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어머님!”
내 등에 매어달려 어깨너머로 아기가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던 4살짜리 한이가 나에게 하는 소리입니다.
할머니도 아니도 엄마도 아니고 어머님이라니?
아기에게 온통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가
이게 무슨 소린가 해서 다들 한이를 쳐다봤습니다.
사위 딸 등 온 식구가 잠깐 어리둥절하다가 웃음이 터졌습니다.
한이도 히히 하고 멋쩍어 하며 웃더니 저쪽으로 뛰어 갑니다.
생후 5개월째로 접어드는 까꿍이가 막 뒤집기를 시작했습니다.
식구들이 아기가 뒤집는 모습이 신기해서 한이를 잊고 있었습니다.
까꿍이는 누워서 팔다리를 파닥파닥 하고 천장만 보고 누워있었는데
어느 순간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를 넘어가는 가 싶더니
몸무게 중심을 왼쪽 옆구리 쪽으로 쏠리게 해서 홀딱 뒤집었습니다.
처음으로 뒤집기에 성공한 까꿍이는, 저도 이게 무슨 일이가 싶은지
놀라서 얼굴을 바닥에 대고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그걸 들여다보느라 한이를 안 쳐다 보자
아기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어른들에게 자신에게봐 달라는 뜻으로
한이는 어머님을 근엄한 목소리로 부른 것입니다.
우리 딸은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만 한이 아빠가 어머님이라고 부르니까
그걸 흉내 내어 보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땐 제 아빠를 여보~ 라고 불러서 온 식구들을 웃기더니
이젠 할머니를 어머님이라고 해서 온 식구들이 자신을 쳐다보게 만들었습니다.
카세트에 테이프를 걸어 동요 노래를 들려주면 그걸 누워서 빈둥거리며 듣는데
까꿍이가 울거나 한이 엄마와 내가 무슨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여러분 쉬잇~ ”이러며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면서 우리를 조용히 하게하고
"얘들아 조용해줘서 고마워" 이러기도 합니다.
한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투를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이집에 가서는 집에서 쓰는 말투를 사용하겠지요.
우리 한이는 요즘 유아사춘기라고 부른 시점에 있습니다.
유아사춘기는 정확한 용어가 아닐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키울 때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미운 일곱 살” 정도의
용어가 요즘 아이들이 문화적인 이유로 조숙해서 미운 짓하는 네 살, 다섯 살을
유아사춘기라고 부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동생이 태어나서 부모의 사랑이 저에게만 집중되던 것이 분산되고
어쩌면 아기만 더 좋아하는 듯해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자아가 생겨서 땡깡도 늘었고 말썽도 부리고 삐지기도 합니다.
예민하고 장난감을 집어 던지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해서
우리 착한 한이 누가 바꿔갔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까꿍이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한이의 시선이 느껴지면
얼른 한이 에게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홀딱 벗고도 목욕탕에서 노래하고 제멋대로 누가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춤추고 노래 불렀는데 요즘엔 눈치가 는 대신에
노래가 줄었습니다.
노래 듣고 싶다고 억지로 부르게 해도 요즘엔 쑥스러워하고 시켜도 잘 안합니다.
저도 자아가 싹트고 질투가 생기고 부모의 사랑을 나누어 가지려니 힘이 드나 봅니다.
한이는 특히 제 아빠를 좋아해서 아빠가 까꿍이를 안고 있으면 못 견뎌합니다.
기어이 아빠에게 매어달려 아기를 내려놓고 저를 안으라고 합니다.
엄마가 까꿍이에게 젖을 먹이고 안아 주는 것까지는 이해를 하는 것 같은데
그나마 대안으로 찾은 아빠의 사랑은 공유하기 싫은 것입니다.
아빠만 있으면 아빠에게 바짝 매달려 아빠랑 모든 놀이를 함께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라도 아빠를 자기 곁에 붙여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까꿍이는 까꿍이대로 옹알거리며 뒤집기도 하면서
어른들의 시선을 붙잡고 같이 놀자고 하고
한이는 한이대로 불만도 많고 짜증을 내는데 그래도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부모가 먹고 자고 놀고 가르치고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뭘 하고 놀까 에만 집중하는 즐거운 손자를 보면서
이 아이들이 자라서 살아갈 미래가 은근 걱정이 됩니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가기엔 손자들에게 책임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자주 변종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힘들고 괴롭게 하면 어쩌나
환경오염은 어떻게 해야 하나
에너지 고갈은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암 등 정복되지 않은 질병들은 어떻게 하나
이런 불가능한 고민까지도 자꾸 하게 됩니다.
나만 살다가 죽으면 끝이 날 일이라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겠지만
대를 이어 살아가는 인류의 장래가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도 내 능력과 노력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라
그냥 걱정만 합니다.
다만 아이들이 좋은 인성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손자들을 사랑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먹고 자라니까요.
순이
데레사
2015-06-09 at 05:17
이렇게 혼돈의 시대가 계속되면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고 말고요.
요즘보면 정부도 문제지만 국민성도 문제가 있는것 같아요.
자가 격리자들이 계속 돌아다니는걸 보면 정말 딱하고
한심하다 못해 분개까지 하게 됩니다.
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데 말입니다.
하기사 여기서 이 표출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우리는 그저 빨리 지나가 주십사 하고 기도나 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