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1997년 6월 하버드대학에 모인 26명의 언론인들은 저널리즘의 위기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점점 언론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언론사는 저널리즘의 본질보다 경영과 수익에 더 신경을 쓰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는데 이들은 동의했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단지 매체를 운영하는 회사의 위기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그것은 민주적 시민사회의 몰락을 뜻하는 신호이며, 인간이 진정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빛이 사라져간다는 불안의 반영(反影)이다. 이 빛이 환하게 인간세상을 비추어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도록 해주던 시대는 행복했다. 언론은 세계를 새로우면서 친숙하고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감싸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미 스크립사에서 내놓는 신문 발행인란에서는 <빛을 비추어주면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이란 강령이 적혀 있다.

저널리즘을 염려하는 언론인위원회(Committee of Concerned Journalists)는 이런 문제의식 속에 발족했다. 2년에 걸쳐 3000여명이 토론에 참여, <지금 우리에게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고민했다. 그 흔적을 뉴욕타임스 워싱턴 지국장을 거쳐 현재 하버드대 니만언론재단 큐레이터인 빌 코바치와 LA타임스 미디어비평 담당 기자 톰 로젠스틸이 대표 집필해 한 권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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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 대한 정보에 대해 목말라 있다. 친구나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 후 주고받는 대화는 종종 <혹시 그거 알아> <그 얘기 들었어>일 것이다. 이미 인간은 뉴스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이 흐름이 막히면 어둠이 내리고 불안이 커진다. 세상은 적막에 빠져들고 사람들은 고립되어 있다는 답답함으로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곤 한다.

뉴스는 인간이 삶을 지탱하고 친구 사이를 유지하며 인간 관계를 넓히는 데 필요한 자양분인 셈이다. 이 뉴스를 공급하는 시스템을 우리는 미디어, 언론이라고 부른다.

포괄적인 의미로서 저널리즘의 목적은 <시민에게 그들이 자유로워지고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있다. 이 신성한 대원칙은 언론이 민주주의를 위해 참정권을 가진 시민들에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는 데 존재 의의가 있다는 설명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언론을 통해 세상의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 처지에서 보면, 언론이 정보통제자로 기능할 수도 있고, 잘못된 뉴스를 사실인 양 포장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저널리즘이 주는 정보는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진실>이라는 다소 혼란스런 원칙을 고수하는 여정이다. 진실은 숨어있는 사실을 끄집어 내고, 겉으로 보기에 아무 상관없는 사실들의 논리를 짜맞춰 이해시키며, 나아가 사람들이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나침반이다. 사실(fact)을 성실하게 보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사실에 대한 진실(truth about the fact)을 보도하는 게 필요한 때다.

사견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범벅이 된 기사를 보면서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게 기자들의 본래 임무다. 중요하지만 아직 거칠고 정리되지 않은 정보들을 흥미 있고 관련성 있는 기사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법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저널리즘은 어느 누구보다 시민들에게 충성해야 한다. 이는 직업적 자부심 이상의 것이며, 시민들과 맺은 사실상 묵시적 계약인 셈이다.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정보를 시민들에게 알려주어 대중의 비판과 논평을 위한 공개 토론장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가 성숙된다.

오늘날 언론사 간부들은 회사의 경영에 민감하다. 그들의 해당 연도 성과는 바로 당해 수익과 종속관계에 놓여 있으며 미국 언론에도 이런 분위기는 만연해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광고는 바로 언론사의 젖줄이자 생명유지장치다. 뉴욕타임스 광고부가 뉴스가 특별히 많은 날은 과감히 광고를 포기하는 전략을 택하는 풍경은 꿈같은 얘기다.

그러나 독자는 단지 <고객>이 아니다. 신문사는 <신문이란 상품>을 판다기 보다 진실을 알려주어 사람들이 스스로 각성하고 올바른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진실을 추구함에 있어서 본지는 대중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물질적 이익을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진실을 전달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저널리즘은 그래서 끊임없이 검증(verification)을 거쳐야 하며, 취재 대상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고, 기자는 포괄적이고 균형잡힌 뉴스를 만들어야할 의무가 있다.

저널리즘이 오락, 선전, 선동과 다른 부분은 바로 검증의 규뮬을 지닌다는 점이다. 투키디데스가 2000년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서문에서 밝힌 구절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의 사실 보고와 관련해…..나는 나에게만 일어난 이야기를 쓰지 않고 나 자신의 일반적 인상에 이끌려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또 내가 묘사한 사건이나 목격자로부터 듣고 가능한 한 철저히 점검한 사건의 현장에도 직접 가보았다. 그랬는데도 진실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같은 사건에 대해 목격자들은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한쪽 입장에서 편파적인 발언을 하거나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해 진술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상황과 해석을 덧붙이는 일을 서두르기보다는 <통합과 검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소문. 빈정거림, 중요하지 않은 것들, 그리고 편견을 추려내고 그 이야기에 관해 진실되고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

기자들이 현장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가장 절실하게 부딪히는 고민은 <물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다른 매체가 먼저 다룬 뒤 만회하기 위해, 혹은 그런 낌새가 보일 때에 종종 기자들은 무리해서 불확실한, 검증이 덜 된 정보를 기사화시키다 낭패를 겪곤 한다.

경쟁에서 지는 순간, 상급자들이 쏟아내는 히스테리는 기자들의 정서를 황폐하게 한다. 하루살이 같은 인생에서 모멸감을 자주 당할 수록 수명은 단축되고, 결국 이를 피해 보기 위해 <일단 지르고 보자, 아님 말고>라는 무책임한 태도가 양산되는 구조다. 사실 언론사 간의 이런 무한경쟁 구도 속에서 진실에 대한 책임감을 갖자고 외쳐대는 모습은 한가한 담론일 수 있다.

그래도 브레히트가 언급하듯 진실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는 사람은 한낱 바보지만, 무엇이 진실인 줄 알면서 침묵한다면 이는 범죄자다. 기자가 범죄자 취급을 받아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언론인은 개인의 양심에 따라야 한다. 기자는 기사를 통해 자신의 인격을 발산한다. 기사는 기자의 총제적 본질이며, 부당한 외부의 압력이나 왜곡된 사실을 강요받았을 때 언제든 온 몸을 던져 자신의 정체성을 방어해야 한다. 기자는 언제든 사표를 던질 각오를 갖고 일해야 한다는 게 미국 언론인들의 권고다.

언론이 결국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는 권력의 독립된 감시자다. 연방 대법원은 1971년 <국방부 기밀문서(Pentagon Papers)>라 불리는 정부의 극비문서를 <뉴욕 타임스>가 보도할 권리를 옹호하면서 <수정헌법 제1조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은 미국 민주주의에서 기본적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보호를 자유 언론에 부여했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니라, 통치받는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치 섞인 표현으로 언론의 신조는 <고통받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말이 있다.

저널리즘의 기본요소를 통해 우리는 저널리즘이 일종의 지도 제작, 시민들이 사회를 항해하기 위한 지도를 제작하는 사명을 띤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이 저널리즘의 효용이며, 경제적 존재 이유다. 기자란 이토록 숭고한 직업임에도 현실은 그다지 희망적이지만은 않다는 데 새로운 고민이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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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웨스트 윙>의 작가이면서 영화 <소셜 네트워크>와 <머니볼> 각본을 썼던 애런 소킨이 대본을 쓴 HBO 드라마 <Newsroom>은 저널리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볼만한 작품이다. 2012년 첫 방영을 시작, 시즌2까지 나왔다. 콜드플레이 노래 <Fix You>가 흐르는 이 장면은 마지막까지 사실에 충실해야하는 게 저널리즘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관이란 점을  웅변하고 있다.

폴 엘뤼아르와 김현, U2를 좋아하고 저널리즘에 대해 성찰하는 자세를 유지하려 합니다. 사회학자가 되려다 어쩌다 기자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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