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자싸롱

딸의 결혼 초에 일어난 일입니다.

사위가 사촌 형님들과 약속이 있어서 저녁 먹고 들어오겠다고 해서 우리끼리 저녁을 먹고 났는데 딸 휴대폰에 메시지가 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딸이 휴대폰 액정을 보라고 나에게 넘겨주어서 보니, 카드 사용 내역서인데 상호가 춘자싸롱입니다.

춘자싸롱이든 룸살롱이든 갈 수도 있지만 아내가 모르면 좋은데 새신랑 카드 사용 내역서가 신혼의 아내에게 올 게 뭡니까? 본인이 쓴 카드 내역은 자기 휴대폰으로 받아야지 아내 휴대폰에 뜨게 한 자체가 문제를 자초한 것이라 둘이 어떻게 풀어가나 걱정도 되었지만 궁금했습니다.

사위는 사촌 형들과 2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밥을 사고 회사 근처에서 만나 저녁을 먹으면서 형제간에 우의를 다진다고 해서 참 잘한다고 했더니 사촌 형을 만나서 룸살롱을 간 거야? 그런데 룸살롱 비용으로는 너무 싼 거 아닌가? 아마 비싼 것은 한의사 형이 돈을 잘 버니 그 형이 내고 사위는 작은 비용을 결제했나? 그렇다고 아내 휴대폰으로 문자가 올게 뭐람? 어찌 되었든 룸살롱에 가서 카드를 긁었는데 싸움이 안 나면 그게 이상한 거지! 신혼부부가 어떻게 싸우나 구경이나 해야지. 이러며 후속 장면이 어떻게 전개될까 기대되었습니다. 마음이 약하고 착하기만 한 딸이라 누구에게도 큰 소리를 치는 법이 없고 친절한 사람이긴 하지만 이런 경우엔 부부싸움 정도는 하겠지?

룸살롱이 부정적이고 퇴폐의 온상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순전히 매스컴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나는 룸살롱에 가 본 적도 없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싸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상호 때문에 불필요한 상상을 합니다. 더하여 춘자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어떤 이미지도 작용합니다. 아줌마들에게 춘자나 영자는 아주 흔한 이름이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억척스러운 여인들의 상징 같은 이름입니다. 그래서 룸살롱 이름 치고는 유혹의 색채나 퇴폐의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이상하긴 했습니다.

요즘에야 휴대폰으로 서로 소식을 주고받으니 남편이나 아내의 행적을 수시로 알 수 있고 궁금해할 필요 없이 그때마다 연락해서 알면 됩니다. 우리는 남편이 나가서 뭘 하고 다니는지 잘 알지 못해도 그걸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남편의 집 밖의 생활에 대해 아내가 자꾸 캐묻고 알려고 하는 것을 정숙하지 못한 행동으로 여겼습니다. 여북하면 ‘남자들은 집 밖에 나가면 남이고 집에 들어오면 남편으로 알고 살라.’고 친정엄마가 딸에게 교육해 남편의 바깥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우리 세대의 남편들은 국가에서 산업역군이니 수출역군 등으로 부르며 가정보다 사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회사에서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일을 했고, 야근도 밥 먹듯이 했고 지방 출장이니 해외출장이니 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잘 없었습니다. 그걸 당연하게 여겼고 남편의 행적에 대해 크게 신경 쓰여 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캐려고 하지 않으니 남편이 아내에게 신뢰를 잃거나 하는 일도 잘 없습니다. 밖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늦게 다녀도 회사일이려니라고 믿었습니다.

딸이 사위에게 “춘자싸롱?????”이런 문자를 보내고 나서야 사위는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둘이 주고받는 문자가 분주하더니 춘자싸롱 인터넷 주소가 옵니다. 그러고도 사촌들이랑 차를 마시다가 생각해도 억울한 새신랑이 춘자싸롱으로 다시 가서 춘자싸롱 상호와 메뉴판 음식 가격표를 찍어 사진으로 전송해서 룸살롱 오해는 한 시간도 가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신혼부부는 휴대폰으로 문제를 만들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하더군요. 춘자싸롱을 룸살롱으로 잘 못 알고 벌인 해프닝이었습니다.

나 혼자 남편의 과거 행적까지 들추어가면서 생각을 복잡하게 굴리며 신혼의 부부 싸움을 기대했다가 혼자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춘자싸롱은 음식점 상호였습니다. ^^

춘자싸롱에 대한 오해는 너무 싱겁게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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