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더레코드

 

나는 교육부 기획관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젠 아니다. 지금은 만사가 귀찮아서 요양 차 고향에 내려가 있었는데 국회의원들이 나를 데려오지 않으면 국회를 열지 않겠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상경해 눈물을 흘리며 해명을 하고 보니 내 모양이 더 이상해졌다. 나는 이미 前 자가 붙기는 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 비서관,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냈고 지금 정부에서 지방 교육자치과장 등을 거쳐 지난 3월부터 정책기획관을 맡았다

나는 99%의 민중을 지도하는 상위 1% 다. 남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고 인터뷰하자는 매체가 많은 것을 보면 내가 꽤 유명해진 것을 알 수 있다. 대학 후배가 몸담고 있는 신문사 기자들과 술을 한잔하면서 개인적인 모임을 가졌다가 구설에 올랐다. 신문사의 성향을 볼 때 국민이라는 말보다 민중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얘기가 통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그 기자들이 좋아할 것을 생각해서 편하게 얘기하다가 휴대폰으로 녹음을 하면서 나를 자극하는 바람에 말이 좀 과격해졌다.

“사람들이 추상적인 사실들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지만 이야기에는 본능적으로 끌리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저주다. 그리하여 중요하지 않은 관점들에 밀려서 중요한 관점들이 저평가 되는 왜곡이 생긴다. 객관적인 생각은 그럴듯한 이야기에 취약하다.” 이건 강준만이 쓴 감정 독재라는 철학서 중에서 이야기 편향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 내가 이런 집중포화를 맞는 것은 우매한 민중이 개, 돼지라는 단어에 집중된 탓이다. 조금 추상적으로 표현했어야 하는데 직접적인 동물에 빗대어 이야기를 한 탓에 모든 민중이 다 내가 개, 돼지냐 이러면서 벌 때처럼 일어나게 되었다. 개, 돼지는 자기 생각은 없고 어딘가 빌붙어서 주인이 던져주는 것이나 받아먹으며 살면 되는데 너무 시끄럽게 한다.

이번 일은 내가 기자들을 만난 잘못이 크다. 기자들은 개인적인 친분을 빌미로 접근해 온다. 그날 술맛도 좋았고 후배들도 나의 출세를 부러워하면서 이야기를 부추겼기 때문에 내가 오버한 것은 맞다. 그럴 경우 정책 브리핑이 아니기 때문에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여러 말을 허심탄회하게 한다. 나는 솔직하다. 순진하다. 하는 평을 받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 말이든 당당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사석에서의 발언이니까 기사화할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맘 놓고 얘기했다. 상위 1%가 99%의 민중을 먹여 살리는데 감히 상위 1%의 이야기에 반박을 할까 그런 생각이다. 그날 휴대폰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고 녹음을 하는 것을 알았는데 조금 조심할 것을 그랬다. 기사 내용을 보니 내가 정말 이런 말을 했나 좀 믿기지 않는다. 사석에서 나온 개인 발언인데 이렇게 기사화할 줄을 몰랐다.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모두 농담이라고 생각해 웃음)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된다. 민중은 개·돼지다, 이런 멘트가 나온 영화가 있었는데….”

– <내부자들>이다.

“아, 그래 <내부자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 그게 무슨 말이냐?(참석자들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

“개·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 지금 말하는 민중이 누구냐?

“99%지.”

– 1% 대 99% 할 때 그 99%?

“그렇다.”

– 기획관은 어디 속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1%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 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다.”

– 기획관 자녀도 비정규직이 돼서 99%로 살 수 있다. 그게 남의 일 같나?

(정확한 답은 들리지 않았으나 아니다, 그럴 리 없다는 취지로 대답)

– 기획관은 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가 가슴 아프지도 않은가. 사회가 안 변하면 내 자식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다. 그게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 봐라.

“그게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되나. 그게 자기 자식 일처럼 생각이 되나.”

– 우리는 내 자식처럼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다.”

– 지금 말한 게 진짜 본인 소신인가?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 이 나라 교육부에 이런 생각을 가진 공무원이 이렇게 높은 자리에 있다니…. 그래도 이 정부가 겉으로라도 사회적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다.

“아이고… 출발선 상이 다른데 그게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라는 게 있는데….”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아니면 나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보고 있나? 나에게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 현실 같지 않다. 국회에 가서 여러 국회의원들 앞에서 내가 눈물 흘리며 해명하는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나의 망언으로 이정부의 레임덕에 크게 일조를 한 것 같다. 속으로만 생각하고 교육부 정책에만 써먹어야 하는데 내 입이 방정이다. 내 인생에 7부 능선쯤에서 이런 일로 브레이크가 걸릴 줄 몰랐다. 아니 완벽한 추락이다. 99%의 개, 돼지들 때문이다. 내가 신분을 회복을 못하면 앞으로 내 아들이 컵라면 하나로 점심을 때우는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고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때 민중들이 동정을 할까 모르겠다. 그런 일에 동정을 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말했는데 그건 취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지인 들과 이분 이야기를 했는데
  • 국회에 나와 죽을 죄를 지었다고 사죄 하더라고 하니
  • 정말 착한 분들인데  “죽으라고 그래” 라는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1 Comment

  1. 벤자민

    2016-07-14 at 22:57

    그놈의 영화가 문제군요^^
    그 오프더레코더 좋아하다 피본 공직자가
    제법 되지요 아마…
    또 여기자와 술먹다 괜히 농담성 헛소리 한번 하곤
    국회의원 공천도 놓친 양반도 있죠
    자기도 너무 재미있다고 박수치고 그래놓고는
    그 다음날 기사화하고^^
    실제 미국 같은나라에도 그런일 많아요
    그러니 괜히 허세를 부린건지 순진한건지 ..
    아무튼 거기에도 내부자?는 잇었군요 ㅎㅎ
    영화가 사람 잡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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