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은 자녀가 늦잠을 자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새벽이면 꼭 깨워서 책상 앞에 앉히곤 하셨는데 책상 앞에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먹는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틈이 없다.”
이런 구호가 붙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생각이 아닌 순전히 부모님의 의지셨습니다.
자녀들에게 근면 성실을 강조하셨던 것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그 시대의 분위기가 그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왜 그렇게 잠이 많은지,
새벽에 깨우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아버지의 강요로 일어나긴 하는데 한 번도 상쾌한 마음으로 기꺼이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여북하면 “수니는 잠으로 빚었나 보다.” 이러셨습니다.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쉬지 않고 손발을 움직여야 식구들 땟거리를 얻을 때라
새벽잠은 부모님이 훨씬 더 주무시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머니 생신이 되어 대구를 다녀왔습니다.
어머니가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거실에 잠깐 계시더니
슬그머니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십니다.
“엄마 왜? 거실에 계시지 방으로 들어가세요?”라고 여쭈었더니
“약 좀 먹고.” 이러며 방문을 닫습니다.
약을 드시고 나오겠지 했는데 한참이 지나도 안 나오셔서 문을 열어봤더니
어머니는 아기처럼 이불을 폭 눌러쓰고 잠이 드셨습니다.
부지런하던 어머니도 나이는 어쩔 수 없구나…….
잠 많고 게으르다고 야단맞던 딸이나 부지런하던 어머니가 이제는 같이 늙어 가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어머니께서 인지저하로 치매약을 드신 지도 벌써 6~7년이 되었는데
기도하는 것을 들어보면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다른 생각은 자꾸 잃어버리지만 자녀를 위한 기도는 날로 새롭습니다.
자녀와 손자녀까지 다 불러가며 기도를 합니다.
어머니의 생신에 형제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데 어머니의 기도가 더욱 초롱초롱합니다.
자녀들에 대한 기도는 “세상에 나가 밝은 빛이 되라.”라는 요지입니다.
어머니는 우리 자녀들이 복을 받아 잘 살게 해 달라거나, 건강하게 해 달라,
이런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 어두운 곳을 밝히는 밝은 빛이 되라는 기도입니다.
넓은 세상에 나가 큰 빛을 발하는 일은 아닐지라도
각자 남에게 폐 끼치는 일 없이 주변을 조금씩이나마 도우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기도 덕이 아닐까 합니다.
어머니의 기도로 지금이 있다고 우리 형제들은 믿습니다.
저는 요즘도 무슨 중요한 시험이 있거나 어려운 일에는 물론
손자들이 아파도 어머니께 기도를 부탁합니다.
나의 등 뒤에서 늘 기도해 주시는 어머니가 계셔서 든든합니다.
어머니와 장녀인 나는, 엄마와 딸이자 어려움을 함께 해쳐온 동지 같은 마음도 있습니다.
객지로 다니면서 여러 남매를 기르느라 무진장한 고생을 했지만
“옛날 임금 부럽지 않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평안한 노후를 보내고 계십니다.
이번 어머니 생신은 특이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자녀의 이름으로 “장한 어머니” 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를 길러주시느라 고생하셨던 어머니께 장한 어머니 칭호를 드리고
상장과 골드 메달을 목에 걸어 드렸습니다.
상당한 부피의 트로피와 꽃다발 증정까지 하고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늘 큰 행사를 치르고 상장을 수여하는 막내딸이 준비한 이벤트입니다.
그렇게 하니 조촐한 가족 모임이 큰 행사를 치르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이벤트의 주인공이 되셔서 즐거워합니다.
어머니께서 옷 사 오지 마라, 보약 지어오지 마라 부탁하십니다.
옷을 다 입지도 못하는데 새 옷이 쌓이면 부담이 된다고 하시고
보약을 자꾸 먹으면 죽을 때 힘들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생신이 돌아와도 뭐로 즐겁게 해 드릴까 궁리해도 특별한 게 생각이 안 나서
얼굴 보여드리는 게 선물이다.라고 했는데
이런 이벤트를 했더니 어머니께서 행복하고 즐거워하셨습니다.
데레사
2018-01-06 at 12:09
생신을 축하 드립니다.
사실 얼굴 보여 드리는게 큰 선물이기도 하지만 또 이런
이벤트도 좋은데요.
어머님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초아
2018-01-06 at 19:07
수니님 부러워요.
어머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지요.
늦었지만, 어머님 생신 축하드려요.
오래오래 행복하셔요.
無頂
2018-01-06 at 19:45
생신 축하드립니다.
어머님과 따님의 끈끈한 이야기가 감동이네요.
부모님 안계시는 저로서는 부러움만 남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