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10월 말 일본으로 요양병원 연수교육을 갔을 때입니다.
가이드가 휴대폰을 두 개를 들고 다니며 연신 액정을 밀어가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하나는 일본에서 쓰는 휴대폰이고 하나는 로밍이 된 국내 휴대폰인 것 같았습니다.
30명쯤 되는 연수단은 대형버스를 타고 우리나라와 일본의 요양병원 실태를 비교해 가며 하루에 두 군대씩 병원을 방문하는 빡빡한 스케줄인데 가이드는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있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다 휴대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기 때문에 특별히 거슬리진 않았지만 본인의 직무보다 더 중요한 뭐가 있을까 해서 궁금했습니다.
가이드는 휴대폰 두 개를 번갈아 열어보며 휴대폰에 빠져 있더니
“아~ 탄핵 소리가 나오네요.”
혼자 알고 있기에는 너무 벅찬 듯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듣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로밍을 해 가지고 간 폰이 아니라서 검색할 수도 없었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말이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는데, 일행들은 웅성거리며 술렁였습니다. 그래도 일의 결말이 이렇게 이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말을 일본에서 처음 들은 이후 5개월을 수없이 탄핵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가 6살 때부터 대통령은 박정희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나 경찰관 목사님 등 직업이나 개인의 역할 등의  인지를 시작할 나이인 6살에서부터 내 나이 26살까지, 대통령 앞에는 박정희라는 이름 밖에 몰랐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웠고 유신헌법의 타당성만을 선생님으로부터 세뇌 받았습니다. 저항이라는 것을 모르는 시골 출신이고 일방적인 교육에 익숙했기 때문에 이견이란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대통령이 시찰(?)을 나온다고 하면 우리는 대통령이 지나가는 길가에 전교생이 서서 서너 시간씩 손에 태극기를 들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기다린 보람도 없이 대통령이 탄 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가 버려서 늘 이상했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이 지나가고 나면 태극기를 구기면 안 된다고 해서 돌돌 말아 반납했습니다. 초등학생들이 서너 시간 들고 흔들던 태극기는 찢어지는 것이 당연한데 그 조차 선생님께 엄하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헝겊도 아니고 습자지 보다 더 얇은 우리가 미농 종이라고 부르던 얇은 태극기가  찢어진 것이 발견되면
“태극기는 나라의 얼굴인데, 나라의 얼굴을 찢거나 훼손하면 벌을 받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리니까 당연히 그런 줄 알았습니다.
어쩌다 태극기를 찢어먹은 친구는 형사가 잡으러 올까 봐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육 여사가 돌아가시고 광화문 광장은 갓 쓰고 하얀 도포를 입은 할아버지와 소복을 입은 할머니들이 지금의 촛불모임 숫자보다도 더 모여들어 호곡 했습니다. 방송에서도 국모가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서슴없이 했습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국모(!)가 돌아가셔서 큰 상실감으로 허둥거릴 때 박근혜가 육 여사 코스프레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어여삐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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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어느 날, 아침부터 모든 정규방송을 하지 않고 방송마다 장송곡을 틀었습니다. 24시간 장송곡을 들어야 하는 국민들은 대통령이 없이도 사람들이 숨을 쉬고 있는 것이 이상하고 불안해서 안절부절 했습니다.
지금의 일명 태극기 부대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런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우리는 대통령에 관한한 온갖 경험을 다 하는군요.
세계사에서 몇 백 년에 걸쳐 일어날 일들이 우리나라엔 압축적으로 일어나고 있어서 한 생애에  별별 모습을 다 봅니다. 총 맞아 돌아가시는 대통령에서부터 교도소나 백담사로 간 대통령도 있고 자살한 대통령도 있고 기어이 탄핵되어 구속된 대통령까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잘못 한 것도 맞고 무능한 것도 맞습니다. 정직하지 않은 것도 맞고 소통이 안 되고 청와대 깊은 곳에서 자폐처럼 지내면서 이상한 사람에게 휘둘린 것도 맞습니다.
그래서 구속 수감이 될 것이 번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 밤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그러했겠지만 나 역시 초조한 마음으로 구속 수감을 지켜보았습니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도 깨어나 일본 연수중에 만난 가이드처럼 휴대폰을 열어봤습니다.
이건 무슨 안타까움일까요?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고 대통령이라도 잘못했으면 교도소에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을 이성은 알지만 감정은 그렇지 않은 것은 오랜 세뇌 때문일까요?
하루 사이에 폭삭 늙은 초라한 전직 대통령이 구속 수감되는 일을  보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에게 통쾌할까요? 일부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불편하고 괴롭습니다.
잘못한 것 맞습니다. 잘못해서 법의 심판을 받는 것도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아프네요.
나의 정치 성향이냐?
그것과는 다른 일입니다.

우리는 어쩌자고 이렇게 대통령 복이 없는 것일까요.

 

 

 

2 Comments

  1. 윤정연

    2017-04-02 at 00:27

    저는 개인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님을 너무 존경 하고 사랑 했습니다. 두분의 장례식도 허망 했지만 멀리서 가슴 아파하며 명복을 빌었지요…박근혜 후보가 당첨 되는 티비 생방송을 끝까지 지켜보며…하룻밤을 꼴닥 새어도 너무 좋아서 피곤함도 몰랐어요…
    그랬는데…어제 눈뜨면서 친구가 보내준 카톡을 보고 놀라서탭으로 뉴스를 보니 대통령이 구치소로…저도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더이다…물론 잘못이 많았으니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게 구속 한다는 말도 옳은줄 알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마음을 추스리기 힘듭니다…
    부디 어디서든 식사도 잘해서 건강을 잃지않기를 바랍니다…

  2. west

    2017-04-03 at 06:18

    저와 같은 시대를 살아오신것 같읍니다. 지나고 보니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국민에게는 축복이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때만해도 춘궁기라는것도 있었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살게 된것은 그분의 걸출한 리더쉽과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재를 했다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저와 같이 평범한 삶을 살아온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독재자로 기억되기 보다는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에 남을것 같읍니다. 이제 와서 배부르다고 밥상을 뒤집어 엎어 버리는 일이 일어날까봐 우려되기도 하고요. 육여사가 지금 이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큰따님의 일을 저 세상에서라도 아신다면 얼마나 가슴아 프실까요.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한것도 맞지만 엎어진 사람을 밟아대듯이 꼭 구속까지 시켜야 했는지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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