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내가 첫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었을 때 내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줄 알았습니다.
고슴도치는 제 새끼 털이 세상에서 가장 보드랍다고 하면서 쓰다듬는 다며, 내 새끼를 세상에서 젤 예쁘다고 하던 나도 고슴도치 엄마랑 똑같다고 별명이 “도치 엄마”였습니다. 자녀를 둔 엄마는 대부분 그렇겠지만 조카며느리도 제 아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서 보기 좋았습니다. 밤잠도 제때 못 자고 밤에도 여러 번 깨어 젖을 먹이고 젖몸살을 하면서도 젖을 끊지 않고 계속 먹이려는 모습은 대단한 모성이었습니다. 사랑이를 보는 사랑이 엄마 눈에서는 꿀이 떨어집니다.

조카 내외는 작년 오월에 결혼해서 독일로 간 후 퀼른에서 사랑이를 낳아가지고 여름휴가차 귀국했습니다. 5개월이 된 사랑이를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할아버지인 오라버니는 60대 후반에 처음 본 손녀가 너무 귀해서 형제들이 보는 카톡에 자주 사진을 올렸습니다. 옹알이하는 동영상도 있고 배밀이를 하는 것도 신기하다며 올림픽 경기 주목하듯이 아기에게 온 식구가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귀국하기까지를 카톡 사진으로 공유 하며 봐 왔기에 나는 낯설지 않았지만 사랑이가 고모할머니인 나를 낯설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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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들과 모여 식사를 하면서 어머니가 사랑이를 안아 보고 싶어 하는데 사랑이가 증조할머니를 쳐다보면 울었습니다. 낯가림을 시작한 사랑이가 증조할머니께는 안기지 않으려고 하자 어머니께서 조금 서운해하셨습니다.
“왜? 할머니가 너무 늙어서 그래?” 이런 말도 하시더군요.
오라버니와 사랑이 엄마는 미안해 어쩔 줄 모르면서
“사랑이가 낯이 설어서 그래요. 며칠 보고 있으면 좋아해요.”라며 수습하려고 했습니다.
엉뚱한 말씀이 많아지신 어머니께서 심기가 흐려지면 혹시 다른 말씀을 하실까 봐 내가 조마조마했습니다. 사랑이 엄마도 있는데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자 어머니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장손인 사랑이 아빠가 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더니
“할머니 이거로 맛있는 거 사 드세요.”라며 손에 쥐어 드렸습니다.
“이게 뭔데?”
“할머니 용돈.”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날 주냐? 비행기 삯도 많이 들 텐데? 내가 줘야지”
“할머니 나도 돈 벌어요.”
“그러냐? 고맙다.” 이러며 받아 넣으시면서 장면은 전환되었습니다.

사랑이는 친할머니 품에서 잠이 들고 우리는 옛날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했다기보다 어머니께서 이야기를 주도했습니다.
어머니는 방금 전 일이나 최근의 일은 잘 기억을 못 하는데 과거 일은  선명합니다. 나에겐 정말 좋은 할머니셨지만 어머니껜 시어머니 시라 어두운 기억이 많으신 듯 가끔 꺼내어 이야기할 때가 많은데 손자 앞이라 그런지 어머니는 시어머니의 기억을 다른 방향에서 꺼내 놓으시더군요.

저의 아버지는 외동아들이셨고 체질이 약하셨는데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을 때 할머니가 그렇게 기뻐하셨답니다. 그래서 귀하게 키우셨는데 할머니 남동생이 약방을 하셔서 그곳에서 인삼이나 녹용 같은 것을 얻어다 손자에게 꼭 먹이곤 하셨고 맛있는 거나 귀한 음식은 다른 사람은 못 먹게 하고 꼭 장손에게만 주셨다고 합니다. 심지어 오빠가 신던 신발까지도 구별하여 따로 관리를 하셨는데 외출에서 돌아온 오빠가 댓돌 위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신발을 그 즉시 씻어서 (고무신이라 가능) 마루 위에 얹어 놓았다고 합니다. 엄마도 아들 신발을 타넘어 다니면 할머니께 야단을 맞았답니다. 할머니의 손자 사랑은 지극한 것을 넘어 거의 종교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장손에 대한 사람은 더없이 큽니다. 사랑이 아빠는 우리 어머니께는 장손이 되는 터라 사랑이 아빠를 귀애하시는데 손자를 쳐다보는 어머니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눈빛입니다

사랑이 아빠는 독일 퀼른 극장에서 바리톤 가수로 활동 중입니다. 월급을 받는 직업을 가졌다고 미리 봉투에 준비해 가지고 온 용돈을 어머니께 드리는 모습으로 보니 참으로 의젓했습니다. 처자식이 달리니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여태는 우리 자녀들이 어머니께 드린 용돈이 손자들에게 가곤 했는데 손자도 자리가 잡히니 할머니께 용돈을 드리는군요.

자녀는 삶의 귀한 선물입니다. 사랑이 아빠도 사랑이가 생기고부터는 앞으로 올 세상에 관심이 가고 환경문제 등을 걱정하게 된다고 하는군요.
인류가 이렇게 삶을 이어 갑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8-08-24 at 12:29

    제가 지수에게 하는 말,
    “너 취직할때 까지만이다. 취직이 되면 밥도 니가 사고
    용돈도 니가 날 줘야된다” 고요.
    그런날 까지 살려고 열심히 운동합니다. ㅎㅎ

  2. 김 수남

    2018-08-24 at 14:31

    네,언니! 사랑이 너무 예뻐요.낯가림 할 시기네요,어머니 건강하시고 고으신 모습 사진으로지만 뵈니 너무 반갑고 좋습니다.아름답고 행복한 언니네 가족 이야기 참 뵙기 좋아요.사랑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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