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4일자 34면에 실린 칼럼을 확대 보완해 다시 써봤다. 지면으로 등장하다 보니 분량 제한이 있어 상당 구절을 생략했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의미 전달이 미흡해 다소 오해에 가까운 모략과 비판까지 나오길래 전반적으로 담고 싶었던 생각을 다 포함시켰다.(그래봤자 여전히일 수도 있지만 일단)
프로야구단 기아 타이거즈의 선동열 감독이 얼마 전 자진 사퇴했다. 지난 3년 재임 기간 중 9개 팀 중 5위·8위·8위라는 부진한 성적을 남겼음에도 재신임되자 팬들이 들끓었고(선 감독 재계약 최대 수혜자는 다른 8개 구단이란 모욕성 댓글도 잔뜩 달렸다), 결국 이런 여론에 떠밀려 불명예 퇴진한 것이다. 구단에서는 공들여 영입한 지역 슈퍼스타를 초라하게 내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자기들 판단 미스를 인정하기 싫어서였을 수도 있다.)
사실 퇴진하는 모양새도 산뜻하지 않다. 성적만 보면 자진 사퇴하는 게 ‘아름다운 퇴장’으로 비칠 수 있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자존심을 회복할 기회를 잡고 싶었던 건지) 재신임 카드를 덥석 받은 선 감독 태도는 못내 아쉽다. (천하의 선동열이 구차하게…) 나갈 때도 뭔가 지난 과오에 대해 성찰하는 모습이 아니라 이런 수모를 받느니 나가고 만다는 오기가 더 짙게 풍겼다.
선동열이 누군가. 선수 시절 그는 국내 프로야구계 독보적 존재였다. 11년 동안 최우수선수(MVP) 3회에 통산 방어율 1.20이라는 불멸의 발자취를 남겼다. 기록만 보면 시쳇말로 인간계가 아닌 신(神)계 존재였다. (투구 이닝 수가 적다느니 심판들이 스트라이크존을 넓게 잡아줬다느니 일부 적대 세력도 윙윙대지만 동시대 선수들 증언을 종합하면 이런 시비는 입지가 좁다.)
LA다저스에서 뛰는 류현진 국내 성적과 비교하면 더 빛이 난다.(그 때와 지금은 타자들 수준 차이를 감안해야 할 수 있지만. 아니 그 당시 타자들이 더 화려하지 않았나 싶다.)
다만 감독으로서는 그다지 영화를 누리지 못했다. 물론 삼성 라이온스 감독으로 2005~2006년 구단 사상 첫 한국시리즈를 2연패하면서 주가를 올렸으나 이는 전임 김응룡 감독 영향력 우산이 다소 남아있던 시절이고, 이후 자기만의 색깔이 본격적으로 발현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는 2007~2008년 4위, 2009년 5위(13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에 이어 2010년에는 절치부심, 한국시리즈에 올랐으나 SK(김성근 감독)에 4대 빵으로 박살나면서 잔여 임기(재계약 첫 해로 4년이나 남은 상태였다)를 못 채우고 물러났다. (여담이지만 김성근 감독에 대해서도 리더로서 자질을 거론하는 야구계 인사들이 꽤 있다. 당대에는 성과를 내지만 후계자를 키우지 않아 떠난 자리가 폐허가 된다는 것이다. 조직의 영속성 측면에서 다시 평가가 필요한 분이다.)
고향인 기아에 와서는 더 참담했다. 선수들 구성에서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전문가들 평가가 무색하게 하위권을 맴돌았던 것이다. 전문가들이 시즌 전 예상한 바로는 2012~2013년은 우승후보, 2014년도 4강 후보라는 중론이 나왔는데 결과는 이미 드러난대로 참혹했다.
스포츠 세계에는 “명(名)선수는 명감독이 되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명선수는 자기가 잘하는 것만 생각하고 다른 선수가 왜 못하는지를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양한 실력을 가진 선수들이 잡다하게 모인 팀을 이끄는 통솔력에 한계를 보인다는 논리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축구에서 요한 크루이프처럼 예외가 있긴 하다. 그럼에도 이런 금언이 이어져 내려오는 이유를 리더십이란 도대체 뭘까라는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볼만 하다.
선수들은 인간이다. 화합을 이루어 사기가 올라가면 원래 가진 실력 이상 플러스 알파가 발현된다. 이른바 ‘화합력(chemistry)'(쉽게 팀워크라고도 볼 수 있지만 경기 외적인 사생활 속에서도 이 요소가 녹아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이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케미스트리를 이끌어내려면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2012년과 2013년 거의 같은 선수 구성으로 경기를 치렀는데 2012년은 지구 꼴찌, 2013년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바뀐 건 감독(바비 발렌타인 → 존 파렐)뿐이었다. 발렌타인 시절 선수단 분위기는 감독과 불화로 인해 최악이었다고 한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통산 승수(勝數) 상위 감독 대부분은 비교적 평범한 선수 시절을 보낸 인물들이었다. 리그 초기인 20세기 초반 감독들은 야구 규칙이나 수준이 달라 수평 비교하기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굳이 끄집어내자면 1위 코니 맥 감독은 선수 시절(10년) 통산기록이 타율 0.245 5홈런 265타점, 3위 현대 야구의 명장으로 손꼽히는 토니 라루사는 0.199 7타점, 4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전성기를 이끈 바비 콕스는 0.225 58타점, 6위 토나 라루사 이전에 최초로 양대 리그에서 월드시리즈를 우승했던 스파키 앤더슨은 0.218 34타점만을 남기고 선수생활을 접은 인물들이다. 올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5년 사이 3번째 우승으로 이끈 브루스 보치 감독 역시 선수 시절 기록은 통산 0.239에 93타점에 불과했다.
예외가 꼽는 감독은 2위 존 맥그로인데 통산 0.334에 1024득점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이 20명 중 선수로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감독은 아무도 없다. 선수로서 명예의 전당급 활약을 펼치고 감독으로 역대 승수 50위 내에 드는 경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한국 프로야구는 그래도 승수가 많은 감독들이 거의 명선수 출신이긴 하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다르다. 과거에는 지도자 시장이 워낙 빈약했으니 그랬을 수 있다.]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두 팀 감독(삼성 류중일, 넥센 염경엽)을 비교해보자. 류중일이야말로 성적만 보면 현재 최고 감독이라 해도 반박할 구실이 없다. 염경엽은 상대적으로 이름값이 떨어지던 비주류 선수들을 수준급으로 길러내고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을 통해 넥센을 강팀으로 자리잡게 했다.
그런데 류중일 삼성 감독 선수 시절 기록을 보니 놀랍게도 생각보다 초라했다. 아무리 수비형 유격수라지만 이 정도면 머릿 속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두말할 필요 없고. (프로 10년 통산 평균 타율이 0.195다)
리더십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정동일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선동열 감독의 퇴진에 대해 “A급 인재가 리더가 되어 실패하는 전형적 케이스”라면서 “본인은 뛰어나지만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걸 자기 중심적으로 보는 성향이 있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리더로서 역량과 선수로서 역량은 별개인데 이에 대해 훈련이나 교육이 제대로 안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기업에서도 비슷한 고민으로 머리를 싸맬 때가 많다. 평사원 때 높은 성과를 보인 실무자를 팀장이나 부장으로 승진시켰더니 오히려 그 부서 팀워크가 무너지면서 성과가 하락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사실 팔로어(follower)인 사원과 리더(leader)인 관리자가 요구받는 역량은 다르다. 리더는 조직을 이루는 구성원들을 통해 성과를 내야 한다. 자기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평범한 부하들이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게 조직을 창조하는 게 리더십의 백미(白眉)다. 흔히 리더로서 자질이 없는 직원을 평직원일 때 잘했다고 리더로 올린 다음 곪아터지는 부작용은 조직의 경쟁력을 엄청나게 소모한다.
베스트셀러인 ‘EQ 감성지능’ 저자 다니엘 골먼은 리더가 지녀야 할 자질로 ‘공감 능력(empathy)’을 꼽는다. 부하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느끼는지 파악해 감정이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공감 능력이 결핍된 리더는 납득하기 어려운 지시를 강요하고, 명령조로 일관하며, 직원들이 업무로 힘들어해도 무관심하다고 설명했다. 골먼은 리더가 공감 능력을 키우려면 조직 안팎에 친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직언(直言) 그룹을 만들어 경청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가지라고 권한다. 회사 안을 일부러 어슬렁대며 직원들과 접촉을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 친밀도가 증가하면서 직원들 사이에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무사하겠다’는 분위기가 생겨 더 솔직한 얘길 들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골먼의 글은 한 번 읽어볼만 하다. http://estima.wordpress.com/2013/12/08/empathydisorder/ )
또 하나는 경청(傾聽)이다. 경영학자들이 강조하는 리더십의 핵심에는 비전 제시, 신뢰, 헌신 등과 더불어 경청이 빠지지 않는다. 경청은 곧 소통의 출발이기 때문에 그렇다. 톰 피터스는 “20세기가 말하는 자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경청하는 리더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고,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인 경영 컨설턴트 스티븐 코비 역시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대화 습관엔 차이가 있는데 하나만 들라고 한다면 ‘경청하는 습관’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맨손으로 대 그룹을 일군, 유쾌하고 탁월한 경영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창업자 겸 회장도 ‘경청’을 강조한다. 리더는 고객이나 시장(市場)뿐 아니라 직원들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브랜슨 회장 리더십 원칙에 대해서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에서 잘 정리했다. http://www.businessinsider.com/richard-bransons-leadership-rules-2014-10 )
비즈니스 전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링크드인 홈페이지에 보면 잭 웰치, 버락 오바마, 빌 게이츠 등 쟁쟁한 유명인들이 다양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수백편 글이 올라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조회수가 많은 글은 ‘라이커블 로컬(Likable Local)’이란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데이빗 커펜 최고경영자(CEO)가 쓴 ‘더 좋은 리더가 되는데 필요한 11가지(11 Simple Concepts to Become a Better Leader)’이다. 다들 리더십 노하우에 목마르다는 점을 대변해준다.
여기서 언급한 11원칙 중 첫 번째가 ‘경청(Listening)’이다. “사람들이 말할 때 잘 들어줘라. 대부분은 듣지 않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경청은 좋은 관계를 이끌어가는 기반이다. 고객이든 주주든 거래처 직원이든 말을 잘 들어줘야 일이 더 쉽게 풀린다. 훌륭한 CEO는 경청을 통해 조직을 뭉치게 하고 나아가게 한다. 다 듣지도 않고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야 말도 안되는 소리 좀 하지마”라고 면박을 주는 상사가 얼마나 많은가. 직원이 주눅이 늘어 결국 할 말(꼭 해야하는 말)도 못하게 되면 손해보는 건 회사다. 물론 시간이 금인데 한심한 발표를 하염없이 듣고 있을 순 없다. 관건은 귀기울여 듣고 있다는 점을 상대방이 알도록 하라는 것이다. 경청은 태도의 문제다.
선동열 감독은 어땠는가. 주간조선 기사에 따르면 “선 감독은 100이라는 능력을 가진 선수의 기를 꺾는 발언으로 능력의 60~70%만 쓰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다 보니 부임 첫해부터 기아 팀을 소리 없이 분위기가 가라앉게 만들었다. 선 감독의 의식 속에는 ‘아직도 내가 최고의 스타’라는 게 강한 것 같다”고 했다.
파문이 커진 안치홍 임의탈퇴 논란도 마찬가지다. 주력 선수 중 하나인 안치홍이 군 입대를 꺼내자 “군입대를 고집하면 임의탈퇴도 가능하다”는 협박성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해명한다고 한 말이 “임의탈퇴라는 말을 꺼낸 건 사실이지만 의미는 달랐다. 구단이 임의탈퇴를 생각하는 상황까지 되면 안되지 않느냐. 1년만 더 같이 하자’고 말했을 뿐”이었다.
안치홍 처지에서 곰곰히 들어보면 강도는 달랐지만 둘 다 기분이 상당히 나빴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분명 어디선가 씩씩 댔을테고 그게 소문이 퍼져 보도까지 이르렀을 것이다. 아마 선 감독은 자기 말이 선수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듯 하다.
결국 선동열 감독은 구성원(선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껴보려는 공감 능력과 구성원(선수) 말을 진정으로 들어주는 경청 노력이 수준 이하, 아니 애초부터 갖춰지지 않았던 리더였던 것으로 보인다. 요즘 시대 정신과 흐름에 비추어보자면 리더로서 자격 미달이었던 셈이다.
좋은 리더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훈련과 교육을 통해 길러지고 적절한 인사를 통해 걸러내야 하는 대상이다.(인사가 특히 중요하다. 좋은 리더를 고를 줄 아는 선구안이 인사 책임자에게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 전체를 망가뜨린다. 선동열 사례 역시 구단주나 인사 담당자들이 오판했다고 보여진다. 문제는 이 오판을 인정하고 새로 쇄신하고 출발해야 하는 상황에서 계속 자기들 판단과 고집을 버리지 않고 끌고 가려 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훌륭한 팔로어가 꼭 훌륭한 리더가 되는 건 아니지만 훌륭한 리더는 늘 훌륭한 팔로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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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동
2014년 11월 11일 at 4:14 오후
선감독이 아주 은퇴를 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 리더쉽 운운하는 필자도 문제다.
문제는 모두 진득히 참아주지 못하는데 있는 것이다. 미국 감독들 예를 들었으면 올바른 논리로 비난하기 바란다. 오히려 선감독이 메이저에 갈 수 있었으면 명감독이 되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너무 일찍 비난하지 말기를 바란다. 선감독 아직 안 죽었고 한국의 불세출의 스타, 그렇게 비참하게 매도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위재
2014년 11월 11일 at 5:08 오후
지적 감사합니다. 참고로 저는 선동열 감독이 광주일고 다니던 시절부터 팬입니다. 차동철-선동열-허세환이 주축을 이룬 그 때 경기 장면이 생생합니다. 기본적으로 애정을 갖고 비판한 것이니 감안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