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공포는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강하다.

40여 년 전 만 해도
우리나라에 해마다 수인성 전염병이 발생했습니다.
공동 우물을 길어다 먹는 탓도 있었고
사람들도 먹고 살기에만 급급하여 개인위생에 신경 쓸 여력도 없고
병원 등의 의료시설이 많이 없었고
인분처리위생도 열악했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영양상태가 좋지 못 했습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음식물 보관 상태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콜레라나 장티프스 등으로 매년 사망자가 있었습니다.
수인성 급성전염병인 콜레라·장티푸스·이질 등은 단골로 유행했고,
홍역·두창·소아마비·백일해·디프테리아 등도 해마다 유행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살던 동네에서도 콜레라 환자가 발생했는데
우리 어머니의 대처 방법은 특이했습니다.

수 십 가구가 공동우물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우리 집도 그 우물을 길어다
식수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콜레라가 발생하자 우물은 뚜껑을 덮어 잠가버려
사용을 못하게 하고 시에서 물차로 물을 날라다 주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을 길을 때 쓰는 물지게로 초롱에 받아다 사용했습니다.
물차가 오면 집집마다 아이들까지 동원해서 조그만 주전자까지 사용해서
물을 날라다 썼습니다.
우리도 주전자라도 들고 나가 놀이하듯 물 배급을 받고 싶은데 어머니는 혼자
힘들게 물지게를 져 나르면서도 자녀들이 물 차 근처에 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많은 식구에 물차가 주는 물만으로는 식수도 부족하지만 그런 걸 가지고
어머니는 불평하지 않으셨는데 유독 우리가 콜레라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습니다.
“ 엄마~ 내 친구 누구네 집 식구들이 다 콜레라가 걸려서 실려 갔대.”
이런 말을 전할라치면 엄마는 콜레라라는 말을 다 하기도 전에 검지 손을
엄마 입에 가져다 대시며
“쉬~잇 다 알고 있으니 그런 말은 전하지 말아라.” 이러십니다.
나는 어머니가 식구들끼리 왜 전염병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물은 끓여 마시고 도마나 행주는 삶고…..학교에서 배운 예방법이나
콜레라의 증상, 격리, 같은 것을 어머니께 전하고 싶어도
어머니는 한사코 들으려 하지 않고 어머니 방식대로 하셨습니다.
나는 학교에서 자연이나 과학을 배웠다고 건방이 들어서
콜레라나 전염병에 대해 우리어머니가 너무 무지한 것 같아 보였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전염병이나 콜레라는 말을 할 때 말로 전염 되는 것으로
알고 계시는 것은 아닌 가해서 전염병을 대하는 엄마의 태도가 의아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평소에도 식구들이 감기나 배탈이나 그런 것에 걸리면
대처하는 방법이 병을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녀들이 감기가 걸려서 기침을 콜록 콜록 하고 다니다 엄마께
“엄마 나 감기가 걸렸어.” 라고 말씀 드리면
“알고 있다. 밥 잘 먹으면 낫는다. 걱정하지 말아라.” 이러시고
모기가 물려 살이 벌겋게 부어올라 긁고 있으면
“말은 하지 말고 침을 발라라.”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릴 때는 침이 약 인줄 알았습니다.
지금도 모기에 물려서 가려우면 무의식중에 내 침을 바르기도 합니다.
병에 관심을 보이기는커녕 감기든 배탈이든 들추어내서 질병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게 하고 무시하는 방법을 쓰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왜 저렇게 무뚝뚝하고 미련하실까?
다른 집 엄마들은 상냥하고 동네에 이슈가 생기면 애들보다 더 먼저
나서서 흥분을 하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야속할 지경이었습니다.

학교가 휴교하고 환자를 학교 교실에 수용하는 일이나
방역차가 아침저녁으로 하얀 연기 같은 소독약을 뿌리고 다니고
우물이 폐쇄되고 마을 앞에 통행금지 라인이 생기는 등
흥분해서 어머니께 전해야 할 이야깃거리가 천지인데
어머니께서 원천 봉쇄를 하니 재미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지론은 가만히 있으면 다 지나가는데
“감기야, 콜레라야 하면서 위해 바치면(?) 더 안 나간다.
병이 저를 위해 주는 줄 알면 떨어져 나가지 않으니까
이름을 부르지도 말고 무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일에 관심하지 말고 그럴 시간이면 책이나 한자 더 봐라”
하시면서 옆집에 콜레라가 발생했다고 해도 호들갑을 떨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가족을 콜레라로부터 지키느라 행주를 삶고 도마를 햇볕에 말리고
자녀들을 사람이 많이 모이는 물 배급 장소엔 못 가게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저마다 주전자라도 들고 와서 물을 받는데
우리는 그 재미있는 일을 못하게 하는 엄마가 야속했습니다.
괜히 사람 많은 곳에 가서 애들이 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혼자 물지게를 져 가져다 놓고 또 차례를 지켜 물을 받아오려면
시간이 더 걸리는 데도 엄마 혼자 사투를 벌이시면서 우리는 못하게 했습니다.

요즘엔 매일 매시간 매분마다 온갖 매스컴에서 메르스를 다루어서
메르스라는 용어자체가 모든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몇 명이 감염되었는지, 하루에 몇명이돌아가셨는지 격리대상자는 몇 명인지
어떻게 옮겨갔고 어떻게 앓고 있는지 정말 시시콜콜 뉴스를 접하면서
감염된 사람이나 안 된 사람이나 바이러스에 하루 종일 노출되어
이미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러니 경제활동도 못하고 다들 위축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전염병이니까 국가가 나서서 대처하는 것은 맞지만
메르스와의 전쟁 중에도 누가 잘했는지 누구 인기가 높아졌느니
이런 것을 따져서 말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납니다.

메르스가 퍼지는 기회에 누구의 인기가 높아가는 것이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차기 대선에 출마할 사람의 인기를 이럴 때 조사하는 일도 웃기는 것 아닌가요?
국민 누가 그런 일에 관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말로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것은 아니지만 혼란스럽고 공포스럽게 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콜레라라는 전염병 이름을 부르는 일도 못하게 하셨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지금 메르스 사태를 생각하면 어머니의 방법이 옳습니다.

이 어려움이 빨리 지나가고 회복하기위해
모두 잠잠히 자기 일을 하면서평상심을 지켜야할 것 같습니다..

순이

5 Comments

  1. trio

    2015-06-18 at 10:39

    어머님께서 대단히 지혜로우시네요.
    훌륭하세요.
    메르스…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2. 벤조

    2015-06-18 at 13:04

    의료 현장에 계신 분의 말씀이라서 더욱 격려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순이님.
       

  3. 인회

    2015-06-19 at 00:13

    병을 무시하는것..ㅎㅎ그러면 안되는데 제방법과 같으네요.

    안정되어야할텐데…   

  4. 필코더

    2015-06-19 at 00:34

    어머님은 대단한 선각자셨던 것 같습니다. ‘메르스 확산의 주범은 호들갑이다’ 라는 저의 주장과도 일치하는 것 같고..’무시요법’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메르스엔 最適의 요법이라 생각합니다. 약 먹으면 2주, 안 먹으면 15일만에 남는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제약회사가 들으면 기절초풍할 말이지만.. .    

  5. enjel02

    2015-06-19 at 12:32

    그 옛날 슬기롭게 대처하신 어머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전 불결한 소치의 병들이 많았지요
    부스럼이라고 하나요 몸 전체에 헌 디가 나서 염증을 일으키고
    그러나 지금은 그런 세상도 아니지 않나요

    공포 분위기보다는 서로가 개인위생과 남을 위해서라도
    지킬 것을 지켜나가며 한마음으로 대처해 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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