있어서 속지 않지만
모르는 분들이 보면 더없이 정답고 남편과 의좋게 사는 부부로 보였습니다.
종동서는 거의 쇼를 하듯이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남편에게 잘하는데
집안에서는 끝없이 남편을 의심하고 남편의 행적을 추적하고 회사에까지 전화를
걸어 대서 종시숙이 결국은 회사도 못 다니고 집안에 들어앉았습니다.
회사도 안가고 집에 있다고 또 남편을 들볶고 나가면 나간다고 집에 있으면
집에 있다고 그렇게 들볶아서 종시숙은 괴롭게 살아가는데
어디든 나가면 동서는 남편에게 더 없이 잘하는 그런 모습을 연출해서
더 곤란을 당하게 했습니다.

그러니 부부간의 문제는 부부만 알 수 있는데
꽃바구니를 보낸 그 댁 사정도 알 수는 없지만
남에게 보여 지기 위한 오버액션을 감지하고
사람들이 뭔가를 캐내려 하는 분위기도 팽팽했습니다.

메시지 문구에 "나만의 당신"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나만의 당신이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의 당신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나만의 당신을 누가 아니라고 하는가?
그도 아니면 나만의 당신을 누가 어쩌기라도 할까봐 그러는 건가?
여러 방면으로 생각이 가능한 문구였습니다.
오롯이 집으로 배달되어 집에서 부부만 있는 자리에서 아내의 생일 축하가
이어진다면 아무도 뭐라 할 이유도 없고 생일인지 뭔지 알 수 없지만
직장으로 꽃바구니를 보내고 진한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여러 사람의 마음을 복잡하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생일이 지나도 꽃바구니 하나 못 받아 본 사람들은
남들은 저러고 사는데 내 남편은 (아내는) 뭔가 하는 배우자에게 원망의 감정도 생기고
부럽기도 하고 저 집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이런 억측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글은 꽃바구니 하나 못 받는 늙은 아줌마의 심술로 비쳐 질 듯도 합니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지 질투는 절대 아닙니다.
그러면 “극구 부정은 긍정을 뜻한다.” 이런 영어 문법을 들이대실 거지요? ㅎㅎㅎ

사실
꽃바구니 받을 땐 좋지만
그거 시들면 쓰레기만 많아지지 무슨 소용이 있나요? ^^

순이

2 Comments

  1. 데레사

    2015-03-20 at 08:59

    시들면 쓰레기에 불과해도 꽃바구니 받으면 기분이 엄청 좋지요.
    한번도 생일이라고 남편에게서 꽃바구니 한번 받아 본적 없는
    제 눈에는 좋게만 보이는걸요. ㅎ

    넘 예뻐요.    

  2. 말그미

    2015-03-21 at 16:07

    생일 꽃바구니를 받으면 엄청 기분좋지요.
    ‘그런데 왜 집으로 보내지 않고 직장으로 보냈을까’
    다른 사람도 궁금합니다, 정말… ㅎㅎㅎ

    꽃이 정말 참 예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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