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야 전봇대로 이쑤시개를 하든

건치2
“ 왜 자꾸 음식을 흘리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지인 여럿이 모여 식사를 하는데 한 분이 옷에 음식물을 흘렸나 봅니다. 휴지를 가지고 옷자락에 묻은 음식물을 닦다가 스스로 한심한 듯 혼자 하는 말입니다. 왜 음식을 흘리는지 본인 일인데도 알 수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말을 시작으로
“난 음식을 흘리는 것만 아니라 입가에 음식물을 묻히고 먹는가 봐요. 우리 딸이 입 좀 닦으라며 내 입을 물티슈로 닦아 주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저들 어릴 때 내가 하던 말이잖아요. 흘리지 말고 먹어라 입가 좀 닦아라…….”
“늙으면 애가 된다더니 심리적인 것뿐 아니라 하는 짓도 애들 같아 지나 봐요.“
“난 어젯밤 밥을 먹고 나서 나도 모르게 젓가락으로 이빨을 쑤시려고 하다가 깜짝 놀랐어요. 어떤 점잖은 분이 밥 먹다가 젓가락으로 이빨을 쑤셔서 기겁을 할 만큼 싫었는데 어느새 내가 그 짓을 하려고 하더라고요.”
“그 큰 젓가락으로 어떻게 이빨을 쑤셔요?”
“젓가락 한 짝을 들고 왼쪽 아래로 오른쪽 위로 골고루 돌리는 것을 보면 치아 사이에 음식물이 낀 것이 아니라 잇몸과 입술 사이에 음식물이 정체되어 그걸 제거하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러니 젓가락으로는  치아 사이에 낀 음식물을 꺼내는 것이 아니네요. 그건 이쑤시개로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던 말 던 이런 말이 생겼나 봅니다. ㅎㅎㅎ”
“내가 존경하는 어떤 분이 있었는데 밥 먹다가 엄지와 검지를 집게처럼 구부려 자기 입에 넣어 기다란 야채 가락을 꺼내는 모습을 본 후로는 그 사람을 존경하던 마음이 싹 가셨어요.”
자아비판인지 흉인지 모르게 저마다 한마디씩 합니다.

오래전 어떤 할아버지는 새끼손톱을 유난히 길게 길러서 이빨에 낀 것을 파내는 전용 이쑤시개로(?) 쓰는 것을 봤습니다. 비위가 약했던 나는 그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면 (아마 집안 어른이셨던 듯) 피해 다녔습니다. 연장이 좋지 못할 때니 이빨 사이를 팔 수 있는 가늘고 뾰족한 이쑤시개를 만들 수 없어서 그랬던 것 같지만 너무 엽기적입니다. 여름인데도 옥양목 한복 두루마기를 떨쳐입으신 것을 보면 양반 중에도 행세 깨나하던 할아버진데 기다란 매 발톱 같은 새끼손가락을 본 순간 요즘 말로  깨게 만들었습니다.

저도 나이 먹으니 식사 후에는 반듯이 칫솔질부터 해야 할 정도로 치아 사이에 뭐가 잘 낍니다. 잇몸이 부실해진 이유도 있을 것이고 치아가 마모되어 유격이 생겨서 그렇기도 합니다. 집에서나 직장에서는 식사 후에 양치를 할 여건이 되지만 식당 같은 곳에서 외식한 경우에는 양치할 장소가 마땅치 않은데 그럴 때 치아 상태가 걱정되기도 하고 치아 사이에 낀 것들 때문에 신경이 쓰일 때가 있어서 이쑤시개를 가지고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고 수습하기도 합니다.
여행 중에 단체 여행객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휴대용 칫솔 케이스를 들고 화장실로 아줌마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남자분들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이쑤시개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입가에 음식물을 묻히고, 옷에 국물 같은 것을 흘리고, 치아 사이에 음식물이 끼이고, 그걸 반듯이 쑤셔야 시원하고……. 혐오하고 흉보던 어떤 일이 내 모습이 된 것에 스스로 낙담할 때가 많습니다.
젓가락으로 이빨을 쑤시려고 한다거나, 엄지와 검지를 입안에 넣어 치아 사이에 낀 음식을 남 보는 앞에서 스스럼없이 꺼내고 하는 일을 식후에 화재로 삼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으니 이 또한 이상한 일입니다. 젊은 나이에는 이에 뭐가 끼는 것을 잘 모르니 이런 대화를 나눌 일도 없겠지요.
이 글을 읽는 분 들 중에 시니어는 공감을 하실 것이고 젊은 분들은 읽으면서 토가 나오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건치
오래전에 읽었던 이야긴데 제목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어떤 남학생이 여학생을 좋아해서 따라다녔습니다. 여학생이 너무도 곱고 예뻐서 화장실도 안 가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아닌 선녀나 여신 급으로 생각했는데, 어느 날 마주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선녀 같은 여학생 이빨에 낀 시뻘건 고춧가루를 보게 되었답니다.  순간 여학생을 향한 환상이 깨어졌다고 했습니다. 어느 땐 이에 뭐를 묻히고 말을 열심히 하는 분을 보며 말을 해 주자니 민망할 것 같아서 그냥 보고 만 있었던 것을 경험한 분들도 많을 겁니다. 사람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 중에 가장 강렬한 것이 이빨에 음식이 끼는 일인 것 같습니다. 맹구 같은 이미지에는 꼭 이빨에 검정 김을 붙이잖아요. 잘 안 보이는 동굴 속 같은 입안 환경도 사람의 이미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박속같이 하얀 이라든가, 웃을 때 드러나는 가지런한 이, 그런 것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나이 먹으면서 이사이에 끼는 이물질이 신경 쓰이고 번거롭습니다. 나이 들수록 말 만 단속하는 것이 아니라 입안 단속도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2 Comments

  1. 윤정연

    2016-12-29 at 00:25

    나이 드니 음식 먹을때 흘리고 입가에 묻히고…
    그보다 더 힘든것은 걸핏하면 사래가 들려서 기침이 마구 나오는 것은 정말 주위사람들 에게 민망하지요…꼭 모여서 식사때가 더 그러네요 .
    기침 할때는 민망해서…”이래서 사돈집에 못가겠다”….웃음으로 버므려 버린답니다…

  2. 벤조

    2016-12-29 at 02:59

    저도 이런 글을 보면 정신이 버쩍 납니다.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한적은 없을까? 뭐 그런거요.
    세살짜리처럼 옆에서 지도해주는 엄마가 있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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