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핑계로 간 비오는 날의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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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남쪽 바다에 위치한 여수를 다녀왔습니다.  한이네 본가 식구들과 2박 3일의 여행이었습니다. 여수 그러면 미국 민요 여수 (旅愁)가 떠오릅니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낯 설은 타향에 외로운 맘 그지없이 나 홀로 서러워
그리워라 나 살던 곳 사랑하는 부모형제 꿈길에도 방황하는 내 정든 옛 고향
지리 시간에 배운 여수와 미국 민요 여수는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생각 속에 따라다니는데 여수는 어쩐지 그립고 아름다운 고장으로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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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경도라는 섬에 위치한 골프리조트에서 2박을 했습니다. 여름 성수기가 끝나기도 했고 비가 오는 주 중이라 사람들이 없어서 고즈넉한 남해 바다를 바라보면서 아기들과 함께 한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경도 골프리조트는 경도라는 조그만 섬인데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합니다. 섬이라고 하기도 억울한 거리지만 육지와 바다가 가로막혀 있어서 섬은 섬입니다. 경도 섬에 사는 사람들이나 골프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배를 꼭 타야 합니다. 배를 타야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해도 이쪽 부두에서 섬이 코앞에 건너다보일 정도로 가깝습니다. 배의 생김새도 객실이 있는 여객선이 아니라 차에서 내리지 않고 배에 올라 차 시동을 끄고 있다가 도착하면 차를 몰아서 내리면 되는 그런 구조입니다.
속초에서 아바이마을 가는 갯배와 비슷한데 갯배는 평평한 뗏목 같은 배에 올라 줄을 잡아 건너는 것이고 경도 섬으로 가는 배는 철판으로 되어 기계의 힘으로 가는 것이 다릅니다. 배를 타는 시간은 5분도 안되지만 아무래도 접근성이 떨어지고 불편감은 있지만 여수 시내에서 자는 것보다는 훨씬 자연과 가깝고 조용했습니다. 방마다 “우리 리조트는 자연친화적인 장소입니다. 뱀이나 해충이 들어올 수 있으니 방충망을 꼭 닫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안내문이 붙어있었습니다. 커튼을 열고 멀리 아름다운 밤바다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리조트였습니다.
우리 한이가 요즘 단어와 상황에 대한 질문이 많은데 왜 할머니가 두 명인가 물었습니다. 친할머니 외할머니라고 설명하면서 한이 아빠의 엄마는 친할머니고 한이 엄마의 엄마는 외할머니라고 아이한테는 얘기했지만 우리 할머니들은 “할머니”하고 부르면 친할머니 외할머니가 동시에 대답을 하게 되더군요. 방이 세 칸이나 되는 큰 리조트고 사람들이 없어 5층에는 우리 식구들만 투숙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으니까 좋은지 아기들이 더 소리 지르며 놀았습니다. 아무도 없으니 아이들이 떠들고 뛰어도 신경 쓰이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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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쪽엔 비가 안 왔나 본데 남해 쪽엔 여행하는 3일 내내 비가 왔습니다. 그래도 소낙비가 오는 것이 아니고 내리다 말다 하는 조용한 비라서 다니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 대신 비옷을 입고 레일바이크를 타고, 비옷을 입고 빅오쇼를 봤습니다. 아기들이 비에 젖을까 봐 비옷을 입혀서 레일바이크를 타는데 그것도 색다를 추억이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숙소뿐 아니라 바다를 보면서 타는 레일바이크, 한려수도 케이블카, 빅오쇼 등을 예약하고 티켓을 예매를 하고 갔습니다. 비가 와도 케이블 카 타는 것은 괜찮았는데 레일바이크를 타는 것은 무리가 될 것 같아서 환불을 할까 했더니 직원들이 비가 와도 운행한다고 기어이 타라고 하더군요. 비에 젖은 의자를 수건으로 닦아 내고 비를 맞으며 탔습니다. 선로에 우리 식구밖에 없어서 운행하기는 좋지만 아기들을 비를 맞혀가며 타야 할까 망설이다가 환불도 안 되고 해서 탔는데 바다를 보며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페달을 돌려 선로를 달리는 기분도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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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박물관에 들려 고기를 보는데 우리 까꿍이가 “고기! 고기!” 하면서 너무 신기해했습니다.
밤에는 비옷을 입고 빅오쇼를 감상했습니다. 우리 일산에 있는 호수공원 분수 쇼 보다 거대하고 입체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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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들이 없다면 여행을 계획하지 않을 것 같고 만약에 어른들끼리 간다면 재미가 덜 할 것 같습니다. 까꿍이를 할아버지가 3일 내내 안고 다니시더니 입술이 다 부르텄다고 하시더군요. 내년쯤엔 아기들이 조금 더 자라니까 좀 우아한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합니다. 사돈과 함께하는 여행도 아기들이 있어서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아기들 핑계 대고 어른들이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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