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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아이스 버킷 챌린지 단상 - 이곳에 살기 위하여 Pour vivre ici
아이스 버킷 챌린지 단상

최근 단 1주일 만에 인터넷 세계를 화끈하게 달군 이벤트를 꼽는다면 단연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일 것이다. 루게릭병을 앓는 환자들을 위해 연구 기금을 기부하자는 게 취지인데 지난 14일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가 얼음물을 끼얹고 다음 참가자로 지목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마저 동참하면서 폭발적인 가속도가 붙었다. (빌 게이츠가 이렇게 화제의 중심에 선 적이 최근 수 년간 있었던가 싶다. 흐. 이 동영상은 조회 수가 1500만을 넘겼다. 개인적으로 아이스 버킷 챌린지 동영상 중 가장 맘에 든다.)

페이스북 최고책임운영자(COO) 섀릴 샌드버그, 애플 CEO 팀 쿡,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 야구선수 지미 롤린스 등이 얼음물 세례에 기꺼이 몸을 던졌다.

유명인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저마다 얼음물 샤워에 빠진 뒤 동영상을 띄우거나 기부에 지갑을 열고 있다. 6살 아이부터 83세인 로버트 케네디 전 상원의원 미망인 에델까지 세대를 넘어선 ‘얼음물 쇼’가 펼쳐지고 있다.

한국에도 상륙해 한 주 내내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마치 “동참하지 않으면 유행에 뒤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번졌다.

새삼 소셜네트워크(SNS)의 위력을 다시 실감하게 한 사례였다. 국내 네티즌들은 발빠르게 이 얼음물 뒤집어쓰기에 동참한 유명인들 명단을 빽빽하게 정리했을 정도다.(부지런하기도 하다) 미 루게릭병 연구재단(ALS)은 이 이벤트에 힘입어 7월말부터 최근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의 20배 가량 많은 기부액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기부를 윤리적 의무감이 아니라 자연스레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놀이’를 통해 즐겁게 참여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렇게 기부에 참여한다고 해서 기부의 본래 의미가 퇴색하는 것도 아니다. (확실히 안 하는 것보단 낫다.)

사실 기부에도 ‘입소문 마케팅(viral marketing)’이나 영업·판매 노하우를 도입하지 말란 법은 없다. 적잖은 자선·기부 단체들이 기부 참여를 늘리기 위해 늘상 이런 고민을 하고 있으며, 기업들도 ‘코즈 마케팅(cause marketing)’이란 기법을 통해 ‘착한 소비’를 내세우면서 실적을 높이고 있다. 탐스슈즈는 한 켤레를 사주면 한 켤레를 빈곤국 아동을 위해 기부한다고 선전하면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

탐스 슈즈 CEO 블레이크 마이코스키가 아르헨티나 아동에게 신발을 신겨주는 모습.

탐스 슈즈 CEO 블레이크 마이코스키가 아르헨티나 아동에게 신발을 신겨주는 모습.

아이스 버킷 챌린지도 그런 의미에서 굳이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겠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이 행사가 앞으로 기부 문화 활성화에 본격적인 마중물 역할을 했으면 좋겠지만 어딘지 일회성 이벤트로 그칠 것 같은 기우(杞憂)가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루게릭병을 둘러싼 환경이 다를텐데 미국에서 그렇게 했다고 한국마저 그대로 따라한 점도 조금 어색하다. (왜 한국에서 루게릭병일까. 아이스버킷챌린지 자체도 루게릭병이 아닌 다른 희귀병 치료를 위한 것이었는데 루게릭병으로 관심이 전환됐다고 한다. 물론 루게릭병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더불어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다른 이슈도 많다.)

얼음물 샤워를 한 뒤 꼭 다음 참가자 3명을 호명하는 게 이 이벤트 규칙 중 하나인데 그 지명 과정도 불편한 데가 있다. 한 참가자는 “내키진 않았지만 회사 보스가 지명하는 바람에 안 할 수도 없었다”고 전했다. 그래서인지 일부러 다음 순서를 호명하지 않기도 한다. 안 하면 마치 선행에 무관심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묘한 분위기도 부담스럽다고 한다. (재밌고 의미 있으니까 다들 따라 하긴 한다.)

사실 얼음물 뒤집어 쓰지 않고도 기부하는 방법은 많은데 국내에선 기부가 아니라 ‘놀이’에 너무 열광하는 듯한 분위기로 변질한 점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안티들도 차츰 생기고 있다. 사실 ‘안티’할 일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유희’를 두고 뭘 그리 심각하게 해석하는 것 아니냐는 핀잔도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이 기부에 후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번 현상이 좀 더 발전적으로 진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사회사업재단 카프(CAF)가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World Giving Index)에서 한국은 45위(2012년 기준)였다. 인도네시아가 7위, 필리핀 17위, 태국은 26위였다. 위안 아닌 위안이라면 일본이 85위라는 점이다.

http://www.cafonline.org/pdf/worldgivingindex2012web.pdf

2013년 순위에서는 한국은 조사대상에서 빠져 목록에 없는데 1위가 미국이었다.

http://www.cafonline.org/pdf/WorldGivingIndex2013_1374AWEB.pdf

 

폴 엘뤼아르와 김현, U2를 좋아하고 저널리즘에 대해 성찰하는 자세를 유지하려 합니다. 사회학자가 되려다 어쩌다 기자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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