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재즈 콘서트

막내 여동생이 재즈 콘서트에 오라고 연락이 왔을 때

“시간이…….” 하면서 망설였습니다.
국립극장은 일산에서 멀기도 하고 재즈 관람을 위해 토요일 저녁을 온통 쓰기에는 좀 아깝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즈는 내 취향이 아닌 줄 알았고. 그건 클래식 연주회만 다니는 내 습관과 편견 때문에 벌어진 오해였습니다.

재즈 공연에 반했다면 이상하지만 재즈가 정말 좋은 음악인 것을 알았습니다.

재즈 공연을 한번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재즈 공연은 클래식 공연에 비해 분위기가 자유롭고 관객의 호응이 높았습니다. 클래식 연주회는 연주자가 무대 위에서 섬처럼 서서 오롯이 연주 하고 관객은 엄숙한 상태에서  음악을 듣기만 합니다. 음악에 깊이 마음이 잠기기는 하지만 몸은 음악에 의해 구속 상태에 놓입니다.
재즈 공연은 기침이 나와도 맘대로 할 수 있고 ^^ 휘파람을 불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손뼉으로 박자를 맞추는 것은 기본입니다. 모든 관객이 흥겨운 상태에 놓였습니다.
32 (1)
보컬로는 유하라 님이 나왔는데 아주 매력적인 여인이었습니다.
미성은 아니지만 감정이 풍부하고 재즈 반주에 맞추어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구사했습니다.
돈 워리 비 해피를 관객과 함께 부르고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를 부르기 전에는, 연인의 질문에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라고 우리는 늘 그렇게 불확실한 대답을 하고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노래를 소개했고, 티파니에서 아침을 에 나오는 문리버를 부를 때는 오드리 헵번 스타일로 예쁘게 부르겠다고 해서 웃음을 터트리게 했습니다. 유하라 씨는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목소리로 관객을 사로잡았습니다.
드럼을 연주하는 최치우 님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드러머라고 합니다. 손발을 다 사용해서 드럼을 연주하는데 놀라운 음이 나왔습니다. 드럼 소리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벌판을 달려가는 말발굽 소리 같기도 하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지르는 함성 같기도 합니다. 악보도 없이 마냥 늘려가는 가락에도 지루함이 없었습니다.
33
막내 여동생은 춤 선생이고 최치우 님은 드러먼데 어쨌든 같은 예술 업종에 종사하다 보니 최치우 님은 동생 춤 공연을 보러 오고 동생은 제자들과 함께 최치우님의 재즈 공연에 가고 하는 사인가 봅니다.

춤동생이 언니들을 위해 VIP석 두 자리를 준비해 두었다고 해서 재즈하고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신학교 교수를 불러 둘이 함께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의외로 동생은 재즈를 무척 즐겼습니다.
최치우 님이 “재즈의 정의가 뭘까?” 한마디로 정리하고 싶어서 수많은 서적을 보고 음반을 듣고 공부를 했지만 점점 더 어렵기만 하더라고 합니다. 그걸 단칼에 한마디로 정리해 준 분이 계신다고 소개를 하더군요.
“재즈는 엿장수 맘대로다.”
그 말을 한 분이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라고!
어쩐지 내 앞에 김용옥 선생님이 검정 베레모를 쓰고 앉아 계셨습니다. 동양철학자인 김용옥 선생님이 재즈를 좋아하시는구나. 그래서 재즈 공연을 보러 오셨구나 생각했는데 사실은 초청된 게스트였습니다.
한복도 아니고 중국옷 치파오도 아닌 강시가 입었던 옷이랑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머리엔 베레모를 썼는데 병색이 있어 보였습니다. 김용옥 선생님은 최근에 건강이 안 좋아서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중인데 최치우 님과의 의리 때문에 재즈 공연에 참여하게 되었다며 무대에 불려 나올 줄 알고 준비해 온 종이를 펼쳐 재즈에 관한 시 한편을 직접 읽으셨습니다.
태초에 재즈가 있었다.로 시작해서 특유의 입담으로 재즈는 지랄이다.라고 노골적인 언사를 사용하는데도 그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읽기를 마친 후에는 명태라는 우리 가곡을 불렀습니다.
최치우 님이 재즈 더하기 클래식은 “재래식”이라는 아재 개그를 해서 웃었습니다.31 (1)
프로그램이 없이 자유롭게 진행하는 재즈의 자유로운 형식과 음악회 분위기가 더없이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가 본 국립극장도 고향에 온 듯했습니다.
음악회를 마치고 여동생과 함께 전철역까지 걸으면서 “돈 워리 비 해피”를 흥얼거렸습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