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의 마법사 빌리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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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4년 6월28자 C1~2 면에 실렸던 ‘평가 바꿔라, 성과 바뀐다 : 저(低)예산 고(高)성과의 마법 ‘머니볼’의 실존 인물 빌리 빈’ 기사를 확대 보완한 것이다.


2011년 개봉한 영화 ‘머니볼(Moneyball)’은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의 지혜를 다룬 이야기다. 경영학이란 관점에서 보면 성과 측정과 빅데이터 활용, 나아가 변화와 혁신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머니볼’ 영화는 주연을 명배우 브래드 피트가 맡았다. 아카데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비롯, 6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언제나 그렇듯 피트는 주연상을 못 받았다.)

피트는 이 영화에서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단장(GM·General Manager)으로 나왔다. 운영 예산이 적은 가난한 구단이 어떻게 부자 구단을 누르고 승자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가를 열정적으로 보여줬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줄거리는 언론인이자 저술가인 마이클 루이스가 2003년 펴낸 책 ‘머니볼’에서 대부분 빌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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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오클랜드 빌리 빈(52·Beane) 단장. 빈 단장은 1998년 이후 16년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Athletics) 구단을 지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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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중 미소를 짓고 있는 빌리 빈 단장

오클랜드는 선수단 1년 연봉이 메이저리그 최하위권이다. 그런데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4년 동안 7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2012년과 2013년 2년 연속 지구(division) 우승을 거머쥐었다.

지난해 선수단 전체 연봉은 6066만달러. 지구 경쟁자인 텍사스 레인저스(1억1409만달러), LA에인절스(1억289만달러)는 물론, 성적이 꼴찌인 시애틀 매리너스(7203만달러)에도 못 미치지만 이들을 가뿐히 제친 것이다. 메이저리그 전체로 따지면 성적은 30개 구단 중 3번째, 연봉 총액은 27번째였다.

여기서 ‘머니볼’ 전략이 갖는 함의는 정교한 통계 기법을 통해 선수들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 몸값이 낮으면서 저평가된 유망 선수를 찾아내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호사가들은 이를 ‘머니볼 혁명’으로까지 불렀다.

사실 ‘머니볼’ 마법은 오클랜드가 2000~2003년 4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오르면서 절정을 이뤘다. 2002년에는 연봉 총액이 30개 구단 중 29번째에 불과했지만 전 구단 중 최다승(103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다 2006년을 마지막으로 2011년까지 오클랜드는 5년 동안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했다.

다른 구단들이 오클랜드식 ‘머니볼’을 흉내내기 시작했고, 빠른 추격자(fast follwer)들 탓인지 침체기를 겪었다. “‘머니볼’은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비아냥이 뒤따랐다. 그런데 2012년 당초 하위권에 머물 것이란 전문가들 예상을 뒤엎고 지구 1위에 오르더니 2년 연속 경쟁자들을 제압했다. “‘머니볼’ 시즌2가 시작됐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올해는 아예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다. 선수 연봉 총액은 8340만달러로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25위. 1위는 류현진이 뛰는 LA다저스로 2억3529만달러에 달한다.

이번에는 빈 단장이 또 어떤 마술을 부린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메이저리그 시범경기가 열리고 있는 애리조나주 피닉스(phoenix)로 건너갔다.

이번 인터뷰에는 ‘머니볼’을 한국 프로야구에도 적용하기 위해 실험 중인 엔씨 다이노스 이태일(49) 대표가 동행했고 대담을 진행했다.

피닉스는 3월 초인데도 낮 기온이 최고 영상 27도에 달할 정도로 무더웠다. 덕분에 빈 단장은 반바지 차림이었다. 그는 웃는 얼굴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단장실은 오클랜드가 시범 경기 기간 동안 홈 경기장으로 쓰고 있는 뮤니시펄 운동장 내야 관중석 뒤 구단 사무실 2층, 그라운드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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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가 스프링캠프에서 홈 구장으로 쓰는 피닉스 뮤니시펄 경기장.

전날 시범 경기에서 오클랜드가 지난해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1위인 LA다저스에게 7대3으로 역전승한 때문인지 그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다저스의 에이스 투수 클레이튼 커쇼를 2이닝 5실점으로 두들긴 게 흐뭇한 듯 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망설임 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정말 이 사람이 ‘선수가 마음에 안 드는 플레이를 하면 쓰레기통을 걷어차고 말을 듣지 않는 감독을 수시로 갈아치우는 그 독불장군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구단 홍보담당자 밥 로즈(Rose)는 미리 “빌리는 말이 많으니(talks a lot) 인터뷰가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과연 그랬다. 그는 달변이었다. ‘머니볼’에서 자신을 연기한 브래드 피트가 어땠냐고 묻자 “뭐 괜찮았다”면서 “영화도 좋았다”고 말했다.

– 오클랜드식 구단 운영 방식, 이른바 ‘머니볼’은 2000년대 초 돌풍을 일으켰다가 한동안 주춤했다. 그러다 2012년부터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부활한 비결은 뭔가.

“사실 운이 나쁘게도 그 기간 동안 (주축) 선수들 부상이 많았다. 이런 건 분석하고 예측할 수 없는 돌발 변수다. 그러나 그 뒤로도 우리는 이런 변수를 감안해서 다시 전략을 짰다.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서 새로운 결단을 내렸다. ‘머니볼’이 대중화되면서 점점 더 많은 구단들이 분석(애널리틱스)을 정교화하고 이를 실전에 적용하고 있어 갈수록 더 어려운 환경이다. 우리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새롭게 기법을 바꾼다. 이런 건 영업 비밀이라 공개할 순 없다.(웃음) 다만 기술은 변하고 업계도 이에 맞춰 발빠르게 변하고 있다. 계속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으면 몰락한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어떤 스포츠 경기든 잘하는 선수는 몸값이 비싸다. 비싼 선수(즉 잘하는 선수)를 많이 보유하고 있으면 성적이 좋을 수 밖에 없다. 야구의 뉴욕 양키스나 축구의 레알 마드리드가 본보기다. 그러나 그럴만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한 가난한 구단은? 평생 하위권에서 체념하거나 뭔가 새로운 전략을 짜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오클랜드는 바로 빈이 단장으로 있던 지난 16년 간 돈 없는 약자가 어떻게 강자를 물리칠 수 있는 지에 대한 예술적 경지를 보여줬다.

경제학자이자 전 연준(Fed) 의장인 폴 볼커는 “가난한 구단에 희망이 없다면 낮은 연봉을 지급하는 오클랜드가 그렇게 많은 승리를 거두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빈 단장을 우회적으로 칭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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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머니볼’에서 빌리 빈 단장(브래드 피트)이 선수들과 담소를 나누는 장면.

‘머니볼’에서 저자 마이클 루이스가 분석한 빈 단장의 마술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빈 단장도 동의한 내용이다.)

① 지금 아무리 성공적이라 해도 변화는 항상 필요하다. 영원히 현상 유지할 수는 없다. 항상 업그레이드를 추구하라. 그렇지 않으면 끝장이다.

② 뭔가를 꼭 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끝장난 것과 다름 없다. 터무니없는 가격에 계약한 선수 때문에 받은 충격은 쉽사리 헤어나지 못한다.

③ 모든 선수가 정확히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선수 몸값을 제대로 매길 수 있다.

④ 어떤 선수가 필요한지 정확하게 파악해 그 선수를 붙잡아라. 다른 팀이 트레이드에서 누굴 보내려 하는지에는 신경쓰지 마라.

⑤ 사람들이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모든 거래를 공격하더라도 신경쓰지 마라. 내가 IBM 사장이라면 자신이 내리는 인사 결정에 대해 주변에서 떠들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저명한 야구 분석 웹사이트 ‘베이스볼 프로스펙투스’에 따르면 최근 오클랜드는 타자의 가치를 평가할 때 ‘뜬 공(fly ball) 지수’를 가장 주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이 뜨면 장타가 나올 확률이 높고, 상대적으로 단타에 비해 점수를 뽑기 쉽다는 논리다.

http://regressing.deadspin.com/a-decade-after-moneyball-have-the-as-found-a-new-mark-1489963694

원래 ‘머니볼’ 초기 오클랜드는 누구나 타율에 주목할 때 출루율이란 잣대를 들이댔다. 안타나 볼넷이나 똑같이 1루에 나가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안타를 많이 치는 선수는 비싸다.

그래서 오클랜드는 볼넷을 많이 고르는, 상대적으로 싼 선수를 대안으로 잡았다. 똑같이 1루에 나가긴 마찬가지인데 굳이 안타 많이 치는 비싼 선수를 영입할 필요, 아니 영입할 자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출루율 혁신을 하버드대 통계학과 칼 모리스 교수가 나중에 분석해 논문을 내자 빈 단장은 “우린 이걸 3년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하버드는 자신들이 처음 만들어낸 줄 아는군”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어떤 분야든 품질을 높이고 비용을 낮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통계를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머니볼’ 이후 너도나도 출루율을 중요시하자 이제는 ‘뜬 공’이란 새 혁신 모델을 개발한 셈이다.

​- 서로 다른 3가지 유형, 이를테면 재능(talent)이 뛰어난 선수, 경험(experience)이 풍부한 선수, 직업의식(work ethic)이 투철한 선수가 있다고 한다면 누굴 먼저 고르겠는가.

“첫째는 물론 재능이다. 스포츠에서는 타고난 재능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궁극적으로는 승리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사실 재능과 경험은 동전의 양면이다. 경험이 있어서 잘 하는 선수는 이미 재능을 갖추고 있기 십상이다. 하지만 경험과 직업의식 중 고르라면 후자를 택하겠다. 사명감은 때때로 예기치 못한 놀라운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오클랜드는 저예산으로 고효율을 달성한 좋은 사례다. 그럼에도 최종 목표인 월드시리즈 우승은 아직 이루지 못했다. 언제쯤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나.

“바란다면 올해였으면 좋겠다.(웃음) 이기다 보면 언젠가 (월드시리즈) 우승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포스트시즌에 간다면 우승 못할 이유가 없다. 물론 포스트 시즌은 실력만 갖고는 안된다. 운이 따라야 한다. 최고의 팀이 우승할 때도 있지만 그것보다 운이 승부를 결정할 때가 적지 않다. 우리에게도 언젠가 운(우승)이 찾아올 것으로 믿는다.”

(빌리 빈 단장은 올해 정말 승부를 건 듯 하다. 보스턴 레드삭스 에이스 존 레스터를 시즌 도중 트레이드로 데려오면서 월드시리즈 우승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냈다. 하지만 트레이드를 단행한 8월1일 이후 레스터는 오클랜드에서 3연승을 거둬 그런대로 기대에 부응한 반면, 팀은 15일까지 7승8패를 기록, 부진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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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선수복을 입은 존 레스터. 아직은 좀 어색하다.

-오클랜드에서는 감독보다 단장 입김이 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장과 감독은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하는가.

“감독은 말하자면 현장 경영자(executive)다. 단장이 지휘하는 운영팀에서 선수 진용을 구성하고 어느 정도 기술을 습득할 수 있게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면 경영자(감독)는 이 인재들을 실시간으로 활용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시즌 중에는 우리 회사(company)를 상징하는 얼굴이기도 하다. 언론이나 팬들과 매일 접촉하는 건 감독 몫이다. 회사(구단)의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행시키기 위해 감독이 있는 셈이다.”

빈은 그러면서도 어떤 단장보다 선수 대기실을 자주 드나는다. 오클랜드에서 뛰었던 데이빗 저스티스는 이전 14년 동안 다른 구단에서 뛰는 기간에 단장들과 마주쳤던 것보다 오클랜드 와서 반년 동안 빈과 마주친 횟수가 더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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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을 하는 엔씨 다이노스 이태일 대표와 빌리 빈 단장

– 오클랜드는 종종 한물 갔다고 평가받은 선수들을 데려와 다시 기회를 주고 꽃을 피우게 한 뒤 후한 가격에 팔아 치운다. 마치 기업 세계에서 부실 기업을 인수·합병(M&A)한 뒤 가치를 높여 파는 것과 흡사하다.

“이 업계에서는 ‘커리어를 시작하거나 끝나가는 선수들’이라는 표현을 쓴다. 벨 커브(Bell Curve·평균을 중심으로 중간이 불룩하게 올라온 그래프)로 따지면 시작과 끝에 있는 집단이다. 우리 선수들 상당수는 벨커브 시작과 끝 쪽에 있다. 벨커브 가운데 있는(능력이 절정에 달한) 선수들은 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앞·뒤쪽에 분포한 선수들은 미래 가능성이 있고 능력이 남아 있으면서 비용도 저렴하다. 우리는 이런 선수들을 발굴하는 걸 항상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이를 위해서 세상을 좀 더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수학·과학·공학·경제학이나 기술적인 기법에 의존한다. 세상은 점점 더 기술(technology)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헤지 펀드 주식 투자 전략처럼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기법으로 야구단을 운영하는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

실제 빈 단장은 상대 팀이 자신의 선수를 실제 가치보다 더 비싼 값에 사가고 상대 팀 선수를 실제보다 싼 값에 팔도록 설득하는 데 뛰어나다. 지난 몇 년 간 너무 훌륭하게 수완을 발휘하는 바람에 다른 구단들은 빈 단장과 거래하길 꺼린다고 한다.

– 시장에서 저평가(undervalued)된 선수를 발굴하는 선발 원칙은 마치 월스트리트에서 펼치는 주식 투자 운용 기법과 흡사하다. 월가에서 영향을 받은 게 있나.

“워렌 버핏과 가끔 만나 대화한다. 지난 번에 오마하(네브라스카주)에서 한 시간 정도 만나 다양한 얘길 나누기도 했다. 그는 아주 좋은 사람이고 배울 게 많다. 버핏의 투자 경력은 화려하고 성공적이지만 조언은 단순하다. 저평가된 가치주를 찾으라는 것이다. 버핏을 통해 또 배운 게 있다면 당장 주식시장이 떨어진다고 해도 기겁하지 않는 것이다. 내려가면 올라갈 것이고 올라가면 내려갈 수 있는 법이다. 나는 지금 갖고 있는 집 값이 내년에 좀 내려갈지라도 20년 뒤에는 지금보다 오를 것으로 확신한다.”

‘머니볼’이 가진 매력 중 하나는 이런 투자 기법 같은 선수 선발 방식이다. 빈은 단장 취임 후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폴 디포데스타를 보좌역으로 영입했다. 월가에서 금융전문가로 일했던 그는 야구 선수 뽑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디포데스타는 감(感)이나 직관에 의존하던 기존 선수 선발 방식에 문제가 많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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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빈 단장과 폴 디포데스타(영화에서는 피터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그는 컴퓨터를 통해 새롭게 분석한 통계 수치에서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일에 집중했다. △선수 출신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한다 △최근 성적을 과도하게 신뢰하지만 그 성적이 미래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자기가 눈으로 본 것에 의존하지만 그 사실에 편견이 작용한다는 걸 모른다는 게 디포데스타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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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디포데스타 실제 모습

빌리와 폴은 겉모습이나 측정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아닌 기록과 성적 중심으로 선수 선발 방식을 재편했다. 빈 단장은 “지금까지 드래프트는 빌어먹을 도박에 다름없었다. 50명 중 2명만 성공해도 기뻐하죠. 도대체 어떤 사업에서 50분의 2를 성공이라고 부릅니까. 주식시장이었으면 진작에 파산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빈은 “가치를 평가하고 가격을 매기는 기법에 대한 문제”라면서 “30년 전 주식 투자자들은 감으로 주식을 사곤 했는데 지금 누가 그렇게 하는가. 만약 감으로 하는 펀드 매니저와 연구와 분석을 통해 판단하는 펀드 매니저가 있다면 누구에게 돈을 맡기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최근 들어 선수 진용을 주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 위주로 구성하고 있다. 마치 기업들이 자주 써먹는 원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기법과 흡사하다.

“정확한 표현이다. 선수단은 25명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들이 모두 다양한 기능(수비 위치)를 수행하면서 전체적으로 서로 단점을 보완해주는 실력을 갖춰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도록 신경 쓴다. 우리 팀에는 만능 선수는 없지만 음과 양처럼 이 선수 저 선수를 그때 그때 필요에 맞게 조합해 운용한다. 기업이든 야구단이든 스타플레이어 1명만 갖고는 뭘 할 수가 없다. 오클랜드에는 슈퍼 스타는 없지만 평균 이하 못하는 선수는 없다. 다 평균 이상을 해준다. 또 그렇게 선수를 뽑는다. 그게 (선수가 아닌)팀으로서 이기는 길이다.”

– 본인의 인생에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은 누구인가.

“버핏도 있지만 첫번째는 아버지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군인이었다. 나중에 샌디 앨더슨과 일하게 됐는데 그도 군인(해군 장교) 출신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 군인이다. 물론 야구와 군대식 조직 운영은 큰 상관 없지만 우연찮게 멘토들이 군인 출신이다보니 거기서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영향을 받은 느낌이다. 아버지와 캐치볼을 한 게 내가 야구의 길로 접어든 계기였다. 샌디는 비상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고 야구를 보는 눈을 물려줬다. 내게 첫 기회를 준 사람이면서 롤 모델이기도 하다. 샌디는 결정을 내릴 때 윤리적으로나 일관성 측면에서나 훌륭했다. 옳다고 믿는, 옳은 길을 고집했다.”

샌디 앨더슨(현 뉴욕 메츠 단장·1983~1997년 오클랜드 단장)은 야구에서 중요한 점은 물론 신체적인 능력이지만 그 다음으로 정신력을 높이 샀다. 이는 근면성이자 성실성의 다른 말이다. 어떤 타자든 정신력을 강화하면 타율이나 출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타석에서 살아나가는 기술은 집중력의 산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빈 단장 역시 필사적인 노력 속에서 창의성이 나온다고 믿었다. 승리에 대한 강한 열망이 교착 상황에서도 묘수를 찾아나간다는 설명이다.

샌디 앨더슨 뉴욕메츠 단장

샌디 앨더슨 뉴욕메츠 단장

– 이제 다른 구단들로 오클랜드식 운영 기법(새이버메트릭스)을 따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차별화를 하고 있는가.

“물론 차별화를 한다. 좋은 지적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차별화 전략을 이 자리에서 드러낼 순 없지만 독특한 전략이 있다. 아무리 숨겨도 탬파베이처럼 영리한 구단들은 알아챌 수도 있겠지만 후발 주자들이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노하우가 있다. 그게 없이 어떻게 계속 성적을 유지하겠는가. 하나 더 덧붙이자면 채용 원칙이다. 나보다 더 뛰어난(brighter) 사람을 불러 쓴다. 자신보다 뛰어난 참모를 고용하면 거꾸로 나중에 당할까봐 우려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런 식으로 입지를 확보한다고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양성(diversity)도 중요하다. 성별도 다르고 국적도 다양하고 출신도 야구계 이외 분야에서 종종 뽑는다. 물론 스포츠를 사랑해야 한다. 스포츠를 사랑하고 능력이 있다면 영입 대상이다. 구단 실권을 장악하기 위해 단장과 게임을 벌이려는 간부는 사절이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배경에서 자란 직원들이 가진 사고 방식을 흡수하는 게 임무다. 그게 지금 요즘 시대가 돌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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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 선수들 중 추신수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연봉 1000만달러짜리 볼티모어 오리올스 마무리투수 짐 존슨을 잡았다. 너무 비싼 건 아닌가.

“추신수는 좋은 선수다. 우리도 안다. 그러나 그에게 다년간 장기 계약으로 1억달러(추신수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1억4000만달러에 계약했다)를 안겨줄 돈이 우리에겐 없다. 짐 존슨은 1년 1000만달러다. 장기 계약은 리스크가 크다.(나중에 못하면 고스란히 손해로 돌아오기 때문) 추신수는 훌륭한 선수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았다. 다만 오클랜드 구단으로서 그 정도 금액을 베팅할 여력이 없었던 거지 추신수를 낮게 평가한 게 아니다. 추신수 자리(외야수)보다 다른 포지션에 돈을 써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같이 가난한 구단은) 유지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짐 존슨은 재앙이었다. 38경기에 나와 4승2패 2세이브 방어율 7.14라는 참혹한 성적을 남기고 시즌 도중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됐다. 마무리 투수에는 돈을 안 쓴다는 ‘머니볼’ 원칙을 훼손하면서 감행한 영입이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 WBC(월드베이스볼 클래식)이나 각종 국제 대회에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차출되는 건 어떻게 보나.

“오클랜드는 일본에 두 번 갔고 올해는 호주에도(홍보 차원에서 메이저리그 경기가 호주에서 열릴 예정) 가려 했다. 만약 한국에서 초청하면 응할 의사가 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아시아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이미 메이저리그 선수들 35% 이상이 미국 이외 국가에서 왔고 이치로, 다르비슈, 추신수 등 엄청난 선수들이 아시아에서 왔다. 축구와 세계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야구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제 경기는 자주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세계를 보는 이전과 다른 시야를 기를 수 있다.”

빈은 2002년 시즌이 끝나고 그의 운영 철학에 매료된 보스턴 레드삭스에게서 단장 제의를 받았다. 역사상 단장으로선 최고 대우인 5년간 1250만달러(연봉 250만달러)를 받고 옮기기로 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빈은 숙고한 끝에 오클랜드에 머물기로 했다. 오클랜드에서 받을 연봉은 100만달러였지만 돈 때문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설명을 달았다. 30여년전 거액의 계약금에 끌려 대학 대신 프로를 택한 걸 후회하고 있기 때문에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 자신이 가진 운영 원칙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에 남겠다는 고백이었다.

오클랜드 구단은 돌아온 빈 단장에게 800만달러에 달하는 구단 지분을 안겨줬다. 빈 단장은 여전히 재정이 빈약한 구단에 남아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스포츠의 아이러니한 미학을 즐기고 창조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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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일 대표와 포즈를 취한 빌리 빈 단장.

∗ 영화 ‘머니볼’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딸이 아빠(빌리 빈)를 위해 렌카(Lenka)의 노래 ‘The Show’를 직접 불러주는 부분이다. 가사가 꽤 근사하다.

I’m just a little bit caught in the middle/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 I don’t know where to go I can’t do it alone I’ve tried /And I don’t know why


Slow it down / Make it stop / Or else my heart is going to pop / Cause it’s too much / Yeah, it’s a lot / To be something I’m not


I’m a fool / Out of love / ‘Cause I just can’t get enough / I’m just a little bit caught in the middle /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I don’t know where to go I can’t do it alone I’ve tried / And I don’t know why


I’m just a little girl lost in the moment / I’m so scared but I don’t show it / I can’t figure it out / It’s bringing me down I know / I’ve got to let it go / And just enjoy the show

폴 엘뤼아르와 김현, U2를 좋아하고 저널리즘에 대해 성찰하는 자세를 유지하려 합니다. 사회학자가 되려다 어쩌다 기자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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