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華內貧 – 가짜박사.
일제시대말기,
이른아침부터면사무소앞에는빈자루를손에쥔아낙들의긴줄이서있었다.
식량을배급받기위해서였다.
그런데아무리기다려도배급줄기미는보이지않고시간만흘러간다.
그때젊은새댁하나가줄뒤에서나와면사무소입구에세워져있는게시판으로
갔다.
붙여놓은방(榜)에는,
‘오늘은배급할식량이도착하지않았기때문에내일오라’는내용이써있었다.
글,일본어를읽을줄모르는대부분의아낙들은그방을읽을수없기때문에그내용
을알려주지않으면종일이라도서서기다릴것이다.
글을읽을수있는,교육받은젊은이의존재는그렇게귀한시대였다.

우리일행이자주이용하는낚시배가있다.
선령은오래됐지만좋은목재로아주잘지은목선이다.
하루는바다에나가낚시하던중썰물에걸려배바닥일부가갯벌에얹혔다.
선장의필사적인노력에도불구하고배는빠지지않았으며시간이지날수록썰물의
속도는더빨라지고수위는계속낮아졌다.
만약배를빼지못하면밀물이들어와배가뜰때까지12시간을갯벌에갇혀있어야
한다.
배야다시뜨면되지만낚시꾼에게12시간은황금과도바꿀수없는시간이아닌가.
그때,
배에서허드렛일을하면서선장을돕고있던젊은이가나섰다.
배를부리는잡두리부터가틀렸다.
그는몇번의시도로쉽게배를뺐다.
선장의설명에의하면,
그는자기들부두에서알아주는베테랑이라고한다.
바다에서자랐고,배에서컸기때문에모르는것도,못하는일도없다고했으며
웬만한선장들은그젊은이앞에서는명함도내밀지못한다는것이다.
그런데왜선장이못되고남의배에서허드렛일이나하고있는가.
문맹이기때문에’선장시험’을볼수없다는것이대답이다.
배박사가,글을몰라선장이못됐다니믿어지지않았지만사실이었다.
배우지못했다는것,교육이없다는것은한인간의모든기량까지사장해버리는
참으로한(恨)스러운일이아닐수없다.

글을읽고쓸수있다는것과,
글을읽지못하고쓸수도없는사람의차이는근본적인것이다.
지금이야문맹이거의없지만대신교육의등급과질(質)에서그이상의차이가
난다.
특히우리처럼단세포사회에서는계층이동의수단이교육밖에달리없다.
아무리돈을많이벌었어도학력이따라주지않으면상류층진입은어렵다.
8.15광복이후,
가장큰사회적변화는반상(班常)의전통적사회구조가깨진것이다.
상(常)이반(班)이될수있는혁명적인통로가열린것이다.
지금한국의상스럽고추악한중산층이그렇게생긴사회계층이다.
급조된계층에바탕이있을리없다.

현대사회에서사람은무엇으로평가받는가.
그기준은대단히사회적이면서도한편으로는반사회적이다.
큰평수의아파트,고급승용차,엄청난수입등,보이는규모들이천박한잣대가
되는게사실이다.
그러나인간은물질만가지고는만족하지못하는사회적존재다.
할아버지가돈을벌면아들은그돈을쓰고,손자는미술품을수집한다.
돈에서출발,명예로가는것이다.
대체적인수순들이그렇다.

계층이동이무엇인가.
모든사회에는,그것이비록사회주의사회라해도계층이있다.
공산권의노멘클라투라가그들이다.
그들의특권은은밀하기때문에더무섭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더말할것도없다.
어떤이념,어떤수단도계층이차이를해소하지못한다.
혁명으로도해결못한게그문제다.
인간이그근본에서우,열이있기때문이다.
동서고금을통해모든사회에서는더앞서가는자가있고뒤쳐지는자가있게
마련이다.

선진사회의가장큰특징은계층이동의수단이다양한점이다.
반대로후진국일수록그수단이비좁고단순해서피나는경쟁을하게된다.
하류에서중류로,다시상류로진입하려는인간의욕망은정당한것이고바람직한
것이기도하다.
그합이곧국가의발전이기도하다.
우리의가장큰병폐는계층이동의수단이협소한것이고특히내실보다는명분쪽에
치우쳐있는점이다.
그대표적인것이’학력’이다.
그것도실력을동반한내실이있는것이아니라’박사’로표현되는간판위주다.
정말한심한현상은,
원래학위로서의’박사’는특정분야의학문적전문성과업적을인정하는학문의
길인데흡사세상의모든일에정통하고어떤일도잘해내는’기능’으로착각하고
있는점이다.
상당수박사학위소지자들도자기가모든일에대해박사인양행세하고있다.
한심한일이다.
박사는특정분야에대해좁고깊게,전문적으로공부한사람들이다.
그만큼다른분야에대해서는모르는게많은것은당연하다.

간판학력인’박사’의수요가가짜박사를공급하게된것은어떤면에선자연스럽기
까지하다.
유명포털한곳에만100개가넘는가짜학위발급사이트를찾을수있다.
잠깐의시간을내어클릭하면외국의유명대학졸업장,성적증명서를며칠안에
구입할수있다.
졸업장과성적증명서를따로사는경우5만원에서27만원까지이며,
두가지다일경우9만원에서45만원까지받는다.
소비자가원하는경우우등졸업,최우등졸업의문구도위조로만들어넣어준다.
일부사이트는학장의서명,인쇄양식까지진본과구별할수없을정도로정교한
위조기술을가지고있다.

그렇다면이런가짜학위들이왜검증되지않고통하는것일까.
거기에는심층심리적으로열등감이있다.
열등감은모든과정이생략된결과에만집착하는속성을가진다.
실속과실력이아니라언제나명분만앞선다.
여기에학력사회가가지는콤풀렉스가겹쳐박사병을만들어냈다.
간판은중요한홍보수단이지만그간판에이를뒷받침하는내용이없을때거짓과
사기가된다.
우리사회는이거짓이통용되는’간판사회’다.
학벌이곧신분이되는전근대성은우리를앞으로나갈수없도록붙들고있는족쇄다.
학벌은한인간이교육받은정도를알게해주는기준이지그것이곧그인간의사회
적신분이되는것은아니다.
교육은받았지만교양이없는인간이있지않은가.
학벌사회는우리의민족성인외화내빈의대표적인한가지사례일뿐이다.
명분만취하고실리를버리는일이어찌이뿐이겠는가.

세상이달라지는가장분명한징표의한가지가우리가추진하고있는여러나라
와의FTA,자유무역협정체결이다.
FTA는,말하자면담을없애고한마당을같이사용하는생활이다.
모든생활의조건들이공개적으로경쟁하는새세상이된다.
직업은더다양해지고분야별전문성도더요구된다.
경쟁에서이기지못하면그게누구든도태되는게그런세상이다.
똑같이그런세상은수많은기회의장(場)이기도하다.
‘박사’라는간판만으론통하지않는다.
실력-전문성-최고만이대우받는세상이된다.
이제외화내빈의속빈강정은발붙일데가없어질것이다.
가짜박사학위로들어갈수있는문이없어지게된다.
학벌사회도,학력인플레도통하지못한다.
오직실력뿐인세상이되는것이다.
모든전문성은학위에서비롯되는것이아니라전문교육과함께끊임없이반복
하는훈련과연마에서얻어지는것이다.
정상에있으면서계속스스로를단련,그자리를지킬수있는게전문성이다.
적어도지금까지는가짜박사-학위가통했다.
그러나앞으로는어려울것이다.
검증하는시스템도이미개발되고있고학위발급처에대한조회도반드시거칠
것이다.
가짜가발붙일곳은점점줄어들고있다.
또그래야한다.

어느해추운겨울,
점심시간에유명하다는김치찌개집에간일이있다.
그식당은아주작은한옥의한부분이었고이미여러사람들이줄을서있었다.
식당간판도손바닥만했다.
식사를마치고나오는사람만큼줄에서있던사람들이들어갔다.
식당안은작은테이블이3개,정말좁았다.
몸을숙이고비좁은계단을올라가면낮은천정의작은방이있고거기에앉을수
있는조금큰상이3개있었다.
이루말할수없이불편하고열악한식당이었다.
그런데식탁에서바로끓여먹는김치찌개의맛은정말환상적이었다.
그맛이사람들을부르는것이고그추운겨울길에서서차례가오기를기다리게
하는것이다.
전문성이란그런것이다.
그작고불편한식당이떼돈을버는것은말한것도없다.

같은젊은이이지만대형할인매장의주차장에서하루종일손님차에허리를굽혀
절을하는사람과호떡장사를해도자기일을하는사람은그결과에서전혀다른
사람이된다.
실속과실리는그렇게놀라운힘을가지고있다.
우리모두는분명’간판’이아니라’실력’으로살아야하는세상에살게될것이다.
아무도거역할수없는추세가그렇다.
가짜박사의시대가끝나가고있는것이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