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거진 갈대 숲에서 고구마를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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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어느 봄날 심어 둔 고구마를 캐러 강화엘 갔습니다.
심기만 하면 땅이 소산을 내는 자연의 법칙을 찬양했습니다.
벼가 익어 고개 숙인 황금 들판을 보며 고구마를 담아올
빈 박스를 가득 싣고 가을 소풍가는 어린이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하였더니 안개가 어찌나 자욱한지 한강변을 지나는 내내
몇 미터 앞을 내다 볼 수 없었습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나오는 "안개가 점령군처럼 주둔한…."이 대목이 실감났습니다.
아침에 안개가 끼면 날이 맑고 덥다고 누군가가 알려주었습니다.
뙤약볕 아래서 고구마 캐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난 비탈 출신답게
밭에서 일하는 것이 싫지 않아서 매년 자원을 합니다.
대게는 심거나 거둘 때 한 번 다녀오면 힘들다고 다시는 안 가려고 합니다.
흙에 엎드려 일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흙에서 얻는 치유가 분명 있습니다.

병원식구들과 짓는 농사라 직원들이 참여합니다.
구급차와 밭주인의 봉고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동막 해수욕장을 지나 밭에 도착해 보니 갈대숲을 잘 못 찾아온 느낌이 들 정도로
밭 전체에 잡초가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심어놓은 고구마는 보이지도 않고 누런 잡풀이 우거진 밭가에 서니
한해 농사를 망친 허망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여러 명이 갔으니 밭가에 자리를 펴고 짐을 날라다 놓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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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를 제거해서 밭고랑을 찾아야 고구마를 캐보겠는데
밭을 가득 점령한 잡초를 베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는데
봄에 가서 심어 놓고 여름내 한 번도 안 가 보고
가을에 고구마를 캐러 간 것이 사실 잘 못된 것입니다.
김도 메 주어야 하고 잡초 제거 농약을 주기도 해야 하는데
달랑 심고 수확을 바라는 일이 염치없고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난 올해로 고구마 농사 3년차라 아는 소리를 독판 했습니다.
"손이 가장 안가는 작물이 고구마야. 고구마는 심어만 놓으면 먹더라고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고구마 수확이 많았어.
작년에는 고구마를 캘 때 보니 굼벵이 먹은 것이 많아서
올해는 굼벵이 약을 뿌리고 고구마를 심었기에 농사가 잘 되었을 거야."
이러며 아는 척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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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재작년 농사에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마을 이장님께서
손을 봐 주셨던 것도 있고 비가 때맞추어 왔었기에 소출이 있었던 것입니다.
올해는 가뭄이 심해서 작물을 자라지 못했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가뭄 속에서도 잡초는 맹렬한 기세로 밭을 점령했고 고구마는 잡초 그늘에서
시들시들한 모습으로 숨만 붙어 있었나 봅니다.
작년엔 굼벵이가 파 먹은 게 많기는 했지만 기대보다 많은 소출이 나서
같이 농사지은 분들이 두 박스씩 가져가고 협력병원에도 보내고
우리병원에 입원한 어르신들도 간식으로 쪄드리고 했는데
올해는 잡초를 어렵게 제거하고 고구마를 캐어 보니
고구마라고 달린 것이 새끼손가락만 하고 커야 아기 주먹만 했습니다.
농사를 완전히 망친 것이지요.
인건비는 따지지 않는 다고해도 땅을 덮은 검정 비닐과 고구마 순을 사고
농기구를 빌리고 하느라 들인 돈도 못 건진 고구마 농사 3년차의 실패입니다.
고구마 캐러 간다고 소문을 냈기에 선물로 보내야 하는 곳이 있어서
이웃 농가에서 고구마를 사가지고 와야 했습니다.

고구마 농사 3년차의 교훈은 이렇습니다.
올해 가뭄이 무척 심했기에 가끔 가서 물을 주었어야 했고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기에 농사는 부지런해야 하고
땅에서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아니라 돌본 만큼 거둔다는 것입니다.
이웃 농가에서는 호박덩이만큼 큰 고구마를 수확하는 것을 보니 무척 부러웠습니다.
내년에도 고구마 농사를 지을 예정인데
올해 실패한 농사를 교훈삼아 잘 해야 하겠습니다.

순이

4 Comments

  1. 노당큰형부

    2015-10-18 at 08:09

    맞아요 비가 많이 와 주었다면
    그래도 수확이 더 좋았을 겁니다.
    김포 농부들도
    모두 비가 덜와서 금년 고구마 농사는 실패했다고 합니다.

       

  2. 선화

    2015-10-18 at 10:51

    농사는 정말 정직하지요

    시골에 살아보니..뭐니뭐니해도 물이 젤로 중요하더군요
    오늘도 종일 밭에 물이 절로 돌아가는 제주의 밭들…

    고구마도 사먹는게 싸요~~ㅎㅎㅎ   

  3. 데레사

    2015-10-18 at 15:02

    고구마뿐 아니라 대부분의 작물들이 사먹는것 보다 비싸게
    치인다고들 해요. 그렇지만 내 손으로 길러서 먹는다는것이
    중요하고 즐거움인데 고구마 농사가 시원치 않아서
    안타깝네요.
    내년에는 농사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4. 비풍초

    2015-10-19 at 05:08

    고구마.. 그냥 심기만 하고 때되면 수확하면 되는 거죠.. 아주 쉽죠.. ㅎㅎ 근데.. 제가 줏어들은 얘기로는.. 고구마 농사가 복불복이다 즉 수확시기 가까이 가봐서 흙을 파보면 제대로 열렸는지 망쳤는지 알 수 있을 뿐이다라고… 에고.. 참 안타깝네요… 하나라도 얻어먹을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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