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세계 (死後世界).
‘개똥밭에굴러도이승이좋다’라는말이있다.
이승은순수한우리말로내가지금살고있는세상을의미한다.
금생(今生),또는금세(今世)라고도한다.
고생스럽게살아도죽는것보다는낫다는비유적표현이다.
저승도순수한우리말로서죽은사람의영혼이가서산다는세계를이르는말이다.
명부(冥府),음부(陰府)라고도한다.

이승은사유(思惟)와사색(思索)이가능한철학의차원이다.
인생이무엇인가,
어디서왔다가어디로가는가.
어떻게사는것이사람답게사는길인가.
그러나저승은이미종교적인차원이다.
철학은사후세계에대해대답할수없기때문이다.
아무도죽어본사람이없기에이승에서저승에대한설명은기대할수가없다.
죽음은체험되는세계가아니기때문이다.

극락(極樂)은불교용어다.
아미타불이살고있는정토로괴로움이없는지극히안락하고자유로운세상,
인간세계에서서쪽으로10만억불토(佛土)를지난곳에있다고한다.
이에비해지옥(地獄)은현실에서악한일을한사람이죽어서간다는세계로나락
(奈落)이라고도한다.
천국(天國-하늘나라)은기독교용어로,
basileiastonouranon-kingdomofheaven이다.
하나님이통치하시는이나라는현세적이며또미래적이다.
은총과축복의나라이며천당(天堂-하늘의집)이라고도불린다.
이에대해지옥은gehenna-hell이다.
죄를지은채죽은사람이그죄를용서받지못하고영원히불타는벌을받는곳이다.

사후세계에대한종교적표현들은권선징악(勸善懲惡)적의미가아주강하다.
천당과지옥이라는구도자체가그러하며극락이나천국에대한사실적묘사가없다.
그러면서도이러한종교적표현들은사람들이죽어서가는사후세계가존재한다는점은
분명히하고있다.
인간이종교를가지는이유중하나가사후세계에대한대답을듣기위한것이며
지옥을피해천국과극락에가고싶은희구때문이기도하다.
여기에는몸은흙으로돌아가지만영혼은사멸하지않고존재한다는믿음이있기때문에
신앙을가질수있는당위가있다.

그렇다면죽는다는것은무엇인가.
주검은무엇이며그과정은어떤것인가.
적어도1960년대까지만해도인간이죽는죽음의과정을과학적으로연구하려는
시도는없었다.
죽음을섭리의하나로받아들이는관행과함께종교적으로도허용되지않았기때문
이었을것이다.
1975년미국의정신과의사인레이먼드무디는’삶이후의삶’이라는기념비적인
책을펴냈는데300만부이상팔린베스트셀러가됐다.
무디는사망선고를받으후죽음의바로문턱까지갔다가살아돌아온사람100명에
대해그들이격었던체험을연구했으며거기에는대단히유사한부분들이겹쳐있다는
사실을발견했다.

무디의책에서큰영감을받은심리학자케네스링은사고,질병,자살등으로죽음에
가까이갔던사람102명을면담하고그들의체험에는크게다섯가지요소가같은순서로
나타나는경향성이있음을알아냈다.
1980년링이발표한죽음의과정에서의다섯단계는,
평화로운감정(60%).
시신에서영혼-생명이떠나는체험(37%).
긴터널같은어두움으로들어가는기분(23%).
빛의발견(16%).
그빛을향해나아가는체험(10%).
그리고마지막단계는아름다운꽃들이가득하고황홀한음악이들려왔으며
별천지에온듯한느낌을받았다는것이다.
한편죽음의문턱까지갔다가살아돌아온사람들의변화된모습이다.
무엇보다도그들은죽음에대한공포가없었으며
내세(來世)를확신하고,
물질에대한탐욕이없어졌다.
그리고타인들에대해연민의감정을가지는것은물론자기의삶에대해감사하는
생활을하게된다는것이다.
어떤극적인체험이없이는일어날수없는변화들이다.
이들의체험이비슷한패턴을보이는것은그것이단지개인적인환각이나환상이
아님을증명하는것이기도하다.

우리가살고있는이승에는’죽어본사람’이없다.
따라서사후세계에대한정답도없다.
다른하나는인간은그게누구든반드시죽는다는사실이다.
여기에예외가없다는것은모두가알고있는현실이다.
그래서내세에대한질문은그만큼절실한것이고그대답또한절대적인의미를가질수
밖에없다.
실로종교는죽음의문제에서비롯됐다는주장은다분히철학적이지만전적으로틀린
말은아니다.
모든종교는,그것이고등종교라면죽음의의미와죽은다음의세계에대해내용적
차이는있어도나름대로의대답을가지고있다.
그래서종교이기도하다.

기독교라는종교가놀라운점은,
내세,즉천국에대한대답이가지는넓은폭때문이다.
다른어떤종교도그런대답은하지않는다.
천국에대한첨예한질문과구체적인대답은누가복음17장에있다.
20-21절을보면,
‘하나님의나라가언제오겠느냐는바리사이파사람들의질문을받으시고예수께서는
이렇게대합하셨다.
하나님의나라가오는것을눈으로볼수는없다.
또보아라여기있다,혹은저기있다고말할수도없다.
하나님의나라는바로너희가운데있다.’공동.

언제하나님의나라,천국이올것인가하는질문은구체적이고현실적인것이다.
누구나하고싶은보편적인질문이기도하다.
그리고이질문은앞으로와야하는,오고있는피안의나라에대한것이기도하다.
‘대망의천국’인것이다.
우리모두는분명히그렇게생각하고있다.
그것은또사후세계에대한종교적개념일수도있다.
질문이구체적인것인만큼답변역시구체적이다.
질문도답변도비유나은유가아닌직설법이다.
이유명한주님의답변은기독교의천국이어떤것인지를극명하게보여주는내용이다.

-하나님의나라가오는것을눈으로볼수는없다.
우선은눈으로볼수있다고생각하는바리사이파사람의기대가잘못돼있다는지적이다.
하나님의나라는그의’바실레이아’다.
바실레이아는’통치의영역’이다.
보이는로마제국이아니라그것을초월하는전인류적인통치가하나님의나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앞으로와야하는,피안의어떤것이아니라이미와있는’힘-세력’인것이다.
본래’영향력’자체는보이지않는다.
예수가이미와있는하늘나라의통치다.

-여기있다혹은저기있다고말할수도없다.
하나님의통치는시,공간적제한을받지않는다.
아브라함의하나님이또우리의하나님이시다.
여기와저기에조금씩산재해있는인간들의왕국이아닌것이다.
정말대단한답변이아닐수없다.

-하나님의나라는너희가운데있다.
hebasileiatouentoshumonestin-thekingdomofGodisinyourmidst.-TNIV.
entos-midst는장소,물건,군중의한복판,가운데를뜻하는단어다.
좁게는우리의마음속이기도하다.
풀이하자면,
하나님의나라는우리들에게,우리들사이사이,사람과사람들사이에이미와있다는
말씀이다.
내속에하나님의나라가있고내옆에있는사람속에하나님의나라가있다면우리
사이에하나님의나라가계시는것이다.
그의통치하심이우리중에나타나계신것이다.
그통치하심을알고받아들이고순종하는사람이곧하나님의자녀이며크리스챤이다.

진정한의미의크리스챤은,
이미천국에서살고있는사람들이다.
그천국을신앙생활로살아내고있는사람들이며벌써그영원한나라안에서살고있는
것이다.
현재에들어와있는미래가그것이다.
정말놀랍고도두려운말씀이아닐수없다.
크리스챤들의일상이다른사람들과그근본에서달라야하는이유도거기에있다.

지금많은크리스챤들은여기있고,저기있다는천국을찾아쫓아다니고있다.
내안에이미와있는천국에대해서는알지도못하고어딘가에따로놓여있는물건
찾듯이이상한곳으로내달리고있다.
그렇게잘못된,광신에빠진이유는하나밖에없다.
주님의말씀을자가기직접읽지않았기때문이며그말씀의뜻을깨닫지못하고있기
때문이다.
정말다른이유는하나도없다.
그래서안타깝기그지없는일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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