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의 탄원.
그인용빈도(引用瀕度)로만말한다면소돔과고모라는예루살렘보다앞선다.
우리가아는대로두성읍은그창궐한죄악때문에하늘에서유황과불이쏟아져내린,
처참한결말로소멸됐다.
‘소돔-sodom’의뜻은’에워싸인장소’이며사해남부에위치한평지의성읍이었다.
지금그유적지는물에잠긴것으로추정된다.
아브라함의조카롯이살았던곳이기도하다.
‘고모라-gomorrah’의뜻은’침몰’,
사해남쪽끝에있는싯딤골짜기평원에있던성읍중하나다.
이성읍들의이름은도덕적퇴폐에대해경고적인의미를가지며그런뜻에서그
인용빈도가지금도높다.

창세기18장20절의본문은,
소돔과고모라에대한부르짖음이크고그죄악이심히중하다고했다.
하나님에게까지들렸다는히브리과장법은죄와악의크기가하나님의간섭을부르는
수준에이르렀다는의미이며,
21절의’내가내려가서그행한것을확인하겠다’는말씀은하나님의심판하심이
공정하다는것을설명하는대목이다.
즉죄와악에대해어긋남이없이벌하겠다는뜻이다.
이부분이중요한것은소돔과고모라의죄악이소문이아니라사실이라는점과그게
확인된이상하나님의심판을피할수없다는점이다.

아브라함(Abraham)은,
‘많은무리의아비’라는뜻이다.
그는히브리인의조상이며데라의아들로태어나이복누이사라와결혼했고
고향인수메르의우르(Ur)를떠나하나님이인도하시는가나안으로갔다.
그곳에서하나님의돌보심으로가축이늘어나고많은종을거느리게되었다.
아내사라의권고로애굽여종하갈을취해아랍인의조상인이스마엘을낳았고
100세에약속의아들이삭을얻었다.
아브라함을믿음의조상이라고하는것은그시대사람들의신앙과는달리
전능하신하나님,창조주하나님,세상을심판하시는공의의하나님을믿고그평생을
하나님의뜻에따르는신앙생활을했기때문이다.

창세기18장16절이하에서,
아브라함을사랑하시는하나님께서는숨기지않고소돔과고모라에대한심판을설명
하신다.
자세한경위를설명들은아브라함은입을열어저유명한탄원을시작한다.
탄원(嘆願)은사정을말하고도와줄것을간절히바라는것이다.
23절에서33절까지의하나님과아브라함의대화는거대한서사시를읽는것처럼
그내용이진지하고아름답다.
자기를낮추는아브라함의표현들은정말싯적(詩的)이기까지하다.

그는우선,
공의로우신하나님이의인과악인을함께멸하시는것이부당하다는말을시작으로
‘주께서이같이하사의인을악인과함께죽이심은불가하오며의인과악인을균등히
하심도불가하나이다.’하면서탄원한다.
그리고그성중에의인50명이있다면용서하실수있는가하고질문한다.
하나님께서는의인50명이있다면용서하겠다고답변하셨으며,이와같은아브라함의
탄원은6번에걸쳐10명까지로줄어들었다.
소돔과고모라가결국은소나기같이퍼붓는유황불에멸절한것은아브라함이탄원한
의인이하나도없었다는뜻이다.

의인(義人)은,
개역에서는의인,
공동번역에서는죄없는사람,
현대인의성경에서는의로운사람,
NIV에서는righteous로번역하고있다.
옳고,정의롭고,정직하고,공정한사람이라는뜻이다.
그러나,
이의인은하나님앞에서의의인이기때문에인간이만든실정법(實定法-인간에의해
제정되어사회에서현실적으로시행되고있는성문법)이정하는기준,그이상이어야
된다.
이웃을마음속으로미워하는것이나,
개인이가지는극단적인이기심,그리고지나친탐욕은실벙법으로는처벌할수없는
범주다.
따라서실정법이처벌할수없는인간악을단죄하는것이종교다.
좁혀서말한다면인간의도덕성이여기에해당될것이다.
때문에도덕적존재는실정법이아니라하나님앞에서의문제다.
말하자면아브라함의결사적인탄원에도불구하고소돔과고모라가멸망한것은
그곳에도덕적존재가전무할정도의타락과부패,그리고악이만연해있었다는증거다.

도덕적해이(道德的解弛)라는말이있다.
인간이반드시가지고있어야할도덕성이풀어져느슨해졌다는뜻이다.
도덕적해이로나타나는일차적인현상이본능에따라동물적이되는것이다.
왜냐하면도덕적이된다는것은본능의의도적인억제이며교육으로일궈낸인간성의
함양이기때문이다.
지금우리사회가겪고있는모든혼란과무질서,이기적인온갖현상들은도덕적해이가
가장큰원인이다.
도덕성이해이되면약육강식(弱肉强食)현상이나타나며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가
그수단으로타락하게된다.
것잡을수없는혼란스러운사회가되는것이다.

한사회가도덕적해이현상이심각하게나타나는것은종교의순기능이죽었기때문이다.
실정법수준에도미치지못하는종교의빈약하고변질된내용이그원인이다.
그가장큰이유는,
사악하고부족한인간들에의해종교가그본래의것이아닌다른것을추구했기때문이다.
그결과가자기정체성(自己正體性)의상실이며이것이그대로순기능의상실로이어진
것이다.
이변질과타락은구조적인것이기때문에그만큼개선하기가어렵다.
정규신학교와함께그숫자가더많은비정규무인가신학교가양산하는
저질목회자의범람,
교인을확보하기위해서는수단과방법을가리지않는세속적경쟁,
예배형식에서까지회중에게영합하는인기주의,
크고많은것이좋다는반종교적물량주의.
인간의탐욕이만들어낸무서운기복신앙,
점차그도를더해가는기독교의미신화,
온갖이벤트로가득찬교회안의소란스러움.
교회안과밖에서그삶이달라지는교인들의이중성,
그리고,경건의상실은사실상회복이어려운내용적변질들이다.

소돔과고모라의멸망에서,
유일한생존자는롯과그가족이다.
롯은’감추어진’의뜻이며그는하란의아들이자아브라함의조카이며
모압과암몬자손의조상이기도하다.
창세기19장20절에는,
하나님께서소돔을엎으실때아브라함을생각하사롯을내어보냈다고기록하고있다.
롯의구원은,
첫째가아브라함의탄원이었을것이다.
아브라함이주장한’의인’가운데는반드시롯이포함된다고봐야한다.
조카롯에대한사랑도큰것이지만그가하나님앞에서죄인이아니라는확신이
아브라함에게있었을것이다.

다른한가지는,
하나님이보시기에롯은멸망에서제외될수있는’의로운인간’이었다는사실이다.
그것은하나님의심판은공의로운것이기때문에아무리아브라함의조카라해도
죄인이었다면구출될수없었기때문이다.
그래서롯의구출은구원의상징성이있다.
천사의말을지키지못한롯의아내가소금기둥이되었다는것은그상징성에또
하나의의미를더한다.
롯은순종했고그아내는반대였다.

소돔과고모라는성경의내용이기때문에시간과공간의제한을받지않는다.
그의미에서소돔과고모라는지금도얼마든지있으며그타락과악은본래의
그것들을훨씬뛰어넘고있다.
인간이생각해도두려울정도다.
현대의유황불은어떤것일까.
비오듯쏟아지는하늘의불은정말어떤것일까.
우리가진정올바른크리스챤이라면이문제에대해심각하게고민할줄알아야한다.

부모가자식에게내리는가장큰벌은,
‘부모자식간의연(緣)을끊는것’이다.
핏줄이남이되는무서운일이다.
교회가교회아닌것이되는것,그보다더무서운벌이어디있겠는가.
그건유황불보다더무서운재앙이다.
그것은하나님이교회를버렸다는의미다.
하나님이버린교회안에서구원받은게롯이다.
온갖인간적인약점에도불구하고하나님이용서하시고구원할만한의로움이그안에
있었기때문이다.
말하자면롯은’도덕적인존재’였던것이다.
하나님께서아브라함의탄원을들어주신것도그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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