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교회.
비엔나에있는토마스교회에는두가지특이한상징물이남아있다.
하나는옛날터키군이쏜대포알이불발인채교회외벽에박혀있고다른하나는
교회입구한쪽벽면에동그라미와막대가그려져있는것이다.
오래전교회앞광장에는시장이서곤했는데같은값의빵의크기와천의길이가달라
분쟁이잦았었다고한다.
이에교회는그입구벽에같은값의빵의크기와천의길이를정해잘보이게부조해
놓은것이다.
사람들은거래중문제가생기거나분쟁이생기면빵과천을들고와교회벽에있는
기준에맞추어보곤했다는것이다.
잘알려져있지않은세번째상징물은밖에서보이는교회의지하실통풍구창살에
남아있는기호들이다.
나치점령하에서레지스탕스들이그곳에암호를남겨서로연락했다고한다.
지금도벽에박혀있는대포알과교회입구벽의동구라미와막대,그리고지하실창살에
남아있는기호들을보면서깊은생각에잠겼었다.

불발된대포알은세상의힘이교회를이길수없다는상징성에서,
동그라미와막대는교회가세상의기준이된다는뜻에서,
그리고그암호들은사람들이가장고통스러울때교회가가지는위치에대해어떤
암시를주고있었다.
처음부터교회의자리는그러했다.
그기능이그렇게살아있어야그리스도의몸된교회가되는것이다.

중세의인구조절은전쟁보다는전염병이담당했다.
한번전염병이지나가면지역적으로경제상황과재정형편이좋아졌다고한다.
사람은크게줄고물건과토지는남았기때문이다.
그때,
전염병이창궐하면사람들은교회로몰려들었다.
거룩한장소에피신하면병균이들어오지못할것으로믿었기때문이었으며사제들도
이를독려했다고한다.
사람의밀집은전염병의온상이다.
수없이많은사람들이교회안에밀집해서죽어나갔다.
무지했었기때문이다.
모이면안된다는의학적지식이없었기때문에일어난비극이다.
교회가’상식’이부족하면지금도같은일이일어난다.
영혼이죽는전염병에걸려드는것이다.

토마스교회의세가지상징처럼주께서하신말씀을세가지로요약해보자.
너희는세상의소금이다.
너희는세상의빛이다.
너희는한알의밀알이다.
주께서주신모든가르침의요약은결국이세가지라고해도지나친말은아닐것이다.
소금은부패,썪는것을막는다.
빛은어두움,죄와악을이긴다.
밀알은스스로를희생,더많은열매를얻는비약을한다.
세가지모두가세상사람들에게부족한비상한기능들이다.

소금이제기능을하기위해서는녹아야한다.
녹아야부패할수있는것들속으로스며들수있다.
녹아서보이지는않지만염분의그놀라운기능은그대로다.
살아기능하는짠맛이부패를막는것이다.
그때의빛은등잔이나촛불이다.
빛을내기위해서는스스로를태워야한다.
그러나빛이비치는모든곳에서어두움과악은물러난다.
빛을이길수가없기때문이다.
한알의밀알은땅어묻혀없어지지만거기에서시작된싹은많은열매로비약한다.
수많은사람들에게필요한생명의양식이되는것이다.
살아있는교회의모습이그러해야한다.
교회는그기능이있어야비로서자기자리에서있을수있다.

지금의교회는,
더큰것,더많은것,더현란한것을달라고소리지르고있다.
손을벌리고,팔을뻗치고,더큰소리로울부짖는다.
구하노니오직복밖에없다.
그복의다른이름이돈이다.
어떤크리스챤도소금이나빛,밀알이되려고하지않는다.
그런게있는지도모른다.
설교내용의75%가기복(祈福)에대한것이라고한다.
5분에한번씩주님의이름으로축원하고교인들은아멘을주문(呪文)처럼외운다.
소금과빛,그리고밀알이들어설자리가없다.
전혀딴것이되었기때문이다.
이게한두교회에만국한되는문제일까.
도대체어쩌다교회가이렇게되었는가.
왜이렇게급속하게다른것이되었는가.
소금과빛과밀알을가르치지않았기때문이다.
예수믿는것이자기희생임을알려주지않았기때문이다.

땅에서버려야하늘에서얻는천국의법칙을알려주지않았기때문이다.
왜알려주지않았는가.
알려주고가르쳐야할사람들도그것을모르기때문이다.
무인가사이비신학교의속성과에서는그런것을가르치지않는다.
시간이없기때문이다.
그것까지가르쳐서는돈이안된다.
9년이걸려목사안수받는정규신학교졸업생과최종학력에관계없이2,3년만에
목사에신학박사학위까지받는가짜를구분하지못하기때문에생긴인재(人災)가
그것이다.
삼풍백화점과성수대교의인재는교회의인재에비하면새발의피도못된다.
실로한국개신교의위기는이인재때문이다.
신학교가100이라면교육부가정식으로인가한곳은20개교단정도라고한다.
문제의핵심이어디에있는지를알게해주는수치다.
누가무인가가짜신학교에들어가는가.
정상적인루트에서탈락한낙오자들이다.
‘당신들의천국’은그렇게생긴것이다.
그러나그들이듣게될대답은이미주어져있다.
‘나는너를도무지알지못하노라.’
예수와관계없는,예수없는교회에주신경고의말씀이다.

과학은삼라만상의물질세계를파악하는방편이다.
우리는과학을통해자연을알고,이해하고,이용한다.
과학은실로우리의물질적삶을크게향상시킨놀라운기능이다.
인간은철학을통해’나’를파악한다.
어디서와서무엇을하다어디로가는가.
인간의철학적물음은인간의인격적향상을도모한커다란도구다.
철학이없다면그건정신이죽었기때문이다.
우리는무엇을통해이세상에존재하는온갖아름다움에접근하는가.
그게’예술의세계’다.
시와산문,무대예술과음악,회화의세계가그것이다.
예술은인간을정화하며더아름다운것을추구하는선한존재가되게한다.
그러나종교는차원을달리한다.
그건’인간생명’과’삶과죽음’의문제에접근하는신(神)의통로다.
종교(宗敎)가근본을가르친다는게그뜻이다.
미신에서부터고등종교에이르기까지종교가가지는내용은결국삶과죽음의
문제다.
미신이무속(巫俗)의방법으로여기에접근했다면고등종교는이성(理性)의바탕에서
믿음이라는비약을제시한다.

지금의우리사회는’보이는것’을추구하는것만으로끝나고있다.
현대적인삶의추세가그러하다.
흡사영원히죽지않고살사람들처럼다른한쪽은보지않으려고한다.
그러나그다른한쪽은아무도피할수없는또하나의현실이다.
종교의기능은그다른한쪽에대해알게해주고그게무엇인지를설명하는것이다.
그다른한쪽은본질적인것이기때문에육안으로는보이지않는세계다.
그세계를보기위해서는진정한종교를통해영의눈을가져야한다.
소금의기능도,
빛의역할도,
밀알의비약도없는지금의교회에서는영의눈을얻지못한다.
교회자체가비본질적인,온갖보이는것들을탐욕적으로추구하고있기때문이다.
교회의물량주의,황금만능주의는이제언론조차도더언급하지않는수준에가
있다.
‘그리스도의몸된교회’가’맘몬의전당’이되었기때문이다.

비엔나의토마스교회에는지금도그상징적인것들이남아있다.
세월이흘러그현실적인필요는없어졌지만그것들이가지는의미는하나도달라
지지않는다.
방법은달라져도그긍정적인,상징적기능들은살아있기때문이다.
그것이살아있기때문에지금도’교회’인것이다.
‘소금이그맛을잃으면무엇에쓰겠는가.
길에버려져사람들의발에밟힐뿐이다.
버려지는것도치욕스러운데밟히기까지한다면그런수모가어디있겠는가.
정말한심한것은,
치욕에대해서도,수모에대해서도느낌이없는무지다.
삼류까지는’상식’이있지만,
사류에는그’상식’이없다.
몰상식하면부끄러워할줄도모르게된다.

거지도부자도,
무지랭이같은백성도군왕도,
배운사람도무식한사람도,
결국은모두가’끝’에서게된다.
이끝을피할수있는인간은아무도없다.
거의평생을간수로살아온사람의얘기다.
사형이집행될때,
형장으로가는인간의모습은너무나뜻밖이었다고한다.
지명도가높았던유명인사가침을흘리며개처럼끌려가는가하면전혀모르는
사람이의연한자세로걸어간다는것이다.
죽음에대한내면의준비가달랐기때문이다.
생명에대한해석이달랐기때문이다.
죽은다음의세계에대한믿음이달랐기때문이다.
이땅위에서그끝을준비하는곳이교회다.
그래서교회안에는비본질적인것,보이는현란한것들이있어서는안된다.
본질적인것,보이지않는것,생명에대한것으로가득차있어야한다.
어떤경우에도무지(無知)는그귀한것들을준비할수가없다.
모르기때문이다.
선택을신중히,잘해야하는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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