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두려움을 버려야 산다 :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

“지금 저널리즘이 실패하고 있다면 그건 두려움 때문이다. 외부 비판이 두려워 기사를 쓸 때 스스로 검열하고, 이 기사를 쓰면 보수(또는 진보)로 낙인찍히진 않을까, 광고주는 괜찮을까, 권력자를 잘못 건드리면 보복받진 않을까…걱정한다. 하지만 저널리스트는 나중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영화 ‘스포트라이트’ 실제 주인공 마틴 배론(62) 전 보스턴글로브 편집국장(현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에게 ‘저널리즘의 위기’에 대한 해법을 묻자 내린 진단이다.

‘스포트라이트’는 미 신문 보스턴글로브 탐사보도팀이 2001년 가톨릭 교회 사제들 대규모 아동 성추행 파문을 끈질기게 추적보도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올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수상 가능성은 538 분석에 따르면 21%로 ‘The Revenant’에 간발의 차로 뒤진 2위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작품상을 탔다. 이변이라는 평가다.)

당시 이 보도로 보스턴 대교구 추기경이 물러나고 교황청까지 나서서 해명해야 했으며, 기자들은 퓰리처상을 받았다.(나중에 더 알고보니 이는 전 세계 가톨릭 교회가 다 골치를 썩는 문제였다.)

지난 주 미 펜실베이니아주 리하이(Lehigh)대 저널리즘 학과가 주최한 특별시사회에서 그를 만났다. 리하이대는 배론 모교다. 그는 학부에선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경영대학원(MBA)을 마쳤다.(혹시 기자 안되면 취직하는데 MBA 학위가 도움이 될까 해서 그랬다고)

실제 모습은 영화에서 그를 연기한 배우 리브 슈라이버(‘엑스맨 탄생 : 울버린’에서 세이버투스로 나오며 나오미 와츠 남편이기도 하다)처럼 덥수룩하고 목소리는 묵직한 저음이었다. 언론계에서 ‘사상 최고 편집국장’ ‘환상적인 에디터’ ‘저널리즘의 화신’이란 찬사를 받지만 “사건을 따라가 기사를 발굴하는 직업윤리에 충실하려는 것일 뿐, 무슨 영웅이 아니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보도 이후)왜 거대한 가톨릭 교회와 싸우기로 결심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결심을 한 적이 없다”며 “그냥 이야기가 있기에 자세히 취재해보자고 한 것뿐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파고드는 게 원래 기자가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배론은 마이애미헤럴드에 있다가 보스턴글로브 편집국장으로 옮긴 첫날, 가톨릭 사제 성추행 사건 취재 지시를 내린다. 원래 사제 1명이 성추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는데 “뭔가 더 있는 것 같으니 자세히 파헤쳐보자”면서 탐사보도팀을 가동한 것. 탐사보도팀 이름이 ‘스포트라이트’다. (그는 1979년 LA타임스에서 기자생활을 시작, 1996년까지 있었고, 그 뒤 1999년까지 뉴욕타임스, 2000~2001년 마이애미 헤럴드, 2001~2012년 보스턴글로브, 2012년 말 이후는 워싱턴포스트.)

그 결과, 보스턴 내에서만 90여명 사제가 성추행을 일삼았고, 대교구에선 이를 알고도 은폐했을 뿐 아니라 해당 사제들을 계속 봉직시켰다는 새로운 실체가 밝혀졌다. 그는 “그저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는 감이 들었다”면서 “그렇게 큰 사건으로 전개될지는 몰랐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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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보스턴에서 열린 영화 ‘스포트라이트’ 시사회장에 나타난 배론 /AP사진

기자들이 “성추행 사제는 1명이 아니라 90명”이라는 특종 취재 결과물을 들고오자 배론은 “사제 몇 명이 성추행을 했느냐도 중요하지만, 가톨릭 내부에서 이를 어디까지 알고 있었고 어떻게 대처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개인이 아닌 시스템을 주시하자”면서 기사화를 유보하고 추가 취재를 당부한다. 그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로 접근할 때 진실이 더 잘 보이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보스턴 주민 중 가톨릭 신자는 44%. 개신교 등 다른 종교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배론은 종교가 없고 유대인이며 보스턴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처음엔 당연히 평화로운 마을을 괴롭히는 외지인 취급을 받았다.) 이 때문에 기자들은 “지역 분위기를 해친다” “일부 사제 비행(非行)을 갖고 가톨릭 전체를 우습게 만든다”는 비난과 압력을 견뎌야 했다.

보스턴글로브가 관련 후속 기사를 600여건이나 쏟아내자 “너무 심하다”는 불평도 쇄도했다. 매리 앤 글렌든 전 바티칸 주재 미국 대사는 “일부 사제들 비행을 마치 전체 문제처럼 과장한 보스턴 글로브에 퓰리처상을 준 건 오사마 빈 라덴에게 평화상을 준 것과 다름없다”고 격분하기까지 했다.(교황청을 옹호해야 하는 처지를 이해한다)

배론은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줄 미처 몰랐다. 그러나 영향력이 큰 조직일수록 더 많은 기사가 나와야 한다. 그게 기자의 사명이다. 언론은 압력이 들어온다고 굴복하는 조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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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끝난 다음 기념사진을 찍었다.

배론은 2012년 말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터넷기업 아마존 제프 베조스 회장이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하기 직전. 그 뒤 배론은 ‘디지털 퍼스트’ 전략으로 새롭게 변신하는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을 이끌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인터넷 사이트는 지난해 10월 순 방문자 수 6690만명을 기록, 사상 처음으로 뉴욕타임스(6580만명)를 제쳤다. 2년 전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뉴욕타임스가 넋놓고 있을 리 없다. 올 1월 다시 역전했다.)

그는 “이제는 뉴욕타임스뿐 아니라 버즈피드(Buzzfeed),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모두 경쟁상대”라면서 “디지털시대 가장 중요한 원칙은 종전 신문제작 방식을 고수하면서 소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뉴스 소비방식이 달라진 만큼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전달하는 방식을 더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언론은 고전 중이다. 지난 30년 간 신문사 400여곳이 문을 닫았고 기자들은 1990년 이후 40%가 직장을 잃었다. 배론은 “나는 낙천주의자”라면서 “신문이 사라질거라는 예측이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아직 신문은 건재하다. 다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탄력적으로 다양하게 계속 실험해야 한다”고 전했다.

진지한 무표정으로 답변을 이어가던 그는 “일하지 않는 시간엔 주로 뭘 하느냐”고 묻자 크게 웃으며 “알겠지만 사실 완전히 일하지 않는 시간이란 없다. 24시간 1주일 내내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물론 쉬는 날 영화도 보고 친구와 저녁도 먹고 산악자전거도 타지만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했다. “휴가 가서도 휴대전화를 항상 켜놓는가”라고 재차 묻자 이렇게 답했다. “물론이다. 아, 가끔 끄긴 한다. 비행기 탈 때.”

덧붙여 : 마이애미헤럴드에서 배론이 벌인 인상적 업적은 2000년 미 대선 때 플로리다주 재검표 논란이 일자 회사 비용(80만달러쯤)을 들여 직접 재검표한 일이다. 당시 부시와 고어가 플로리다주 개표 오류 여부를 놓고 대립했는데 법원이 부시 손, 그러니까 재검표 불가를 선언하면서 부시 당선이 확정된 바 있다. 당시 플로리다 주지사는 젭 부시. 부시 대통령 친동생이었다. 그래서 동생이 개표 부정을 막아주는 바람에 형이 당선될 수 있었다는 음모론이 범람했다. 그런데 마이애미헤럴드가 직접 두 번이나 해봤는데 두 번 다 부시 승리였다고 한다.

폴 엘뤼아르와 김현, U2를 좋아하고 저널리즘에 대해 성찰하는 자세를 유지하려 합니다. 사회학자가 되려다 어쩌다 기자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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