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기사 때문에 취재원이 자살했다면

폴 뉴먼과 샐리 필드가 열연한 시드니 폴락 감독 1981년 영화 <악의 없음(absence of malice)>은 의도적으로 불순한 정보를 흘린 검찰과 이를 그대로 믿고 받아쓴 기자, 그리고 이 기사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시달리는 주인공이 얽히고 설킨 복수극이다.(한국에선 <선택>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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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암시하듯 단지 언론이 단지 <악의 없음>만으로는 잘못된 기사에 대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는 뉘앙스를 깔고 있다. 기자가 지켜야할 취재 원칙에 대해 한번쯤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이애미 스탠다드 신문 기자 메건(샐리 필드)이 주인공 갤러거(폴 뉴먼) 여자친구 테레사를 만나 후속 취재를 하는 부분이다. 갤러거는 메건이 검찰이 흘려준 정보를 듣고 쓴 기사 때문에 살인 용의자로 몰리게 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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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는 비보도를 전제로 살인 사건이 벌어지던 날 사실 갤러거가 자기 낙태 수술을 위해 병원에 동행했다면서 결백을 주장한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테레사는 이런 치부가 외부로 알려지길 원치 않았지만 갤러거를 구하기 위해 조심스레 비밀을 털어놓는다. 보도는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그런데 메건은 약속을 깨고 이 내용을 다음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싣는다. 신문을 보고 경악한 테레사는 배신감과 수치심으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소식을 접한 메건이 충격을 받고 상심에 빠져 있자 신문사 편집장이 다가와 위로한다.

<몇년 전 포드 대통령 암살 저격 시도를 막은 해병 영웅 올리버 시플 기억 나나?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나중에 시플이 동성애자라는 걸 알게 됐고, 그게 그 사건과 상관 없긴 하지만 뉴스라고 판단해 보도했지. 그런 게 언론이야.>

올리버 시플 사례는 1975년 실제 있었던 일이다. 시플은 자신 성 정체성을 동의 없이 보도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 뒤이어 같은 내용을 게재한 언론들을 상대로 사생활 침해 등을 들어 1500만달러 규모 손해 배상 소송을 벌였지만 패소했다. 그리고 1989년 4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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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메건이 테레사를 일부러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기사를 쓴 건 분명 아닐테다. 말하자면 악의(malice)는 없었던(absence) 셈이다. 갤러거 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상황이 꼬이면서 무고한 사람들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고 말았다.

애초에 검찰이 흘린 정보를 철저하게 확인하지 않고 기사를 쓰는 바람에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에 메건에게 책임이 없다곤 보긴 어렵다. 더구나 그 다음에도 특종 욕심에 비보도 요청을 무시하고 멋대로 기사화한 행위는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과연 공익에 부합하는 내용이었나. 한 인간에게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주면서까지 기사를 써서 사실을 밝혀야 하는 상황이었나.

과연 기자는 어디까지 보도하고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하는가. 결국 그 기준은 자기 양심의 소리를 계속 주의깊게 들으면서 고민해나갈 수 밖는 문제다. 정답은 없다.

폴 엘뤼아르와 김현, U2를 좋아하고 저널리즘에 대해 성찰하는 자세를 유지하려 합니다. 사회학자가 되려다 어쩌다 기자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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