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브 오쁘 와 루띠.
‘모하브’는
32세의아주잘생긴미혼청년이며방글라데시사람이다.
우리부부가모하브를알게된것은아내의그림때문이었다.
아내는집가까이에있는농수로의뚝에서자주그림을그리는데햇볕을가리기위해
낚시용큰파라솔을펴놓고그그늘을이용하곤한다.
어느날순간적으로강한바람이불어파라솔이넘어졌고아내는그것을다시세우기
위해애를쓰고있었는데마침그뚝길을스쿠터를타고지나가던청년이스쿠터를
세우고파라솔을세워,고정시켰다.
그가모하브였고,
아내는감사의말과함께첫눈에인도사람으로보이는그에게평소먹고싶었던
인도빵’난’의만드는법을알고있느냐고물어봤다는것이다.
‘그거간단해요,제가가르쳐드리죠.’
그렇게해서서로전화번호를교환했고며칠후그의퇴근시간에맞춰우리가그의
숙소를찾아가게됐다.

우리의전화연락을받은그는숙소에서먼거리까지앞치마를입은채나와있었고
우리가도착한곳은중소기업공장안에있는작고오래된집이었다.
그낡은집은침실겸거실,창고,부엌이있었으며사장이외국인인그가거처할수있도록
제공했다는것이다.
그는빵을굽기전에요리부터시작했는데주재료는상당량의양갈비였다.
거의90여분동안그가요리하는과정을지켜보면서알게된것은,그는본래식당주방
에서일하던요리사였고한국에오기전까지는싱가폴에서요리사로일했다는것이다.
그러나그곳의급료가적었기때문에상대적으로급료가좋은한국에왔고그게15년전
이라고했다.
그가우리말을유창하게하는것도그때문이었다.

일단양갈비요리가끝난후,
빵을만들기시작했는데밀가루약간,소금약간,그리고뜨거운물이전부였다.
이스트도베이킹파우더도전혀쓰지않는익반죽이었다.
그는반죽그릇을바닥에내려놓고주먹으로힘있게눌러가면서반죽했다.
나는그과정하나하나를메모하면서지켜봤다.
다음은도마위에그반죽을골프공크기로만들어올려놓은후밀가루를뿌려가며밀대로
밀어팬크기에맞도록둥굴게만들었다.
이때중요한것이두께였는데아주얇아질때까지계속밀었다.
그리고는센불에달구어진팬에그대로올려놓는데놀라운것은소금과물로만반죽한
밀가루가부풀어오르면서익는것이었다.
모하브는신문지를두껍게접은것으로부풀어오르는부분들을눌러가면서빵을빙빙
돌렸고뒤집어서계속구웠다.
두번째빵부터는먼저구운빵을새빵위에올려놓고돌리고,뒤집어서구워냈다.

그리고식사,
양갈비요리와빵,
오이,앙파,토마토채썰은것,그게전부였다.
먹는방법은손으로빵을사방4-5센티정도로짤라양갈비요리에찍어먹고,빵조각
으로요리의건데기를집어서먹는것이다.
그리고채썰어놓은야채와토마토도빵으로싸서먹었다.
수저는쓰지않는다고해서우리도그냥손으로먹었다.
(이미인도여행에서격었던일이라그냥손으로먹을수있었다.)
우리부부는여러번중동지방을여행했었고여러가지양고기요리도먹어봤다.
그런데모하브가만든양갈비요리는그맛이천하일미였다.
정말그렇게맛이있는양고기요리는처음먹어봤고졸깃졸깃하고감칠맛이나는그빵은
인도빵’난’이아니라방글라데시서민들의주식인’루띠’라고했다.
사실생긴것은거의비슷했고맛도크게다르지는않았다.
그후모하브는우리를다시초대했고루띠와함께다른요리를준비해서먹게했다.
두번째식사는모하브의삼촌인알림씨도동석했었는데그는모하브의주선으로한국에
와서물탱크를만드는공장에서일하고있었다.
우리와제3국인인그들은이렇게식탁을통해아주친해졌다.

아내가양고기를즐기지않기때문에나는돼지고기갈은것과월계수잎사귀,그리고
마쌀라향을넣어인도냄새가물씬나는카레를만들었고,모하브에게서배운대로
‘루띠’를성공적으로구워환상적인식사를할수있었다.
특히얇게썰어놓은오이,양파,토마토를루띠에싸먹는맛은별미였다.
우리는자주이런식의식사를하곤한다.

우리가살고있는지역에는약1천여곳의중소기업공장들이있고거기에취없하고있는
제3국인근로자는약3천명에달한다고한다.
매일,쉽게어디서나그들을볼수있다.
우리부부는그들과마주치면반드시웃으면서먼저목례를한다.
좋은인상을심어주고싶기때문이다.
한번은김포시내에들어갔다가두명의제3국인남자들을만났는데그들은몹씨주저
하면서내게다가와목욕탕이어디있는지찾을수없다고했다.
모르기는나도마찬가지였지만나는웃는얼굴로나를따라오라고했고,길옆에있는
식당에들어가물어봤다.
목욕탕의위치를파악한후그들을데리고꾀나떨어져있는목욕탕앞까지함께갔고
목욕잘하라는얘기를해줬다.
그들은뜻밖의내친절에놀라는눈치였고여러번감사하다는말을했다.

통계청발표에의하면,
2006년도에결혼한농어촌청년100명중41명이외국인신부를맞았다고한다.
이중3분의2가베트남여성이다.
도시지역까지포함할때베트남여성과의결혼은1만131건으로2005년보다74%가
증가했으며이런추세로나간다면베트남여성의한국진출은계속증가할수밖에없다.
한편1990년5만정도였던국내체류외국인이2000년에는50만으로급증했고,
2006년엔82만명을상회하고있다.
통계에잡힌숫자가이정도라면이미100만이넘는다는얘기다.
이제우리가직면하고있는문제는두가지다.
100만단위의국내체류외국인에대한태도와함께앞으로태어날’혼열아’들에대한
것이그것이다.
그혼혈은과거와는다른혼혈이다.
김,이,박씨등의한국성을가진한국인이한국땅에서태어나는것이다.
임시체류하는제3국인문제와는그근본에서전혀다르다고할수있다.

이곳에살면서공장에취업하고있는제3국인들을관찰할수있는기회가많았고
나름대로그들의언행에어떤패턴이있다는것을알수있었다.
우선그들은한국인들과마추치는것을꺼리고있다.
눈을마주치려고안한다.
그들의눈을보면두려움의그림자가있다.
내가먼저웃어도그반응은아주조심스럽다.
다음은물리적으로거리를두려고한다.
그태도에서는쉽게그들이가지고있는공포감을읽을수있다.
불법체류를악용하는저임금과상습적인체불,혹사,구타,작업중부상당해도적절한
치료를해주지않는(3D업종은근로자의재해율이높다)악덕기업주들,그리고
주변의한국인들이보이는배타적인태도에대한불안감.
열악한주거환경,
(상당수가아주작은,공장에붙어있는컨테이너에서산다.)
그모든부정적요인들이그들을움추러들게하고있다.
오직고향에있는가족에게송금하겠다는일념이없다면벌써떠났을사람들이다.
그들은목표한돈을모을때까지이를악물고참고있을뿐이다.
그들이자기나라에돌아갔을때한국에대해어떤얘기를할것인지는불문가지다.

지금의추정으로는2010년에되면120만명의제3국인이근로자로취업하고있을것이다.
인구의2.5%정도다.
결코적은숫자가아닌것이며여기에계속태어날’혼혈’까지합한다면
‘단일민족’의시대는끝나는것이고,그것은지구촌시대의세계적인현상이기도하다.
우리나라사람들도외국에많이취업하고있고외국에현장을가지고있는기업도
한둘이아니다.
계속늘어날외국인국내취업자들과기하급수로늘어날혼혈은이제우리앞에닥쳐있는
현실이다.
외면한다고없어지는일이아니다.

이제는지금까지의생각을바꾸어야한다.
생각을바꾸지않으면현실적으로다가와있는문제를해결할수가없게된다.
‘더불어사는것이다.’
그길밖에는대안이없다.
그러기위해서는먼저그들을인정해야한다.
이방인으로배척만해서는결코해결이안된다.
특히혼혈은우리가수용해야하는우리들의문제다.
머지않아상당수의한국성을가진혼혈들이우리아이들과같은교실에있을것이다.
서울은전세계주요도시에서’차이나타운’이없는유일한도시다.
우리의민족성이얼마나배타적인지를보여주는사례다.
이제는생각을바꾸어야한다.
우리들이지구촌,열린시대에살고있음을인정해야한다.
다른길이없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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