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 연봉이 7만달러인 회사를 다닌다는 것
댄 프라이스 그래비티 페이먼츠 CEO

댄 프라이스 그래비티 페이먼츠 CEO

“저거 빨갱이 아냐?” 미국 극우 라디오 진행자 러시 림보가 댄 프라이스 그래비티 페이먼츠 사장(CEO)을 두고 악담을 퍼부었다. 역시 림보답다. 워싱턴주 시애틀에 본사를 둔 그래비티는 신용카드 지불 시스템 관련 서비스를 개발하는 곳으로 연 매출액은 1500만달러 수준.

프라이스는 이달초 직원 최저 연봉을 7만달러로 전격 인상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미국 안팎에서 화끈한 관심을 일으켰다. 원래 이 회사 직원들 평균 연봉이 4만8000달러였는데 이제 하한선만 50% 가까이 오르는 셈이다. 그 전까지 1년 4만3000달러를 받던 직원 필립 애커번(29)은 “듣는 순간, 턱이 빠질 뻔 했다”면서 즐거워했다뉴욕타임스 관련 기사 http://www.nytimes.com/2015/04/14/business/owner-of-gravity-payments-a-credit-card-processor-is-setting-a-new-minimum-wage-70000-a-year.html?_r=0 

그런데 매년 6600만달러를 버는 림보는 심사가 뒤틀렸나 보다. 그는 이번 결정을 “순진하고 덜 떨어진 사회주의식 발상”이라면서 “사회주의식 경영이 왜 실패하는지 잘 보여주는 경영대학원 사례 연구 소재가 되길 바란다”고 빈정댔다. (남의 회사 월급 올려주는 거 갖고 왜 저러는지.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1914년 직원 일당을 5달러-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120달러-로 일거에 2배 올렸을 때도 이런 무차별 색깔론 폭격에 시달렸다고 한다.)

림보가 심술이 난 건 대충 무시한다 쳐도 이런 ‘돈키호테’식 조치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섞이고 있는 건 사실이다. 뉴욕타임스가 엇갈리는 시선을 발빠르게 경제섹션 1면에 정리했다. http://www.nytimes.com/2015/04/20/business/praise-and-skepticism-as-one-executive-sets-minimum-wage-to-70000-a-year.html?ref=smallbusiness

이 기사에서 페이스북 마케팅 전문가(생소하긴 하지만 꽤 유명인사) 샌디 크라코우스키는 “아직 어리다. 의도는 좋지만 방법이 틀렸다. 결국엔 모두가 패자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고, 노스캐롤라이나 A&T주립대 경제학 교수 패트릭 로저스는 “(댄 프라이스는)행복한 직원이 생산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아직 이를 입증하는 근거는 없다. 직원들은 잠시 기분이 좋아지겠지만 이게 실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래비티 페이먼츠 직원들

그래비티 페이먼츠 직원들. 월급 올려주기 전 찍은 사진이다.

프라이스는 석학인 앵거스 디턴(피케티를 깔 때 자주 인용되는 책 <위대한 탈출> 저자)과 다니엘 카너먼(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2010년 연구결과물을 접하고 이같은 파격 인상을 결심했다고 알려졌다. 디턴과 카너먼은 물론 돈으로 행복을 살 순 없겠지만, 적어도 연봉이 7만5000달러가 될 때까지는 많이 받을 수록 행복감(논문에서는 emotional well-being)이 꾸준히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7만5000달러를 넘으면 연봉이 올라도 행복감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프라이스는 ‘아 직원을 행복하게 해주려면 7만5000달러는 줘야겠구나’라는 영감을 얻은 것 같다. 프라이스는 “적어도 직원들이 집을 마련하고 자녀들 교육 문제는 해결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고 반문한다.(사람들이 회사 다니는 이유다)  디턴과 카너먼 연구  http://www.pnas.org/content/107/38/16489.full.pdf+html

프라이스는 이미 이번 결정 이전에 임금을 올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업평가사이트 글래스도어에 들어가보면 전현직 직원들이 월급이 짜다는 불평을 심심치 않게 올렸다. 직장 분위기도 좋고 사람들도 멋진데 월급은 별로라는 내용이었다. (프라이스는 직원들이 익명으로 이 사이트에 올린 회사 품평에 대해 일일이 직접 답글을 다는 정성을 보여준다. 평소 공감이야말로 리더가 지녀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습성 때문이긴 한데 ‘사장이 저렇게 한가한가’라고 시비 걸릴 수도 있다. )

그런데 프라이스가 그냥 직원 연봉만 조용히 올려줬으면 <시애틀의 선인>으로 칭송받고 끝날 걸, 괜히 천문학적인 미국 기업 CEO 연봉에 대해 꼬집으면서 부자들 심기를 건드려 버렸다.

시애틀 매리너스 구장에 모인 그래비티 직원들

시애틀 매리너스 구장에 모인 그래비티 직원들

미국은 CEO 천국이다. 포천 500대 기업  CEO 평균 연봉은 1050만 달러에 달하며 민간연구소인 경제정책연구소(EPI) 조사에 따르면 미국 주요 기업 CEO 평균 연봉은 일반 직원 354배에 해당한다고 한다. 직원이 354년 벌어야 하는 돈을 1년 동안 버는 셈.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CEO와 직원 임금 격차가 20배 정도면 적당하다고 봤는데-물론 구닥다리 영감 얘기로 치부되면서 전혀 말발 안 먹히고 있다-지금 미국 현실은 프라이스 표현대로라면 “어이없고 부당한(ridiculous and absurd)” 지경이다.

결국 이런 비판의식에서 이번 임금 파격 인상 결정도 파생된 셈인데 그는 창업을 결심한 계기도 조금 달랐다. 고교 시절 밴드를 만들어 연습하다가 자주 들리던 커피숍 여주인이 비싸고 불친절한 신용카드 단말기 체계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걸 보고 고민을 직접 해결해주겠다고 나선 게 시작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알아보니 유독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푸대접 받는 일이 잦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들을 돕겠다는 마음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프라이스가 타고 다니는 12년된 아우디 차는 자동차 판매상에게 자사 솔루션 제공료 대신 받은 것이라고 한다.

돈 벌겠다는 욕심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한 게 아니어서인지 그는 회사 철학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서 어떻게든 도와라( Find someone who needs help, and help them in any way you possibly can)”라고 강조한다. 프라이스는 마케팅 전문가 가이  가와사키가 즐겨 했던 말을 자주 인용한다. <누군가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면 대답을 ‘천만에요’라고 하지 말고 ‘헤이 무슨 소리야 너도 그렇게 했을 거야’라고 해라>. 그래야 선행이 전파가 되는 법이다.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란 이런 것이다.

이런 심성이 깔려 있으니 이번처럼 상식을 뛰어 넘는 결단도 나오는 것이다. 그래비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거래처가 줄줄이 파산하고 그 결과, 2주만에 연 매출 20%가 증발하는 등 회사가 심각한 위기에 몰렸을 때도 해고 없이 위기를 헤쳐나온 관록도 갖고 있다.

남다른 기업 문화를 창출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라이스는 지난해 연말 잡지 <기업가(Entrepreneur)>(발행부수가 60만부 넘는 경제 월간지)  선정   2014년 ‘올해의 기업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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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에는 독특한 제도가 또 있다. 직원들이 매년 1000달러씩 개인 선택으로 자원 봉사나 사회 기부를 위해 쓰도록 지원하는 것. 회사인지 재단인지. 이런 박애주의적 전통을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너무 위선적인 데 치중한다”는 불만도 있었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

자잘한 논란과 잡음은 있지만 여하튼 프라이스와 그래비티는 이번 일로 일약 스타가 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나서서 격려하는가 하면,  ‘그래비티에서 일하고 싶다’는 지원서가 3500여장 밀려들었다.(현재 전 직원은 120명) 새로운 계약도 술술 이뤄지면서 알게모르게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관건은 이런 파격 인상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하한선을 한껏 올려놓았으니 다음에 연봉 인상 요인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할 지 궁금하다. 그는 아마 인센티브에 목줄을 매달지 않고 선한 의도로 공감을 확산시키면서 기업을 성장시켜보려하는 것 같은데 과연 기묘한 실험이 해피 엔딩일지 허무하게 망가질지 귀추가 정말 주목된다.

폴 엘뤼아르와 김현, U2를 좋아하고 저널리즘에 대해 성찰하는 자세를 유지하려 합니다. 사회학자가 되려다 어쩌다 기자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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