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시간

요즘엔 우리병원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근무합니다.
마스크를 쓰면 일단 비말전염을 차단할 수 있으므로
나도 보호되고 환자도 보호됩니다.
그러나 마스크를 오래 쓰고 있으면 몹시 답답합니다.
나처럼 안경을 쓰는 사람은 안경에 김이 서려서 시야를 방해받기도 하고
입에서 마스크가 흘러 내려서 자주 올려야 하고 숨길이 막히는 등
마스크 착용을 해 보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메르스를 치료하는 병원에서는 3kg이 넘는 위생복을 착용하고
의료진이 음압병실에서 근무한다니 그 고통이 얼마나 클지 ………..
집에도 못가고 오랜 시간 근무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일을 하고 있지만
모든 의료진이 사명감을 가지고 근무한다고 합니다.
환자는 아파서 그런다고 하지만 그런 힘든 근무를 마다하지 않고
메르스 퇴치에 힘을 쏟는 모든 분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내고 격려해야 합니다.

우리병원에서도 보호자들께 면회 자제를 요청했더니
면회객이 하루에 한 두 명 올 정도로 줄었습니다.
매일 퇴근하면서 들리던 분들도 안 오시고
부모님의 상태가 궁금해서 오신 분들도 창문 넘어 먼발치에서
얼굴만 살피고 돌아섭니다.
꼭 환자와 만나야 하는 면회객은 마스크를 하고 손 소독을 철저하게 한 후에
면회실에서 조금 떨어져서 잠깐 면회를 하고 해어집니다.
요양병원엔 연로한 분들이 계셔서 호흡기 질환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만약 한분이라도 열이 나거나 의심증이 있으면 말 그대로 큰일입니다.
다행히 보호자분들도 다 협조를 잘 하시고 계셔서 안정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외롭고 쓸쓸한 요양병원이라 위문단이 자발적으로 찾아옵니다.
색소폰 연주하는 분들이 와서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공연합니다.
색소폰 연주로 듣는 옛날 노래는 어쩐지 더 향수를 자극합니다.
섬마을 선생님이나 연분홍치마가 ~ 이런 노래는 젊은 날에
어르신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라 아주 좋아합니다.
미용 봉사하는 분들은 오셔서 이발을 해 주고
무용을 하는 분들은 춤을 추어서 어르신들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노래하는 분들은 노래로 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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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무용하는 분들이 오셨는데 특이하게도
예쁜 무용복을 입고 율동(!)을 하는 분들이머리가 허연5~60대 할머니 들이셨습니다.

아마 70이 넘어 보이는 분도 있었습니다.
노인이 노인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어린이 학예회 때 하는 율동처럼 단순하고 예쁘고 깜찍하기 까지 한데
그걸 예순이 넘은 할머니가 하시니까 가슴이 어쩐지 짠했습니다.
우리 어르신들은 인지장애로 그렇게 즐거워하지도 않고
그렇게 슬퍼하지도 않는 웬만한 정서적 자극에는 무감동 한 분들입니다.
나이 드시면 정서적 둔화로 잘 웃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일단은 화려한 옷을 입고 등장을 하니 어르신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을 하시더군요.
공연장소도 협소하고 무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그분들은 정성들여 꽃단장을 하고 어르신들에게 춤을 추어 보였습니다.
음악에 맞추어 예쁜 옷을 입고하는 율동은 어르신들 맘에 꼭 드는 듯했습니다.
공연 후에는 환자 한분 한분을 가슴에 꼭 안아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파서 병원에 계시는 어른들에게 생기는 연민 때문이겠지요.
어른들을 위로한다는 대의명분 속에 그분들은 공연을 하면서 스스로도 자신이
위로를 받고 더욱 건강한 삶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시간과 노력을 들여 애써 위문을 다니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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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35번 환자는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젊은 의사가 본인의 감염상태를 모르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갔는데
마치 의사가 알고도 그렇게 행동한 것처럼 되어 버려서
의사로서 기본을 지키지 못한 파렴치한이 되었는데 얼마나 속상하고 화가 났겠어요.
그런 스트레스는 면역력을 더욱 떨어뜨리고 질병을 악화시키게 됩니다.
온 몸의 에너지를 쏟아 질병 치료에만 전념해야 하는데 나쁜 소문과 싸우기까지 하느라
에너지를 쏟다보니 70대 할머니도 극복하고 퇴원하는 메르스를
젊은 분이 호흡기까지 달아야 하는 지경에 가게 된 것 같습니다.
메르스를 물리칠 때까지 스트레스를 남에게 끼치는 일도 삼가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습니다.

대부분 모든 질병을 의학이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지만
사실 치료하지 못하는 병이 더 많습니다.
병원에 가면 모든 병이 치료될 거라고 믿지만 원인도 밝혀내지 못하는
희귀난치병이나 본인만 아는 고통스러운 증상, 암 등 기이한 질병이 많습니다.
이번 메르스 사태도 그런 것입니다.
이런 질병이 돌 때 일수록 우리는 마음을 더 겸손하게 해야 하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위로와 격려가필요한 때입니다.

순이

5 Comments

  1. 데레사

    2015-06-13 at 06:13

    그냥 눈물이 날려고 합니다. 오늘 글 읽으니까 가까운 장래의
    내 모습이 보여지는것 같아서요.
    외롭고 병들어 힘든 분들에게 면회조차 할 수 없는 메르스가
    정말 미워 집니다.
    하루 빨리 물러가야 할텐데, 걱정 스러워요.

    삼성병원의 그 의사분 반드시 완쾌되리가 믿어요.
    그 분을 위해서 저도 기도 했습니다.
    의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쳤는데 그렇게
    끝나면 절대로 안되지요.

    저도 외출 자제하고 오늘은 매실청 담궜어요.
    순이님과 순이님이 근무하는 병원 모든분들이 안전 하기를
    바랍니다.   

  2. 벤조

    2015-06-13 at 17:46

    의료 현장에서 뛰시는 순이님이 쓰신 글이라서 더욱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한국에 메르스가 유행한다는 것 부터 저는 참 이해 할 수가 없었지만
    이 불안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더욱 더 이해가 안 됩니다.
    곧 물러갈거라 믿고 기도합니다.
    특히 일선에서 수고하시는 의료진과 진실한 공무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그들을 도와주세요, 메르스를 물리쳐 주세요.
       

  3. jh kim

    2015-06-14 at 10:51

    너무 너무 감사드려요
    악성 전염병으로 온국가가 어려움을격고
    우리 대통령이이미 발표되고 예정된 미국정상과의 방문회담도 연기하는 이때에 서로 책임을전가하고 본인도 모르게 환자가된 사람을 의도적으로 나쁜환자 나쁜사람으로 몰아가는 이 패역한 현실에 너무너무 가슴이 아픈데도 내가 책임지고 지금부터 열심를 다하겠노라 나에게 돌을던지라는 옳은지도자나 옳은 이웃은 모두어디로 간것일까요 ? 순이님 감사드려요   

  4. 솔이울/유인걸

    2015-06-14 at 21:06

    의료인들이야말로 성직자입니다.신성한 직업인들이지요.,,   

  5. trio

    2015-06-15 at 01:02

    뉴스로 듣기에는 온 나라가 어떻게 될 것같아요.
    정말 불안하고 힘든 시기인 것같습니다.
    이럴 때 병원에서 일하시니…
    부디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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