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원 낙타도 억울하지만 나도 메르스 피해자

올해는 우리 여고 동창들이 모두 회갑이 되는 해라
회갑기념으로 여행을 가자고 의논이 되었습니다.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가서 친구들과 추억도 들추어보고
우리가 살아온 60년 세월도 반추해 보자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여럿이 움직이는 일이라 날짜 조율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여러 번 의논 끝에 6월 5일로 정해졌습니다.
바로 내일 중국 청도로 여행을 가기로 한 스케줄입니다.

손자를 키우는 친구도 있어서 여행 일정을 2박3일로 짧게 잡았고
비행거리도 한 시간 삼십분이면 도착되는 중국 청도로 했고
자녀들 직장 나가는데 최대한 피해를 덜 주고 자녀 스케줄과 맞추느라
주말을 낀 금 토 일로 했습니다.
나는 친구들의 사진을 예쁘게(!) 많이 찍어 주려고
휴대가 가능한 여분의 휴대폰 충전기까지 마련했습니다.
가득 충전해서 가져가도 오전 내 쓰면 저녁때 배터리가 다 소모되어
사진을 못 찍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행사에 여행경비를 완불 했고 현지 가이드 팁도 달러로 준비 했고
면세점에서 화장품 하나 살게 있다며 여행사에서 주는
면세점할인쿠폰도 알뜰하게 준비하는 친구들과
카톡을 나누며 마음 설레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금요일에 출발해야 하는데 출발 사흘 전인 화요일에
‘메르스 때문에 가도 괜찮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의견이 올라왔습니다.
여행은 물론 외출도 삼간다고 하는데 어떨지?
우리나라 메르스 확진환자가 중국을 가는 바람에
중국에서 혐한 분위기가 대단하다는데 무리한 일이 없을까?
면역이 약한 사람은 안 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감기가 심하게 걸린 친구는 남편이 가지 말라고 한다는 등
그때까지만 해도 개인 건강이 넉넉지 않아서 가기가 힘든 사람은 할 수 없고
가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여행사에다 연락을 해 봤더니 메르스로 인해 여행을 통제하진 않으니까
출발해도 아무문제가 없다는 답변입니다.
만약 취소하게 되면 위약금 30% 를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20만원이 넘는 돈이 날아갈 것을 생각하니 그냥 가야 하겠어서
감기가 걸려 아픈 친구와 항암 치료 후에 면역이 떨어진 친구를
제외한 친구들이 그냥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메르스 예방법이라며 코에 바세린을 바르면 된다고 해서
웃으며 바세린 가지고 가서 바르면서 다니자하고
비타민 씨가 면역을 올려주기 때문에 비타민 씨를 가지고가서
먹으면서 다니면 좋겠다고 대책까지 마련했습니다.
뭔 일이야 있겠냐고 ………….

여행을 이틀 앞둔 수요일 오전에는
가족들의 반대가 심해서 가야할지 결정을 못하겠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래도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이니까 두 명만 빼고 가자고 결정했습니다.
여행사에다가 두 명은 못 간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아무래도 분위기 심상치 않았습니다.
여행이라는 것이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야지
무슨 전쟁터를 가는 것도 아니고 목숨 걸고 갈일이 있냐고
친구들 마다 가족들이 극심한 반대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식구들도 자꾸 말리는 분위긴데 난 안 간다 소리는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어떤 친구가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간 일행 중 누구 하나라도 열이 있거나
메르스 의심증세가 있으면 모두 현지에서 격리된다고 했습니다.
같은 비행기에 200명 넘는 승객이 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타고 있을지 알 수도 없는 일이고 만약 중국에 억류된다고 하면
열악한 환경에 묶여 있어야 하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여행을 떠날 일인가 하는 강력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내일 떠날 여행을 이틀 전에 취소했습니다.
일을 추진한 나도 허탈하고 친구들도 몹시 아쉬워하고
알뜰한 친구들이 개인당 20여 만 원의 손해를 입게 되어 가슴이 쓰립니다.
여행사마다 취소가 잇따르고 있어서 여행업계 타격이 크다고 합니다.
작년에는 세월호 때문에 그랬고 요즘 들어 겨우 조금 나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메르스가 우리나라 경제를 발목 잡는 군요.
우리나라 경제가 더 어려워질까 걱정이 됩니다.
우리 병원에서도 어른들을 모시고 호수공원에서 장미축제가 있어서
보러 가려고 했는데 취소되었습니다.
어르신들이 호수공원 소풍을 즐거워해서 두주 전에도 다녀왔지만
장미구경을 핑계 삼아 또 가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생뚱맞게 과천 대공원 낙타는 감금되기도 하는데 이 정도는 약과라구요?
하긴 조상이 낙타이긴 하지만 대공원 낙타는 과천에서 태어나 중동이 어딘지도 모르고
조상의 뿌리 찾기도 한번 못해본 대공원 낙타는 정말 억울하겠습니다.
메르스가 빨리 퇴치되어 사회적 불안이 가라앉고 안전해 져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개인위생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순이

4 Comments

  1. TRUDY

    2015-06-04 at 03:51

    사스,마스, 다음은?
    요즈음 지구는 예상밖의 일이 자주 터지죠?
    온 나라가 발칵입니다.
    택시를 타도 마스, 컴터를 커도 마스
    종이신문을 보아도 마스..

    제사 손해볼때는 속이 쓰리더니
    순이님께서 손해 봤다시니 아무렇지도 않네요. ㅋ   

  2. 데레사

    2015-06-04 at 04:22

    우리집도 걱정입니다.
    아들이 일본어통역이잖아요.
    잡힌 일정들이 줄줄이 취소됐다고 아들이 울쌍입니다.

    우리 친구들도 오늘 수락산역에서 만나서 점심먹고 산길 좀
    걷자는 약속이었는데 오랜시간 지하철 타는것 무섭다고 취소했고요.

    이웃나라에 민폐국으로 까지 전락해 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3. trio

    2015-06-05 at 03:30

    이곳은 그런 소식은 아직 없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네요.
    그런데 순이님 이제사 환갑이세요? ㅎㅎ
    아직 한참 젊으시네요.
    환갑 축하해요.
       

  4. 수정

    2015-06-05 at 08:44

    6월 중순쯤 라마단이 시작되는데,
    그전 메르스 때문에 바이어 발길이 뚝!
    제가 건강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오늘도 받았습니다..요르단에서요,
    조심조심하고 빨리 사태가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블로그 시작하기전 "순이이야기" 일부러 찾아서 많이 읽었습니다.
    이렇게 글로나마 만나뵙게 되어 무지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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