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Scouting, 77.> 거목의 그늘에서

내가주원기선생님의뒤를따라스카우팅에서땀을흘릴때면늘그늘을만들어주시고땀을씻어주시던어른들이계셨었다.한분은한국초등교육계의원로이시며새교육의선봉자셨던윤형모선생님이셨다.

선생님께서는대한소년단시절이었던1962년에중앙본부의관리국장에스카우트되셨다가부간사장으로봉사하신시기에내가운형모선생님의후임관리국장으로선생님을부필하였던인연으로서울시교육위원회초등교육과장으로재직하실때"ScoutingforBoy’s"도함께번역하며공부하셨고종암국민학교교장으로근무하실때는학교부근안암동에거주하고있던내게종암유년대대위원을맏기셔서대원들을지도해달라시며사랑을부어주셨으며,은혜국민학교교장으로재직하실때는가끔부르셔서유년대대원들과함께놀수있는자리도만들어주신나의그늘이셨다.

내가중앙훈련소를담당하고있을때는여러훈련에훈련팀으로나오셔서도와주시던어른이셨다.

나는어느훈련에선지기억이희미한데선생님을모시는자리에서선생님가슴속은어린이들사랑으로가득하게채워지신교육자시라고말씀을드린일이생각난다.선생님의그크고넓었던그늘에서한번더쉬어보고싶은마음이

이새벽에도솟구친다.

<훈련팀으로봉사하시던윤형모선생님>

또한분은이상명전국제커미셔너신데,우리는이상명선생님을가리켜국제신사라고호칭하였었다.

우리말보다는영어가더능하시고편하시다는선생님은한국동란기에유엔군사령부연락장교로활동하셨던역전의용사로서오랜동안을한국재향군인회간부로활동하셨고성우회(전역장군모임)사무총장을지내시면서한국보이스카우트의국제커미셔너로서한국의위상을세게만방에전하신어른이시다.

나와는1965년제1회한국우드배지코오스에서선생님의요청으로같은천막을사용하면서인연을맺어왔었는데이상명선생님은일하는사람,변화를추구하는사람,그리고노력하는사람이라면연령이나신분을뛰어넘어

가까이하시며힘을보태주시던어른이셨다.그래서였던지선생님께서는주원기선생님의연구와활동을적극적으로지원하셨으며만나는사람들에게마다주원기선생님의연구와노력을높이받아들여야한다고말씀하시곤하셨었다.해외에출장을다녀오시는길에는언제나그나라의스카우트기념물을하나씩가지고오셔서내게주시곤하셨는데내가미국으로이주한이후에도자주서신을보내주시곤하셨으며이민초기에L.A.를찾아주셔서우리아파트에모시고몇날인가를보내기도하였었다.그이후에하와이로이주하셨는데뵙고싶은마음이태산같다.

<제1회우드배지코오스에서하이킹떠난반원들을뒤따르는길에서>

나의스카우팅은두분의거목이어렵고험난한고갯길마다에서큰그늘을만들어주시고쉬어갈수있게해주셔서

더깊은정이쌓이지않았나생각한다.지금은늙고지친몸이지만나도그누군가에게큰그늘을만들어주고싶은마음이간절한이새벽에두분께감사한마음을바치고싶다.

<1982년에이상명선생님께서보내주신편지>

내가미국으로이주한초기에보내주신고국의소식이었는데이때선생님께서는Scouting을떠나셨다는소식이있어퍽서운했었습니다.어쩌다가좋은지도자분들이다떠나시는지걱정도되었는데편지를보내주실때는우표를골고루구입하셔서보내주셨었습니다.그때총커미셔너를맏고계시던윤형모선생님께서도물러나셨다는소식이이편지에들어있어서몇일동안을마음아프게보낸일이있었습니다.

주원기선생님,윤형모선생님,이상명선생님,한시대를Scouting을위해헌신하여오신분들인데왜이분들이그렇게도사랑하시던보이스카우트를떠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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