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요즘엔 보기 드믄 광경이지만
옛날엔 집 전화나 회사전화로 개인의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30대 초반에 우리 친구가 직접 들려준 이야긴데 남편이 바람이 났었답니다.
연애, 특히 불륜의 재미에 빠진 남편은 넋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듯 하고
집에 와서도 전화벨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더랍니다.
전화벨이 울려서 받으면 저쪽에 서 아무 말 없이 끊기도 하고
남편이 받아서 가만히 들고 있다가 "잘못 온 전화네."라며 수화기를 내려놓더랍니다.
다른 땐 전화벨이 울려서 좀 받아 달라고 해도 집 전화를 잘 안 받던 사람이
전화벨이 다섯 번 울리면 그때는 본인이 받아서 아무 소리 없이 들고 있다가
수화기를 놓고 무슨 핑계를 대고 집에 들어 왔다가도 슬그머니 사라지는 일이
종종 있어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아이들이 어리고 그 치다꺼리 만 해도 바쁘니까 남편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지 못하다가 전화를 받으면 자주 소리 없이 끊는 것에 신경이 쓰인 친구가
어느 날 전화를 받아서 아무 말 안하고 들고 있었더니 수화기 너머의 여자가
남편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자기야~ 어쩌고~ 하면서 어디서 기다리니 나오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그제야 누구냐고 했더니 여자가 놀라서 후다닥 전화를 끊더랍니다.
일요일이라 집에서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남편이 사태를 파악하고
얼굴이 사색이 되어 쳐다보는데 뭐라도 물건을 집어 던져 남편을 때리고 싶더랍니다.
그래서 둘러보니 텔레비전도 있고 꽃병도 있고 의자 같은 것도 있어서
뭘 집어 던질까 궁리를 하는데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에서도
텔레비전은 비싸게 장만한 건데 아까워서 못 던지겠더랍니다.
꽃병도 깨지면 유리 파편에 애들이 다칠 것 같고 의자는 집어 던질 힘이 부족하고…….
순간 부엌으로 달려가서 플라스틱 바가지에 물을 한바가지 받아 와서
남편에게 퍼 부으면서 “이~ 나쁜 놈” 하고 욕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에 남편의 바람이 가라앉고 사과를 받고 수습을 한 후에
친구들이 모여 무슨 얘기 끝에 들었는데 오늘 그 이야기가 생각이 난 것은
벤틀리로 페라리를 들이 받았다는 통 큰(?) 부부싸움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운전면허를 못 딴 사람답게 어떤 자동차가 비싼 자동찬지 좋은 건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명품가방이라고 아무리 눈앞에 들이대도 그 가격을 모르니까
감동도 없고 감탄도 못합니다.
샤넬이나 이브 생 로랭 정도는 워낙 유명하니 상표를 알아보기는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지, 난 명품가방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렇듯 고급 승용차 하면 벤츠나 BMW 정도 이름을 기억하고
내 막내 여동생이 타는 크라이슬러정도만 외제차를 구별해 냅니다.

영화에서나 들어 본 차 이름이 요 며칠 인터넷 기사에 오르내리더군요.
벤틀리와 페라리가 충돌한 뉴스입니다.
페라리는 알파치노가 주연한 여인의 향기라는 영화에서 봤습니다.
벤틀리는 자동차 엠블럼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차지만
가격이 4억이 넘는다니까 어지간히 좋은 차인가 봅니다.
벤틀리를 탄 여자와 페라리를 탄 남자는 부부사이로
페라리를 타고 다니는 남편의 뒤를 쫒다가 남편 옆에 낯선 여자가
타고 있는 것에 격분하여 벤틀리로 들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자의 나이는 27세입니다.
꽃같이 아름다운 나인인데 벌써 남편의 바람기를 잡으러 쫓아다녀야 하니!
여자는 음주운전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가 면허 취소에 해당한다는 것을 보면
속이 상해서 어지간히 마셨나 봅니다.
나이로 보면 아직 신혼일 터인데 자신의 차로 남편을 들이 받을 땐
죽을 각오로 그랬을 까요?
술김에 그랬을까요?

젊은 부부의 불화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 안타까운 것은
자신들이 노력해서 번 돈을 가지고 벤틀리와 페라리를 샀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돈 많은 부모에게 받은 것이거나 옳지 않은 방법으로 취득한 것이겠지요.
아무런 가치판단이 없는 자녀에게 흉기 같은 부를 물러준 것이
위험을 자초한 것이라고 보여 집니다.
남편과 연애중인 여자의 실체를 안 순간 그 화가 폭발하는 순간에도
자기가 아끼는 살림살이를 부수지 못하고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 바가지를 찾는
소심한 부부싸움을 하던 세대와는 정말 대단한 차이를 느낍니다.
돈의 가치를 자녀에게 가르치는 일이
부를 물려주는 것보다 훨씬 먼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수고하지 않고 얻는 행운은 화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쾌락에 쾌락을 쫓고 자극적인 즐거움을 찾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내 것 내 맘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 하면서
강남대로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노동력을 상실하고 굶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 배가 부를 때 까지 먹고 또 먹고 아낌없이 부수고 하기보다
타인의 삶을 돕기 위해 내가 한 숟가락 덜 먹고 남긴 것으로
남을 돕고 살아야 행복하고 좋은 삶입니다.
벤틀리와 페라리의 충돌은 가치기준을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깁니다.
차 수리비만 일억이 넘게 나온다니 부부싸움치고는 거액의 부부 싸움을 한 것 같습니다.
아까워서 플라스틱 바가지 하나 깨지 못하는 부부싸움을 하던 우리세대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부부싸움도 정말 통 크게 하는 군요.

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