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에 화를 내면 맘충일까요?

토요일 오후
까꿍이가 베란다 창에 매달려 밖을 내다보고 있는 모습이 꼭 새장에 갇힌 새 같아 보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모처럼 미세먼지 걱정하지 않고 산책을 할 수 있는 날씨라 오후에는 까꿍이를 대리고 호수공원 산책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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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밖에 나갈까? 했더니
아직 말은 못하지만 말귀는 다 알아듣는 까꿍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현관으로 달려갑니다. 낮에는 너무 덥고 해거름해서 나가려고 계획하고 있다가 까꿍이가 너무 나가고 싶어 해서 좀 서둘러 호수공원으로 나갔습니다.
휴일이라 공기가 좋고 시원한 호수에 나와 산책을 하거나 돗자리를 펴고 가족단위로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일산에 호수공원이 없었으면 100만이 넘는 일산시민이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 일산엔 호수공원이 보배입니다.
까꿍이는 호수공원 입구에서 부터 넘어질 듯 부지런히 앞만 보고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서 오기도하고 참새가 있으면 깍깍 새소리를 흉내 내며 바라보기도 합니다. 까꿍이가 강아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강아지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합니다. 강아지 주인은 인사하는 까꿍이가 귀여워서 강아지를 멈추게 하고 가까이서 강아지를 보게 해 주다가 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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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져서 강아지를 대리고 산책 나온 사람이나 아이들을 대리고 산책 나온 사람이나 숫자가 비슷해 보일 정도입니다. 강아지에게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강아지 털에서 윤기가 흐르고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예쁜 강아지가 많았습니다. 강아지 주인의 취향대로 털 깍은 모습도 다르고 옷을 입히거나 염색까지 한 강아지가 저마다 개성이 있고 예뻤습니다. 강아지도 패션을 자랑하는 시대입니다.
까꿍이가 안아 주려고 해도 싫다고 하고 혼자서 얼마나 잘 걸어 다니는지, 가다가 보니 팔각정 까지 걸어갔습니다. 까꿍이가 벤치에 주인과 함께 있는 강아지를 보고 다가갔습니다. 강아지 주인은 벤치에 앉아서 강아지 진지(!)를 챙기고 있었나 본데 까꿍이가 다가가자 “아기가 놀랜다.”고 기겁을 합니다. 난 우리 아기가 놀랠까봐 조심하는 줄 알았습니다. 조그만 그릇에 우윤지 씨리얼인지 하여간 강아지를 안고 입에 개 밥그릇을 가까이 대어주며 개밥을 먹이고 있다가 까꿍이가 강아지에게 다가갔는데 개 주인이 깜짝 놀라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강아지 때문에 아기가 놀란다고 화를 내는 경우는 봤어도 아기 때문에 강아지 놀랜다고 그러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까꿍이 엄마가 까꿍이를 얼른 안고 내 등 을 밀어 현장을 비켜오는데 등 뒤에서 “아가야 괜찮아. 아가야 괜찮아” 하는 말이 들려서 돌아 봤더니 강아지 입 가까이에 밥그릇을 들이 대며 강아지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아가야 괜찮아.” 하는 말이 우리 까꿍이에게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자기 강아지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불쾌한 감정이 들어 돌아서려고 하자 우리 딸이 내 등을 밀더군요.
한참을 지나와서 우리 딸이 나보고 그러는 군요.
“엄마 남의 애완견 놀래 키면 맘충이라고 뭐라 해요. 요즘엔 강아지를 사람보다 더 귀하게 키우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강아지가 사람보다 귀할 수는 없지…..”

개는 귀하신 몸이고 사람은?
우리 까꿍이는 놔 두고 제 강아지를 끌어안고 “아가야 괜찮아 괜찮아”이러며 강아지를 달래는 40대 여인을 이해 못하는 내가 이상한 것일까요?
우리 딸은 맘충이라는 말을 들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몹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봅니다.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아이를 단속하고 예의를 가르치는 것은 맞는 일이지만 공원에 나와 진지 드시는 강아지 놀래 키는 일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기가 강아지에게 확 다가간 것도 아니고 벤치 가까이를 지나간 것이 단데 그러더군요.
맘충이라는 말 아세요?
엄마를 뜻하는 ‘맘(Mom)’과 벌레를 뜻하는 ‘충(蟲)’의 합성어인 ‘맘충’은 제 아이만 싸고도는 몰상식한 엄마를 말하는 신조어입니다.
그럼 나는 제 손자만 싸고도는 몰상식한 할머니?
나는 조충(祖蟲)일까요?

3 Comments

  1. 김수남

    2016-06-26 at 19:03

    까꿍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한창 예쁠 때네요.강아지에대한 그 마음이 참 공감이됩니다.시대가 많이 바뀌긴 했지요? 6,25를 상기해보니 더더욱 그렀습니다.
    맘충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에요.그 40대 분은 많이 외로운 사람이었던가 봅니다.사랑해 줄 수 있는 따님과 손자가 있는 언니가 좋게 생각하세요.혹시 산책 길에 그런 맘충을 또 만나시게 되더라도요.

  2. enjel02

    2016-07-01 at 18:26

    귀여운 아가와 산책길에 기분이 상하셨겠어요
    강아지 식사까지 나와서 먹이면서
    아기가 놀랄 것은 생각이 안 드나 봐요
    맘 충 처음 들어보는 말이네요
    이래서 신조어도 배웁니다
    요즘은 강아지가 아가도 되고
    주인 아줌마는 강아지 엄마도 되니까요
    강아지에게는 그렇게 부르는 시대라서요 참

  3. 익명

    2016-08-23 at 00:30

    ㅋㅋㅋㅋㅋㅋㅋ 애초에 그강아지 우리아이가 만져도 되냐고 허락은 맡았는지? ㅋㅋㅋㅋㅋ 맘충맞네요 시대가 많이 변했으니 조심하며 삽시다 요즘 세상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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