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직장이라 매일 병원 밥을 먹는 사람인데
병원 밥이 맛이 없다는 것은 너무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일하다 보면 배가 고파지고 식사시간이 언제 돌아오나 하고
시계를 쳐다 봐 가며 기다려서 먹는 병원 밥입니다.
반찬 타령 할 새도 없이 꿀맛으로 먹습니다.
된장국에 푹 익혀진 아욱이나 근대 시금치 등을
국그릇에 잔뜩 퍼 담아 놓고 먹으면서 많이 먹는 것이 민망하면
“ 우리 병원 밥은 된장국이 특히 맛있어, 아마 푹 끓이고 많이 해서 그런가봐”
이러며 영양사님과 주방 식구들 칭찬도 곁들여 가면서 먹습니다.
우리 병원은 김치도 맛있고, 샐러드도 맛있고, 수다를 떨면
“그 김치 다 사오는 거야”
이러며 우리 병원 주방 솜씨가 아니라고
뭐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어찌 되었든 맛있습니다.
집에서도 내가 직접 요리를 하진 않지만 주는 대로 다 좋아합니다.
특히 사위가 한 퓨전 음식들은 딱 내 취향입니다.
식탁에 반찬이 수북하게 펼쳐지면 먹기 전에 마음부터 행복합니다.
그런데 환자가 되어 침상에서 먹는 밥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환자 침상에 앉아서 1인용 식탁을 펴고 밥상을 받고 앉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프고 밥이 나를 괴롭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병원 밥이 허름해서도 아닙니다.
요즘 병원 식단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내가 좋아하는 하얀 쌀밥에
소고기 피망 볶음 골뱅이 무침 해파리냉채 떡잡채 등
식단이 전문 영양사에 의해 정성껏 차려졌는데
그게 왜 그렇게 맛이 없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간이 싱거워서 인지
기분이 우울해서인지
정말 반찬이 맛이 없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인사가
밥 잘 먹으라는 말이었습니다.
담당 의사선생님도 “식사 잘하셔야 됩니다.”
친구들도 “잘 먹어야 병을 이기지.”
우리 딸들도 “엄마 밥 안 먹으면 병이 안 나, 빨리 퇴원해야지.”
이러면서 식사 잘하라고 보는 사람마다 권합니다.
속으로만 “나도 안 다구요. 그런데 안 넘어 간다 구요.” 이랬습니다. ^^
호흡기 병동이라 폐렴 걸린 할머니들과 같은 방에 있었는데 자녀들이
할머니께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밥 잘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많이 먹고 퇴원해야지, 집에 가고 싶으면 식사하세요. 밥 안 드시면
집에도 못가고 여기 병원에만 있어야 해요.“
집에 간다고 조르는 할머니를 “밥 안 먹어서 집에 못 간다.”고
자녀들이 거의 협박 수준으로 다구 쳐도 내 옆자리 할머니는
식사 때마다 두 숟가락도 못 드시더군요.
내가 밥맛이 없다고 말하면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웃긴다고 할 겁니다.
별명이 밥순이 일 정도로 밥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식탁에 맛있는 것이 가득하면 즐겁고 입맛 없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을 평소에 했습니다.
나는 밥처럼 맛있는 것이 없거든요.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꽤 부리지 않고 일 잘하고
내가 생각해도 난 쓸모 있는 무수리과도 아니고 머슴과인 사람입니다.
아프단 말도 안하고, 좀 고단한듯해도 하룻밤 푹 자고 나면 거뜬하고
어제 몸이 지프등 한 건 다 잊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몸이 내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4월초 기침도 없었고 컨디션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자다가 40도가 넘는 고열이 나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폐렴입니다.
뜻하지 못한 폐렴의 습격으로 열흘 넘게 폐렴과 동거 했습니다.
어제 늦게 퇴원해서 집에 왔는데
우리 딸이 나를 준다고 고구마를 사다가 그릴에 구워 놨더군요.
고구마를 보자 입맛이 도는 게 어찌나 반가운지
두 개를 먹고 났더니 기운이 나는 것 같습니다.
같은 병원 밥이라도 환자 입장에서 먹는 것과
일꾼으로 먹는 것은 차이가 많았습니다.
밥맛이 좋아야 사는 맛이 나는 건 분명한 일입니다 ^^
(읽을 거리도 없는 빈 방을 들여다 보신분들께 죄송한 말씀 드립니다.)
순이
김동진 (
윤정연 (
윤정연 (
김영옥 (
윤정연 (
데레사
2015-04-10 at 22:26
아이고 폐렴으로 입원 했었어요?
고생 하셨네요.
뒷 조리도 잘 해야 합니다. 물론 잘 아시겠지만.
단체로 뛰는것도 그래요. 지휘자로 뛰는것과 졸개로 뛰는것은
엄청난 기운의 차이가 나죠.
처한 입장에 따라 같은것도 다 달라 보이게 마련인가 봅니다.
몸조리 잘 하세요.
솔이울/유인걸
2015-04-11 at 10:31
고생하셨군요? 우리내외도 4월초에 심한감기로 병원 신세를 젔읍니다.
빠른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여의도 에서
edmonton
2015-04-12 at 02:55
수니님,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쾌유를 바랍니다.
벤조
2015-04-12 at 05:02
군고구마가 입맛을 돋구셨다니 다행입니다.
먹는 것이 보약이라잖아요. 처음엔 깜짝 놀랐습니다.
순이님, 아프면 앙돼요!
말그미
2015-04-12 at 14:42
순이 님,
입원이라니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사람 건강만 보살피셨군요?
순이 님, 폐렴 예방주사를 맞지 않으셨나요?
조리 잘 하셔서 빨리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아침이슬
2015-04-13 at 06:40
운동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당.
라싸
2015-04-13 at 10:21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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