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 사회에서 경제학과 패권은 동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하버드대와 MIT가 정점에 있고, 프린스턴대가 뒤를 받치는 모양새. 이 동부 라인에 대항하는 거점은 신자유주의학파 산실인 ‘중부 마피아’ 시카고대 경제학과 정도였다.
2000년 이후 노벨 경제학상(노벨 기념 경제학상 Nobel Memorial Prize in Economic Sciences) 수상자 면면을 봐도 그렇다. 하버드, 콜럼비아, 프린스턴, 시카고대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 기간 동안 UC버클리가 연준 의장 재닛 옐런 남편인 조지 애컬로프 등 3명을 배출했지만 애컬로프 역시 박사 학위는 MIT에서 받은 바 있다.
최근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10명 중 옐런(예일대 박사)을 제외한 9명이 하버드나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직전 연준 의장 벤 버냉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 올리비에 블랑샤르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탠리 피셔 연준 부의장이 MIT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가장 최근 US뉴스앤 월드리포트 조사(2013년)에서 미 대학 경제학과 순위는 하버드, MIT, 프린스턴, 시카고가 공동 1위, 스탠포드대가 버클리와 함께 공동 5위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런 카르텔이 무너질 징조가 보인다. 스탠포드가 수년전부터 공격적으로 스타 경제학자들을 적극 영입하면서 오래된 아성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전조는 2012년 노벨 경제학상을 탄 하버드 경제학과 앨빈 로스 교수가 이듬해 스탠포드로 옮기면서 감지됐다. 이어 신진 경제학자들 중 기대주로 꼽히는 하버드 라즈 체티와 시카고 매튜 겐츠코프 교수가 스탠포드로 둥지를 이전하면서 경제학계가 들썩이고 있다.
체티와 갠츠코프는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낸 40세 미만 경제학자들에게 주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John Bates Clark Medal) 2013년, 2014년 수상자다. 미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이 메달은 1969년 처음 시작됐는데 첫 수상자는 폴 사무엘슨이었다. 그리고 직후 수상자 17명 중 11명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MIT를 거쳐 하버드에 몸을 담고 있던 2007년 수상자 수잔 애티도 지금은 스탠포드에 와 있다.
라즈 체티 인터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1/10/2014011001767.html
덕분에 현재 교수진 중 2000년 이후 이 클라크 메달 수상자가 가장 많이 포진한 학교는 MIT(4명→3명)에서 스탠포드(1명→4명)로 바뀌었다. 해석하자면 앞으로 스탠포드에서 더 많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탄생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스탠포드가 최고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연봉과 자유로운 연구 환경 등 물량 공세를 펴는 것도 스카우트 성공 요인 중 하나겠지만 더 짜릿한 건 “미래가 만들어지는 현장 가까이에 있고 싶다”는 이 학자들 호기심이다. 실리콘밸리를 지척에 두고 있는 스탠포드의 지리적 여건이 이들을 동부에서 서부로 건너오게 한 중요한 동기였다는 것이다.
여기에 경제학도 이젠 다른 학문, 예를 들어 컴퓨터 공학 등 새로운 분야와 다양한 접목을 시도하면서 풍부하게 발전하고 있는데, 스탠포드는 이런 학제간 연구를 장려할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우수한 학자들을 대거 확보하고 있어 효과적인 연구를 진행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판단이 한 몫 하기도 했다. 물론 동부와 비교하면 더 없이 자애로운 캘리포니아 날씨도 무시할 순 없는 변수다.
아직 성패를 점치기엔 이르다. 여전히 동부 학자들은 “스탠포드 경제학과는 학풍이란 게 없다”면서 짐짓 무시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경제학과 위계 질서를 흔드는 이런 스탠포드의 노력은 향후 경제학계 흐름 뿐 아니라 경제 관련 주요 정책기구 인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학계 뿐 아니라 경제계도 주목하고 있다.
참조 : 뉴욕타임스 기사 How Stanford Took On the Giants of Economics
http://www.nytimes.com/2015/09/13/upshot/how-stanford-took-on-the-giants-of-economics.html?_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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