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식순 중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순간

결혼식 식순 중에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순서가 되면 나는 가슴이 뭉클하고  왠지 모르게 울컥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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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드레스를 입은 예쁜 신부가 절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귀한 딸을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으로 신랑이 예식장 바닥에 넙죽 엎드려 큰절을 하기도 합니다. 절을 받은 장모가 사위를 안고 등을 두르려 주고 시아버지가 드레스를 입은 며느리를 따듯한 맘으로 안아주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이 다 흐뭇합니다. 절을 받으면서도 서먹해 보이는 광경도 있고 이미 정이 든 사이인 듯 애틋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하지만 그 자리에 서기까지는 당사자 뿐 아니라 양가의 만남이라, 작고 큰 어려운 순간을 견딘 결과이기도 해서 복잡한 마음들이 스쳐 지나가기도 할 겁니다. 요즘 신부들은 씩씩해서 친정부모에게 인사를 하는 순간에도 대게는 방글거리고 웃지만 가끔은 신부의 눈에 눈물이 맺히면 친정엄마가 장갑을 낀 손으로 닦아주기도 하는데 그걸 보면 하객들이 다들 숙연해지기도 하고 엄마를 떠나는 딸의 심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길러 준 부모를 떠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이별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짧은 식순이지만 결혼식 진행 과정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기도 하고 신랑 신부와 양가 부모님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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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휴일에는 명동성당에서 친구 딸이 결혼식을 해서 참석했습니다.
이 친구와는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친구가  연애를 할 때부터 알 던 사이입니다. 가끔 친구의 데이트에 합류하기도 했고 결혼 후에는 내외가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우리도 그 집에 놀러 가기도 해서 가족과도 깊은 유대가 있었습니다. 그 집도 우리 집처럼 딸만 둘을 키웠는데, 친구의 딸이 내 딸처럼 여겨질 정도로 가까이서 그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그랬던 아이가 결혼 한다니 더없이 반갑고 기뻐서 까꿍이네 식구들을 다 데리고 결혼식에 참여하러 명동성당을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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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친구의 남편은 10여 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떴습니다. 돌아가신 분이  딸을 얼마나 사랑해서 키웠는지 아는 터라 결혼식장에서 신부 아버지의 부재는 나에게도 그 자리가 너무 컸습니다. 다른 결혼식장과는 달리 명동성당은 부모님의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하객들과 함께 예배하는 좌석 맨 앞줄에 앉습니다. 신부의 엄마 옆에 앉아야 할 신부의 아버지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라 앉을 수 없고 신부의 여동생이 엄마와 나란히 앉았고 신랑 쪽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와 그 옆에 신랑의 누님이 앉았습니다. 인사를 드릴 때 대게 신랑은 큰절을 하고 신부는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는데 양가에 다 아버지가 안 계시다 보니 신랑신부가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정도로 하더군요. 다정다감한 신부의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사위를 보는 감격에 눈물을 흘리며 딸과 사위를 안아주었을 건데 양가의 어머니는 의연한 모습으로 앉아서 인사를 받으며 슬픈 마음을 견디는 모습이었습니다.
새신랑은 신부와 나이 차이가 좀 있어서 친구가 반대를 조금 했나 본데 딸이 “아빠 같아서 좋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더는 말리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그 딸이 미국 유학 중에 암이 발견되어 아이들 걱정할까 봐 수술 사실도 숨기고 병실에 그 딸의 사진을 놓고 투병하면서 회복의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봤습니다. 딸이 방학이 되어 귀국하기 전에 회복해야 한다며 링거를 줄줄이 달고 병동에서 운동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분에게 그렇게 귀한 딸인데 결혼하는 것을 알려나? 유난히 맑고 파랗던 하늘과 좋은 날씨는 결혼식을 축하하는 듯했습니다.
신부의 고모 되는 분이 병실에서 낮을 익혀 안다고 반갑게 다가와 인사를 했습니다. 신부의 고모 즉 돌아가신 분의 여동생이 나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는데 그 심정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습니다. 오빠 지인을 만나자 오빠 생각이 더 나는 듯했습니다.

그 당시 병실로 병문안을 가서는 당장 고통을 받는 암에 대해서는 한마디 상의도 못하고 암이라는 말조차도 입에 담기 싫어서 환자와 엉뚱한 얘기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주메이라 해안에 있는 버즈 알 아랍 호텔이 그 당시 화제가 되고 있었는지, 치료가 끝나면 두바이로 여행 가자고 아이들처럼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습니다. 수술 후 통증을 잊으려고 애써 딴 얘기를 한 것이고, 암을 무시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환자 본인도  내 친구도 그 계획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직시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기적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꼭 회복되어 두바이로 여행 가는 꿈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식도암이 폐에 전이되어 장시간 수술을 받았고 항암제 투여로 소변도 잘 나오지 않고 설사와 변비가 반복되는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우리는 어린애  같이 딴 소리를 하며 그 순간의 고통을 넘기려고 했습니다. 내 딸 같은 신부에게 혹시 두바이로 신혼여행을 가는가 엉뚱하게 물었더니 미국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시댁이 미국이라 신혼여행 겸 시댁으로 간다는 얘깁니다.

작은 딸은 싱가포르에서 직장을 다니고 홀로 남은 내 친구가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명랑한 듯 손님을 맞았지만 그 속 깊은 우울이 느껴져서 위로의 말도, 축하의 말도 건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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