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장에 가니 씨레기 타래 지고?

패키지 투어를 하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내가 계획하지 않고 가이드를 따라다니면서 보여주는 것만 보고, 차려 주는 것만 먹고, 태워다 주는 곳만 가는 비자발적인 행로입니다. 유치원생이 선생님을 따라다니는 것과 같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도착지 공항 이름까지 모를 수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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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서 수속 후에 wi-Fi 가 잘 되는 공항 안에서 비행기 이륙시간까지 아사히카와를 열심히 찾아봤습니다. 세상에나~
아사히카와는 한때 즐겨 읽었던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의 무대였던 겁니다. 작가 미우라 아야코가 북해도 아사히카와 출신이고요. 아사히카와에는 미우라 아야코의 기념관까지 있다는데 전혀 몰랐습니다. 막연히 눈 보러 가야지, 북해도에는 눈이 잔뜩 쌓여있다는데, 그 생각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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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는 빙점이나 설국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너무도 어울리는 곳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곳은 모두 하얀 눈이었는데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올해는 눈이 덜 왔다는데도 그렇습니다. 눈이 처마까지 쌓여 토끼 굴처럼 구멍을 내어 놓고 다닌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런 모습은 못 봤습니다. 지붕에 올라가 1m가 넘는 큰 톱으로 눈을 자르는 모습은 목격했습니다. 홋카이도에서는 지붕에 눈을 치우다가 떨어져 다치는 사고는 빈번하다고 하더군요. 춥고 미끄러운 지붕에 올라간다는 자체가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도 노인들이 주로 하다 보니 사고가 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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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외벽에 설치된 눈 미끄럼틀(?)

우리가 갔을 때는 그다지 춥지도 않았고 눈도 오지 않는 날씨였지만 하늘은 어찌나 파랗고 공기가 깨끗한지 심호흡을 하고 다니면 폐가 정화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특히 요즘같이 우리나라는 미세먼지에 점령당해 극도로 오염된 공기를 마시자니 북해도 공기가 더욱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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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수염폭포

미우라 아야코는 평생을 중한 질병을 앓으면서 헌신적인 남편과 함께 살았습니다. 결핵, 심장발작, 대상포진, 직장암등을 앓았고 만년에는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77세까지 살았다는군요. 의학이 발달한 요즘에도 이런 질병은 치유가 어렵고 생명이 위협받습니다. 질병으로 인한 극한 고통 속에서도 많은 글을 쓴 아야코가 대단합니다. 더 특이한 것은 수백만 가지 잡신을 믿는 일본에서 아야코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이 질그릇에도”라는 신앙 간증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팔렸습니다. 남편이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 눕거나 화장실에 가는 일도 힘들었을 정도로 질병에 시달릴 때에도 아야코는 늘 숲처럼 조용했다는 남편의 증언입니다. 짜증 한 번 내는 일도 없이 남편의 도움을 받아 살며 평온했답니다. 말년에는 미우라 아야코가 직접 글을 쓰지 못하고 남편이 그녀가 구술하는 것을 글로 옮겨 썼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미우라 아야코의 문학적인 성공의 절반은 아야코 남편의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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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께서 아셨다면 ” 남이 장에 간다니 씨레기 타래 지고 가느냐?” 이러셨을 것 같습니다. ㅋ
우리 어머니는  주관없이 남이 하니까 따라하는걸 몹시 싫어합니다. ” 엄마~ 다른 친구들은 다 사는데. 다 하는데”이런 식으로 말했다가는 백발백중 야단만 듣게 됩니다. 요즘 부모들은 남들이 하면 빚을 내서라도 아이들이 해 달라면 무조건 해 주잖아요.
도착지 공항도 모르고 떠난 여행. …….
눈 보러 가야지! 그 생각만 하고 떠나다 보니 출발부터 너무 무식이 충만한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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