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받지 못할 종자.
내가이승호씨를처음만난것은1990년봄바다위에서였다.
그날새벽인천내항을떠난낚시배는20명이채안되는낚시꾼들을태우고승봉도앞바다까지나갔다.
그곳은씨알이굵은노래미가많이잡히는곳이었지만바닥이거칠고이미4물에접어든조류는
꽤나빠르게흐르고있었다.
내옆에서낚시하는,나보다연배가높아보이는분이이승호씨였는데계속낚시틀이바닥에걸리고
고기도많이잡지못하고있었다.
그러나낚시대,릴,소도구들과아이스박스는가장좋은외제들이었고미끼를바꿔끼는솜씨는그가
상당한조력(釣力)을가지고있다는것을알게해줬다.

그분을처음만났던날,가장인상깊었던점은낚시가끝나고배가인천항을향했을때그는자기의
가방에서쓰레기봉투를꺼내자기주변의모든쓰레기를전부주워담은후다시그것을자기가방에
넣는일이었다.
그는끝까지,건강이나빠져낚시를더이상못할때까지배의쓰레기치우는일을멈추지않았다.
[바다를오염시키면안된다]는게그분의설명이었다.
그분의태도는언제나단정했고남에게폐를끼치는일은전혀없을정도로자기관리가철저했다.

그이후자주배에서만나면서수인사를나누었고그가세무공무원으로은퇴했다는사실도알게되었다.
공무원시절,술도가(都家)에나가막빚어낸약주몇잔시음해본게유일한민폐였다고말할정도로
청렴한분이었는데그건그가상당한유산을상속받은부자였기때문이었다.
젊어서부터워낙낚시를좋아해한때는어선한척을구입해고용선장을두고시간이날때마다바다에
나갔었다고하니낚시광인것은분명했다.
그후우리는마음에맞는네분을더모아여섯명이[팀]을만들었고낚시하는방법도바꿨다.
일단인천항에서덕적도까지나간후,그곳에서현지어선을빌려타고2박3일의원정낚시를했으며
팀중세분이돌아가실때까지10여년을그렇게함께낚시했었다.

이승호씨와친해지고서로가깊이있는얘기도나누게됐을때,나는그분에게하나의제안을했다.
이승호씨는나보다훨씬조력이오래됐지만낚시하는방법에문제가있어고기가잘잡히지
않으니낚시틀을한번바꿔보라고하면서내가만들어쓰는틀을하나드렸다.
그분의문제는낚시바늘4개를매는틀이50미터이상내려가는물속에서목줄들이엉키기때문에
구조적으로조황(釣況)이나쁠수밖에없었다.
그에비해내틀은바늘은2개지만편대를사용하기때문에목줄이엉키지않고특히물속에들어가면
고기눈에보이지않는독일제줄을쓰기때문에언제나조황이상대적으로좋았다.
반응은즉각나타나기시작했다.
그날,그분은자기의낚시생애에서가장많은고기를잡았으며씨알도굵은것들이었기에얼굴이
상기될정도로기뻐했고,그만큼나와는더친해졌다.
그분은내틀을하나더달라고해서가지고갔으며자(尺)로길이까지똑같게많은틀을만들어사용
했다.그이후그의낚시실력은전혀다른것이되었다.

이승호씨는예의바른분이다.
아무리친한사이라해도말을골라썼으며인사가분명했다.
그는그렇게큰부자였지만전혀그런내색없이무엇이든나누어썼고우리들모르게큰지출은
도맡아했다.
우리가처음팀을만들어출조(出釣)했을때낚시가게소유의배를몰던김선장은실력도좋았고
성실했으며특히우리팀에게는더신경을써주곤했다.
김선장이독립하기위해중고목선을구입하려고애를태우고있을때이승호씨의주선으로우리여섯은
공동출자로배값을김선장에게무이자로차용해줬으며,몇년후김선장이2억원이넘는철선을지을
때도1억원을무이자로차용해준분이이승호씨였다.
그분은사람을알아보고그사람을키울줄알았다.
(이승호씨가간암으로돌아가셨을때그의유언대로김선장은자기배에화장한그분의유해를모시고
그분이즐겨찾던바다에나가뿌려드렸다.그날김선장은많이울었다.)

나는지금도이승호씨를생각하면마음이아파온다.
올바른정신,단정한태도,남을배려하는마음,자기과시가없는겸손,진정으로나라를사랑하는마음,
힘든투병을하면서도죽음을받아들일줄아는정신력은그가정말보통사람이아니라는것을알게
해줬다.
내생애를통해거의유일하게[배울점이많은선배]였다.
그이승호씨가절대로양보하지않는,줄기찬자기주장이하나있다.
[이민족은씨받지못할종자다.]
나는그가어떤생각으로그런말을하는지물어보지않았고설명을들은일도없다.
그러나그가그말을할때마다지어보이던[슬픈표정]만은지금도기억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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