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게 사는 이웃

일주일에 하루는 우리 한이 하원 시간에 맞추어 픽업해야 합니다. 아이를 마중하러 현관에 나갔더니 앞마당을 새로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아스팔트 포장을 새로 하고 주차구역을 흰색으로 다시 칠했습니다. 소방차 구역은 노란색으로 금을 긋고 “소방차 전용”이라고 글씨도 노란색으로 선명하게 썼더군요. 아스팔트 공사가 막 끝나서 유치원 하원 차가 현관 앞으로 들어오기에는 무리가 될 것 같아서 경비실이 있는 아파트 입구로 나갔습니다. 정문에서 차를 돌려보내고 아이만 데리고 들어오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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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정문 앞에서 경비 아저씨와 아파트 주민 한 분이 실랑이하고 있었습니다. 경비원은 듣고만 있고 5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화를 냈습니다. 그들 앞에는 방금 쓴 듯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일단정지”라고 쓴 글씨가 보였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는 분은 옆 동에 사는 아주머닌데 일단정지라고 쓴 글의 글자 간격이 너무 좁아서 보기 싫다며 다시 쓰라고 하는 중이었습니다. 경비 아저씨는 모자 쓴 뒷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해하는데 아주머니는 경비 아저씨에게 관리소장을 불러오라고 하더군요.

마침 우리 아이는 소풍을 다녀오느라 조금 늦는다는 연락을 엄마에게 했는데 한이 엄마는 수업 중이라 나에게 연락을 못 해서 아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느라 그 광경을 20분 넘게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기어이 불려 나온 관리소장도 곤란하긴 경비 아저씨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주머니는 글씨가 모음과 자음이 거의 붙어 있어서 볼품이 없다고 다시 쓰라고 요구를 합니다. 관리소장은 아스콘을 다시 부어서 마른 후에 글씨를 써야 하는데 꼭 그럴 필요 있느냐 “일단정지”라는 것만 알아볼 수 있으면 되지 않느냐? 여러 말로 아주머니를 설득했지만, 아주머니는 본인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모든 입주민이 드나드는 정문인데 글씨를 이따위로 쓰면 되느냐? 난 이런 거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 아주머니는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도 한지에 붓글씨를 쓴 것도 아니고, 일단정지가 무슨 예술작품도 아닌데 뭐 그렇게 잘 쓸 필요가 있을까? 그만하면 땅에 쓴 글씨로 훌륭한데 하는 생각에 아주머니가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관리소장은 성의 있게 설득해 보지만 본인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꾸준히 의견을 제시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습니다.

그러다 나는 아이가 와서 손잡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돌아보니 아주머니는 일단정지 앞에서 허리를 굽혀 글자 간격을 손으로 재어가며 계속 항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나던 다른 분들도 곁눈으로 흘끗거릴 뿐 거드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혼자 입주민 대표가 되어 무해 한 글씨를 가지고 따지는 분이 일단은 피곤했습니다.

목소리 크고 따지기 좋아하는 그런 성품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너무 정의롭다고 생각하고 자기 생각만을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일단정지”라는 글씨가 없어도 경비실 앞 차단기에서는 차가 멈추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차에서 일단정지라는 글씨를 감상하라고 쓴 것도 아닌, 그런 일로 열심을 다해 따지는 분이 몹시 피곤한 내가 잘 못 된 것일까요?

2 Comments

  1. 데레사

    2018-10-20 at 13:23

    꼭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 아파트도 단골손님 있어요.
    조믐만 무슨 일이 생겨도 관리실에 와서
    난리를 피우곤 해요.
    동네사람들도 그사람보면 다 피해 다녀요.

    곤리소장과 경비아저씨 참 힘들었겠어요.

  2. 윤정연

    2018-10-20 at 14:54

    오십대 중반정도라면 뭐든 부드럽게 생각할 나인데…꼭 따져서 얄밉게 잘난척 하는 사람도 있는것을 보아왔습니다…
    우리동네 강아지 놀이터에 애완견의 주인들이 싸우는일도 다반사 라서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보기싫었지요…
    더욱이 어린이들도 보는데서~~**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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