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과 벌칙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재미

학교를 졸업하고 한 직장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퇴직한 친구가 있습니다.
공직에 있을 때는 바빠서 친구들 모임에 못 나오다가
작년에 퇴직한 후로는 우리 모임에 합류했습니다.
오랜 세월 못 만났지만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이라
조금도 거리감 없이 잘 어울려 지냅니다.
농담조로 "놀던 물이 다르다."고 하는 말이 있지요?
정말로 이 친구가 함께하고 부터는 친구들과 노는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부서원만 700여명이 넘는 국가기관에서 부서장을 한 사람이라
카리스마도 있고 리더십이 대단합니다.
다른 친구들도 직장생활을 하긴 했지만 결혼하고 자녀 키우고 하는
대게 사적인 영역에 기반을 두었다면 이 친구는 결혼 후에도 꾸준히 공직에
있었기 때문인지 노는 게 우리랑 많이 다르더군요.
직장 생활하면서 겪은 애환을 들려주는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겠더군요.
누군들 삶이 쉽겠습니까만 정권에 따라 부침이 심한 자리여서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이면 이불 밑에 발을 넣고 둘러앉아 수다를 떠는 것을 낙으로 삼았는데
이 친구는 아예 놀 수 있는 도구를 준비해 왔습니다.
남편도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계시다가 은퇴를 하신분이라

내외가 모임이 있을 때 마다 싸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윷.jpg

(사진 네이버에서 퍼옴)

놀이 도구라는 것이 우리 민속놀이인 윷이었습니다.
몇 십 년 사용한 윷가락은 길이 들어 모서리도 둥글어졌고 윤이 반들거렸습니다.
윷뿐 아니라 윷판과 윷말까지 배낭에 넣어가지고 와서 꺼내놓는데
전문가 포스가 느껴집니다. ^^
화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타짜라고 하는데
윷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뭐라고 부르는지 궁금해서 친구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척사라고 한다는 군요.
그러고 보니 척사대회라고 들어본 것 같습니다.

친구는 평생 윷놀이만 전문으로 한 사람처럼 윷을 잘 다루었습니다.
직장에서 세미나 등으로 어디를 가게 되면 본인이 주선하여 술이나
화투를 못하게 하고 건전한 윷놀이를 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인지 던졌다 하면 윷 아니면 모가 나옵니다.
말도 잘 쓰고 재미있게 게임을 잘 리드했습니다.
이친구가 가지고 온 윷에는 특이하게 ‘천국’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대게는 백(back) 도라고 해서 한 칸 뒤로 가는 것은 봤는데 천국은 처음 이었습니다.
천국이 나오면 모를 지나 중앙에 까지 단번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윷놀이는 여러 변수가 작용해서 더욱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놀이였습니다.
규칙도 벌칙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서 더욱 즐겁습니다.

윷놀이는
윷과 윷판 윷말만 있으면 편을 갈라서 윷을 던져 나온 윷 패에 따라
윷말을 써서 먼저 4동이 나면 승리하는 게임입니다.
매우 간단한 도구와 단순한 방법으로 놀이를 하지만 놀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수들이 흥을 돋우기도 하고 탄식을 자아내게도 했습니다.
노는 일에 미숙한 친구들이라 윷놀이를 처음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윷을 던지는 방법부터 가르쳐서 했는데
어려운 게임이 아니라서 금방 배워서 좋아했습니다.
10명의 친구들이 두 팀으로 나누어 게임을 하고
벌칙으로는 진 팀에서 다음날 저녁식사를 사기로 했습니다.

첫길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말만 쓰면 잡히기도 하고
여럿을 업고 한꺼번에 가려고 욕심을 내다가 마지막 한 칸을 남기고 잡히기도 했습니다.
윷놀이에 재미를 낸 친구들이 금방 다양한 용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어떤 친구는 던지기만 하면 개가 나오니까.
"나는 왜 개뿔만 나오냐" 이러니까
“너는 원래 에이쁠만(A+) 좋아하잖아 이래서 재미있게 웃었습니다.
지나 놓고 보니 무슨 얘기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다 기억도 할 수 없지만
그 당시는 배꼽을 잡고 어떤 친구는 방을 뒹굴며 웃을 정도로 즐거웠습니다.
친구들과 이렇게 소소한 재미에도 크게 웃으며 행복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윷을 던지기 전에 노래를 한다거나 장기자랑을 하나씩 한 후에
윷을 던지기로 했는데 무척 재미날 것 같습니다.

미리부터 장기 자랑이 걱정이 된 친구는 심부름을 자청하기도 하고
‘백만송이 장미’를 잘 부르는 친구에겐 그걸 불러달라고 미리 주문하기도 합니다.
순이는 무슨 장기를 자랑할까 궁금하시지요?
저는 빙초산. 월 플라워. 젖은 담요.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서
친구들의 열띤 분위기에 찬물만 끼얹지 않아도 다행입니다. ^^
윷놀이 하나 가지고도 다양한 변화를 즐기면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규칙과 벌칙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어서 더욱 재미있는 윷놀이입니다.
겨울 모임엔 윷놀이가 제격일 듯합니다.
아파트에선 좀 소란스럽겠지요?

순이

2 Comments

  1. 데레사

    2015-11-13 at 01:09

    요즘 파는 윷은 무거워서 아파트에서는 울려서 안돼요.
    이불을 깔고 해도 시끄럽다고 하더라구요.
    옛날 시골에서 싸리나무나 참나무를 깎아서 만든건 가벼운데
    지금 파는건 왜 그리 무거운지 모르겠어요.

    저도 윷판 잘 쓴데 한번 붙어보고 싶어요. ㅎㅎ   

  2. 말그미

    2015-11-14 at 11:55

    앗~
    윷놀이…
    갑자기 시골 생각이 납니다.
    친구들과 얼마나 재미 있으셨을까요?

    윷놀이를 하자면 필히 조용한 방에 앉아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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