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절, 개와 돼지.
우리가가지고있는성경,그중에서도신약은주께서하신말씀이기록된’복음서’가
포함되어있기때문에더소중한것이사실이다.
그러나한편으로는소중하기때문에복음서가가지고있는서지학적문제점까지
소중한것이되어서는안된다.
오히려문제점들을풀어이를바로잡았을때그의미와내용은더선명해질수있다.
다른한가지는신약성경이2천여년전에기록된과학이전의책이라는사실을이해하고
인정해야한다.
신약성경을제대로읽기위해서는그책이쓰여진시대적배경을아는것이필수적이다.
로마가팔레스틴을식민하고있을때의여러가지환경을이해하는것이그것이다.
때문에’문화사’에대한공부는성경을바로읽을수있는하나의열쇠가된다.

성경구절중,
지금그해석이어려운부분을’난해절(難解節)’이라고한다.
해석하기어려운가장큰이유가성경본문이가지는문화사적배경을모르기때문이다.
안다고해도그건부분적이다.
이제난해절중하나를예시해보자.
‘거룩한것을개에게주지말고진주를돼지에게던지지말라.
그것들이발로그것을짓밟고돌아서서너희를물어뜯을지도모른다.’마태7:6.공동.
가장먼저생각해야할것은,
이본문은독자적인격언으로유대인사회에서전해내려온것일가능성이크다는점이다.
따라서이격언이성경에삽입됐다는것은반드시그렇게해야할어떤상황이있었다는
것을짐작할수있다.
지금으로서는그게어떤상황이었는지전혀알수가없다.

다른하나는,
그때의관습법을알아야한다.
대표적인것이’노예제도’다.
같은인간인데주인과노예가있었다는것은지금으로서는전혀수용할수없는관습이다.
또하나는,
유일신종교를가지고있는유대인들이우상들을숭배하는이방인(비유대인)에대해
가진무서울정도의배타성이다.
그들은그이방인들을드러내놓고개,돼지라고불렀으며심지어주께서도딸의병을
고쳐줄것을간청하는이방인여인에게’개-강아지’라는용어를쓰고있다.

개와돼지는이방이들에대한유비적이고극단적인표현이다.
우상들을섬기고하나님을모르는,
고귀하고성스러운것을모르는인간부류라는의미다.
그런부류들은진리를받아들일준비가전혀되어있지않으며알려고도하지않는다.
바로그런부류로부터하나님의말씀을소중하게지키라는암묵적지시가본문안에
내재돼있다.
여기에비해거룩한것과진주는신성(神聖)한것과하나님나라에대한상징이다.
대단히선택적인표현이긴하지만본문안에는거룩한것과진주를받을만한사람들이
따로있다는의미도함축돼있다.
말하자면개나돼지로부터그것들을지켜내는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거룩한것과진주가개나돼지에게주어졌을때어떤일이일어났는가.
발로그것을짓밟았다고했다.
짓밟히는것은훼손되는것이고본질이파괴되는것이다.
그것을막기위해,그런끔찍한일이일어나지않기위해거룩한것과진주는개나돼지
에게주어서는안된다.
그러나본문은여기서끝나지않고한걸음더나아간다.
‘돌아서서너희를묻어뜯을지도모른다.’고했다.
어쩌면이표현속에본문의해답이들어있을수있다.
‘적대세력’의존재가드러나기때문이다.
초대교회가받은공격과위협은지금의우리가생각하는것보다더심각한것이었을
것이다.
물어뜯는다는적극적이고살벌한표현이그것이다.
이격언이복음서에삽입된가장결정적인이유가그것일것이다.

성경이’살아있는말씀’인것은,
모든시대에’해석’될수있는깊이와넓이때문이다.
2천여년전에쓰여진글이지만,
그표현이아닌의미에서는바로오늘의말씀이다.
난해절이라해도해석이가능한것이그이유이며본문역시예외는아니다.
거룩한것과진주는성(聖)스러운것이다.
이때성(聖)은속(俗)에대한반대개념이다.
오늘날성을대표하고상징하는것이종교다.
기독교역시고등종교이며앞에인용한본문은기독교의경전이다.
한가지분명한것은모든경전은아무차별없이모두에게주어졌다는사실이다.
종교는인간을차별하지않기때문이다.
똑같이하나님의말씀도차별없이모든사람들에게주어졌다.
그러나,
이미밝힌대로그것이짓밟혔다는것은짓밟는부류가있다는뜻이다.
말씀은받았으나그본질과의미를왜곡하거나훼손,변질시키는것이짓밟는것이다.
그들이현대적의미의개와돼지가된다.
그들이시작한짓밟기는마침내교회의성스러움을훼손하고변질시키는데까지나아
갔다.
그들이바로광신적인이단과사이비들이다.

지금한국의개신교도들은미신을섬기던사람들의후예들이다.
본래한국의재래종교가샤머니즘이기때문이다.
그들은자기들의미신적신앙으로기독교를변질시키고있으며그대표적인행태가
‘예수무당’이다.
심령대부흥회가휩쓸고지나간자리에쓰레게처럼널려있는게바로그것들이다.
일상에없는거짓믿음의뿌리가거기에있다.
성(聖)을상실한채속(俗)이된것이그것때문이며보이는물질을쫓는기복신앙이
기존의모든기독교적인것들을잠식해가고있다.
거룩한것과진주는그들의발에짓밟혔으며이제그들은돌아서서교회를물어뜯고있다.

본문이가지고있는내용중에는경고의의미가짙게배어있다.
거룩한것,진주로표현된기독교의본질을방어하라는것이그뜻이다.
무엇보다도이경고적인격언이복음서에삽입되게된가장큰동기가그것이었을것이다.
아무리소중한것이라도잘지키고간수하지않으면잃게된다.
오직세속적인교세의확장과개인의영달을위한목회성공을위해,
보이는크기를더불리기위해못한짓이없는게지금의개신교회들이다.
창문을열어놓으면시원한바람과함께파리와모기도들어온다.
방충망을달지못했기때문이다.
그방충망이바로오늘의경고적본문이다.
교회의물리적크기와구원의역사는정비례하는법이없었다.
교회사는오히려더많은반비례를기록하고있을뿐이다.
교회는끝까지그신성성(神聖性)으로교회이어야한다.
그거룩한곳에개나돼지가어슬렁거린다면그건단지속(俗)의마당일뿐이다.

신약성경을자세히분석해서읽어보면,
초대교회는유대주의,이교주의,세속권력에대한복음의변증활동(호교론)을이미
시작했었으며초대교부시대에는아리스티테스,유스티누스등이반기독교적비난에
대해변증서를제출하고있으며,
중세이슬람의도전에대해서는토마스아퀴나스가성공적으로교회를변증했고이는
수세기동안기독교의지배적인힘이되었다.
18세기들어이신론자(理神論者)들과자연주의자들의공격에대해서는성공회의
감독인버틀러와파스칼등이기독교를옹호했다.
19,20세기는자유주의신학의공격과보수주의신앙의방어라는독특한양상이되었다.
칼바르트는신앙이란인간의이성이나철학과는아무런관련이없다는근거를제시,
어떤종류의변증학도부정했다.
기독교를공격하는사상적형태는시대에따라변하는것임으로교회의호교론적
입장도계속진화할수밖에없는게역사의증언이다.

언제어디서나최선의방어는자기정체성(自己正體性)을지키는일이다.
본질을바로잡고있으면그어떤비본질적인것도극복할수있다.
한편개와돼지에대해서는똑같이개와돼지의방법을쓰면안된다.
그건같은수준에가있어야하기때문이다.
가장무섭고제어하기어려운적이내부의적이다.
차라리밖에서그정체를드러낸적이라면대항하기쉽지만내부의적은같은모습으로
위장하기때문에더어렵다.
교회를변질시키는가장큰세력은교회안에있다.
그리고그세력이커지면결국은가짜가진짜의자리를차지하는,악화가양화를구축
하는법칙대로진행된다.
한국개신교의진정한위기가그것이다.
‘거룩한것을개에게주지말고진주를돼지에게던지지말라.’
이보다더분명한경고가달리또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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