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가 없는집.
모든종교는,
그것이고등종교라해도새로운지역에전파되면그곳풍토의영향을받게된다.
즉그땅에이미뿌리내리고있는문화의영향을받지않을수가없다.
학문적으로종교도하나의문화적현상이기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검은예수’가나타나는게그하나의예이며라틴아메리카의경우
성모숭배는그형태에서부터기독교적이라고하기가어렵다.
이미그들이가지고있던민속신앙에접목된변형이나타난것이다.
미국의흑인교회들은온몸을흔드는음악에맞추어그들특유의형식을통해대단히
감성적인예배를드린다.
또한가지중요한변수는기독교를받아들이는사람들의민족성이다.
기소르망(GuySorman)은미국의복음주의신앙을양키버전(yankeeversion)
이라고부른다.
거기에는유럽의정통신앙이미국양키들을통해천박하게변질됐다는뉘앙스가있다.
미국산복음성가들을가만히들어보면수긍이가는얘기다.

지금까지의기독교역사를공부해보면,
대개의경우기독교는한민족의민족성에대해서는큰영향력을가지지못했던것을
알수있다.
그것이선과악의문제가아니라전통의문제이기때문일것이며오히려민족특유의
정서나생활양식에동화된경우가더많았다.
한국의샤마니즘이기복신앙을만들어낸것도그하나의사례라고할수있다.
그것은종교를받아들이는것이국가나체제가아니라감성과이성을가지고있는,
그땅에살고있는사람-인간이기때문이다.
말하자면외래종교에대해인격적으로반응하는사람들에의해자리매김이되고있는
것이다.

자타가공인하는대로우리의특유한민족성중하나가외화내빈이며여기에빨리빨리
의조급증이더해진다.
반드시나쁜것만이아닌,긍정적인면도있지만이러한민족성과정서는신앙생활
에서는부정적인요인으로작용할개연성이더크다.
우리는보이는부분에대해서는화려할정도로치장을하지만보이지않는부분에
대해서는거의신경을쓰지않는다.
철골로구조물을만드는경우밖에서보이는부분은페인팅을하지만그뒷면,즉
보이지않는부분은그냥둔다.
공사시방서에페인팅을하도록되어있어도안한다.
결국산화와부식은거기에서시작,구조물의수명을단축하고안전사고를이르킨다.
집을지어도땅속에묻히는,보이지않는기초공사가부실해새집이금이가고기우는
경우도같은이유때문이다.
빨리빨리는결과만중요하고거기까지가는모든과정들을소홀히하는정서다.
과정이빈약하면속성으로이루어진결과들은오래가지못한다.
빨리만든고속도로가계속땜질하는게그것이다.
기초는그렇게중요한것이고보이는부분을떠받치고있는것은언제나보이지않는
부분인기초다.
바로여기에약점을가지고있다는것은우리들의아킬레스건이아닐수없다.

모두가아는대로한국의기독교가우리사회전반에서긍정적인기능을하는경우는
찾아보기어렵다.
대개의경우’당신들의천국’에서자기들끼리만놀기때문이다.
그울타리밖으로넘어나오는기능이없다.
이러한부정적인현상은시간이지나면서그정도를더해가고있으며이제는새로운
‘게토’가형성되고있다.
그이유가무엇일까.
마태8:24-27절(누가6:47-49)에는주께서주시는설명이있다.
‘주의말씀을듣고도실행하지않기때문이다.’
신앙의실천이없기때문이라는지적이시다.
행함이없는,예배당안에서만의믿음,
자기의유익만을위해기복만하는이기적인믿음,
이웃이없는믿음,
세상의것을탐하면서다른한손으로는구원을잡으려는이중성,
성경을읽지않는신앙내용의무지,
아주쉽게정리하면,
신앙생활의기초가없고,
신앙이행하는믿음으로성장하는과정들이없기때문이다.
심지어는어제믿기시작한사람이오늘방언하는것을은혜스럽다고한다.

행함이있는믿음은그기초가튼튼한반석위에지은집과같다고했다.
큰비가내려물이밀려오고바람이몰아쳐도기초가튼튼하기때문에무너지지
않는다고했다.
그러나기초없이모래위에지은집은여지없이무너지고만다.
기초-반석위에지은집이아니기때문이다.
기초는뿌리이며그것은신앙의내용이다.
예배당이라는건물은보이지만그그릇이담고있는믿음의내용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기때문에없는줄알고소홀히했고보이는것에집중하다보니더중요한
보이지않는내용을잃어버린것이지금의한국교회다.
이미상당수교회들이’세상의풍조’라는물결과바람에무너진지오래다.
‘내형제여러분,
어떤사람이믿음이있다고말하면서그것을행동으로나타내지못한다면무슨소용이
있겠읍니까.
그런믿음이그사람을구원할수있겠읍니까.
믿음에행동이따르지않으면그런믿음은죽은것입니다.’야고보2:14-17.공동.
이말씀을기준한다면살아남을수있는교회는얼마나될까.
구원받는크리스챤은또얼마나될까.

믿음이행동으로연결되기위해서는신앙의감성적인체험이이성을통해내면화
(內面化)돼야가능하다.
분명한믿음이’자기확신’이되어다시생활철학이되어야하기때문이다.
삶의목표가분명하고가치관과인생관이확립된인간은그것을몸으로실천하면서
살게된다.
그러한실천이곧행하는믿음이된다.
그런신앙생활은나,가족,이웃,사회에대해긍정적으로역할하는기능이다.
지금거개의크리스챤들에게는이기능이없다.
기초가약하거나없기때문에그렇다.
‘예수를잘못믿으면안믿느니만못하다.’는얘기가그것이다.
잘못된신앙,그걸고치는약은없다.
죽어야낫는병이그병이다.
때문에그병에걸리면끝나는것이다.

성경이밝히말씀하시는대로우리의구원은실천하는믿음,행하는믿음에서온다.
우선이원칙을제대로아는것이제일중요하다.
그다음이실천의내용이다.
그것은이미성경안에다주어져있다.
그래서대답은하나다.
성경을읽고,공부하고,제대로깨닫는일이최우선이다.
다른것은모두가부차적인것들이다.
때문에거기에매달려본질적인것을잃어버리면안된다.
성경은,
결코그누가읽어주는책이아니다.
자기가자기눈으로읽고자기귀로듣고자기가슴으로느끼고자기마음으로
깨달아야한다.
한인간이진정으로성경을읽을때’보혜사’라는최고의교사가옆에서계신다.
그분이다알게해주신다.
셩경에는어려운얘기가하나도없다.
그책은처음부터세상모든사람들에게주어진것이기때문이다.
믿음의내용인성경을모르는것은그책이어려워서가아니라읽지않기때문이다.
말씀이배제된,
각종이벤트로가득찬사상누각(砂上樓閣)은결코우리를구원하지못한다.
모래위에지은집이기때문이며잠간보이다가없어지는땅위의집이기때문이다.

이제그모래위에지은집을떠날때가됐다.
떠나지않고는구원받을수없기때문이다.
‘너는베드로라,
내가이반석위에내교회를세우리니음부의권세가이기지못하리라.’
마태16:18.개역.
그반석이무엇인가.
예수를그리스도로고백한믿음이다.
주께서는그믿음위에,그신앙적기초위에자신의교회를세우겠다고하셨다.
때문에기초가없는교회는예수그리스도의몸된교회가아니다.
그곳을떠나야하는이유가거기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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