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Scouting, 98.> 한국에서 미국으로……..

1978년4월18일.우리가족들은미국에서의새로운보금자리를찾아조국을떠났다.

떠나기몇일전에원효로어느아파트에계시던주원기선생님을찾아뵙고큰절로떠나는인사를드렸으며,중앙훈련팀에서는종로1가에있던삼오정에서보내는만찬의상을차려주셔서윤형모선생님이며경남의김계원선생님을비롯한많은분들이잘가라며위로를해주셨다.국제커미셔너로다시복귀하신이상명선생님께서따로이시간을만드셔서미국에서도열심히교포사회의청소년들을위해봉사해주면좋겠다며보내주셨다.

한국에서는미주사회에서의활동을위한위촉장을보내주셨으며,우리는스카우트출신자들을규합하여스카우팅의안내팜프렛도만들어나누어공부도하였었다.미국보이스카우트에서는한인들을위한모임으로"미국보이스카우트한국인위원회"를조직활동하도록미국보이스카우트국제커미셔너께서내사무실에방문하셔서합의도하였었다.그러나미국사회에서의활동은그리쉽지만은않었다.보이스카우트활동을시작한다니까별사람들이다모여들어어려움도만만치않았었다.그런와중에한국에서새로부임한총재란분이어떤분을대동하고L.A.를방문하셨다.사전에총재의방문일정이우편으로접수가되어서이곳에거주하는한국의스카우트출신자들에게연락하여한국식당에서환영연도베풀었고체류기간동안에생업도접은체안내하며미국보이스카우트L.A.지방연맹이며한국총영사관으로사방안내를했었다.그런데마지막날일정에마추어공항으로모시고나가려고호텔에가보니일행은새벽에떠났다는종원의전갈이있을뿐이고남긴멧세지도없어마지막배웅을하려고찾아왔던사람은허탈감에빠저서할말을잊었었다.그래도한국보이스카우트의총재가오셔서반갑게몇날을모시고다니며마음을열어환영했는데야반도주를하듯이사라저버렸으니그것은정녕스카우팅의정신이아니라는분노까지일었었는데그이후에도미안하다거나고마웠다는연락한장받지못했었다.그런수모가운데서지도자들은한분두분씩개별적인스카우트활동으로방향을바꾸어떠나갔다.

<셧터를누르는순간에…..이것이소년들의세계다.>

지금은한국인미국보이스카우트도여러대가조직되어활동하고있고미국보이스카우트봉사의상징인독수리스카우트대원들도많이배출되어앞으로한인지도자들의활동이기대되는싯점에이르렀다.

나는늘미국보이스카우트를바라보면서역사도오래고지도자의층도두꺼워서겠지만질서와원칙이존중되는조직의활동에부러움을느끼곤하는데,그럴때마다우리나라에도주원기선생님같으신질서와원칙을존중하며소년들만을생각하시던지도자가계셨는데선생님의정신과업적이보이스카우트의큰그늘이되어소년들의쉼터가되었으면하는바램을품어보기도한다.우리외손자두명이진급과정을공부하고실천하는모습도바라보면서나는언제나우리인천의팔미대를생각하곤한다.아마도늙으면추억의힘으로버틴다는데내가그런가싶다.

큰손자는지난연말에이글스카우트가되었고작은손자는일급대원이되었는데그대에는한국계소년들이10%정도나되고대부분이유태인들과미국인들이다.지금도반장으로봉사하고있는큰녀석이금년에대학에진학하면지도자의길에바르게서주기를바라는이할아버지의마음을이해하는지앞으로우드배지코오스에도가고싶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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